긴 터널을 지나가는 듯한 <복수는 나의 것>
글: 손성욱
2002년 04월 0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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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쾌한씨는 박찬욱 감독의 데뷔작인 "달은.. 해가 꾸는 꿈(1992)"을 알지도 못한다. 지금에 와서 찾아서 보고 싶은 마음도 없다. 유쾌한씨가 그의 영화를 처음 본 것은 "삼인조(1997)" 이다. 대학교 1학년 시절 비디오를 한참 볼 때 지나치듯 본 영화. "공동경비구역 JSA"를 보고서야 박찬욱 감독이 "삼인조"의 감독인 것을 알았다. 솔직히 말하자면 유쾌한씨는 두 작품에서 그렇다할 감흥을 느끼지는 못했다. 그저 박.찬.욱 이라는 세 글자만 기억했다. 왜냐면... 대중성과 예술성 사이에서 고민하는 그의 흔적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제서야 슬쩍 그의 경력을 들쳐 보았다. 서강대 철학과 출신에 영화 평론가라.. 그의 글을 몇 편 읽고나서야 유쾌한씨는 그의 다음 영화를 기대했다. 그 기대에 대한 결과는... ★★★★
긴 터널을 빠져 나온 기분이었다. 영화를 보는 내내 느껴지는 답답함. 후덕지근한 열기와 메케한 공기들. 숨을 내쉴 환풍구가 없다. ; 영화에는 감정의 폭발이 없다. 유괴된 딸, 그리고 죽어서 돌아온 아이. 아이를 마주할 때 아버지의 반응은 어떨까. 그것은 격함일 것이다. 아이에 대한 애정으로부터 솟아 오르는 분노와 슬픔. 하지만 딸의 죽음을 맞이하는 동진(송강호)은 너무나도 조용하다. 조용함 속에 폭발의 분출구를 류(신하균)에게 놓는다. 마치 저격수가 표적을 맞추기 위해 겨냥을 한채 조용히 준비하듯. 이에 비해 누나를 잃은 류의 반응은 폭발적이다. 그 폭발은 겁잡을 수 없이 장기매매 사기단에게로 달려간다. 청각장애인인 류의 폭발은, 소리없이 뿜어져 나오는 폭발이라 더욱 무섭다. 동진의 복수가 한자욱 한자욱 다가서는 것이라면 류의 복수는 쉴새없이 뛰는 것이다. 두 복수의 공통점이 있다면 조용함이다. 슬픔의 소리를 표출할 수 있음에도 표출하지 않는 동진과 표출하고 싶어도 절대로 표출해낼 수 없는 류의 조용함.
류를 향한 동진의 복수의 길에 막고 서있는 것이 영미(배두나)이다. 류의 누나를 살리기 위해 류에게 유괴를 권하는 영미. 복수의 시작은 여기서 시작된다. 그리고 마지막에 예상치 못했던 또다른 복수를 만들어 내기도 한다. 중요한건 영미는 복수를 발생시키긴 하지만 복수를 하지는 않는다. 복수의 발원이지만 복수의 주체는 아니다. 이러한 영미는 동진과 류와는 사뭇 다르다. 그녀는 개인적인 감정에 기인해 움직이는 인물이 아니다. 개인적이 아닌 사회적인 요소이다. 책과 경찰 마나킹, 전경의 방패로 꾸며져 있는 영미의 방은 그녀의 성격을 잘 보여준다. 거기에 전단지, 컴퓨터, 소형 자동차, 담배... 농아학교, 월북, 무정부주의자 동맹.
마지막 장면을 어떻게 꾸며낼지 궁금했다. 복수가 그저 동진의 것이었다면 류를 죽이는 것으로 끝나면 족하다. 하지만 영화는 그렇지 못하다. "복수는 나의 것"이라는 제목에서 말해주듯, 복수는 영화의 주인공인 동진, 류, 영미의 것이다.(영미가 죽음으로 발생하는 복수) 이 세가지의 복수를 어떻게 마무리 지을 것인가. 류의 복수는 장기매매 사기단을 죽임으로 마무리 된다. 동진의 복수는 영미와 류를 죽이는 것으로 마무리 된다. 여기서 "THE END"를 때릴 것인가. 그렇다면 영화는 밋밋해질 것이다. 유쾌한씨는 극장을 나오며 '결국 그렇게 되는구나.'하고 생각했겠지. 하지만 감독은 마지막 장면으로 영미의 복수를 갚기 위한 4명의 인물을 등장시킨다. 소위 무정부주의자 동맹일까. 동진의 가슴에 판결문을 대고 칼을 꽂는다. 영화는 이렇게 끝난다.
송강호, 신하균, 배두나의 연기는 최고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어떤 영화에서 이들만한 연기를 볼 수 있을까. 이 세사람의 연기가 돋보이는 것은 그들이 연기 9단이어서 일까. 아직 그들을 연기 9단이라 할 수는 없을 것이다. 분명 세배우는 어느 정도의 선에 올라섰고 절정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는 박찬욱 감독의 능력이 돋보인다. 세명의 배우를 모두를 살려내는게 어디 쉬운 일이겠는가. 어느 한명만 강하게 나간다해도... 두명은 푹 죽었을 것이다. 공공의 적에 설경구를 보라! 박찬욱 감독은 이 영화를 통해 자신만의 스타일을 확실히 잡은 듯 하다. 그동안의 영화에서 보여주었던 고민을 지워내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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