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도 눈물도 없이> 내 영혼까지는 가져가지 못할걸
글: 양유창
2002년 02월 1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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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은 괜찮았다. 류승범 특유의 우스운 말투에 멋드러진 담배 튕기는 오프닝은 다음 상황을 기대하게 만들었으니까. 그리고, 무술감독 정두홍의 침묵맨도 멋있었다. 이소룡을 닮은 외모에 카리스마를 겸비해 강한 매력이 넘쳐 흘렀다. 아마도 이 영화의 유일한 소득일 것이라도 생각되는 정재영은 처음부터 끝까지 영화를 끌고 나간다. 이 영화의 주인공은 전도연, 이혜영이 아니라 정재영이다. 영화의 컨셉으로 처음부터 설정되었던 두 파워풀한 여성상은 영화에서 완전히 사라진다. 그리고 그 자리에 강한 남자 정재영이 있다. 여기서부터 무언가 꼬이기 시작한다.
실패이유 1: 스토리의 전개에 리듬이 없다.
대충 이런 식이다. 내용은 알겠는데 그리고 왜 그렇게 되는지도 알겠는데 그렇게 되는 이유가 별로 궁금하지 않다. 돈이 누구에게로 가는지가 별로 궁금하지 않으니 마지막 장면이 아무런 설득력이 없고, CG가 어설프게만 느껴진다. 여러 이야기들이 산발적으로 흩어져 있는데 그 흩어진 이야기들을 끌고가는 축이 없다. 아마도 이것은 시나리오상의 실패라고 느껴지는 부분이다. 인물, 사건, 재료 등이 차례대로 비추어지면서도 자연스럽게 보는 사람의 관심사를 바꾸어가며 흐르지 않으니 보는 내내 답답하다.
실패이유 2: 장난기와 재능을 혼동하고 있다.
만약 류승완이 재능있는 감독이라고 인정받는다면, 그것은 그가 기존의 재료들을 발굴해내고 잘 요리해서 써먹기 때문일 것이다.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에서 인정받은 단편영화 묶음기법이나 <다찌마와 Lee>가 발굴해낸 고전 한국액션영화의 부활 등이 그런 예이다. 물론 <피도 눈물도 없이>에도 그런 미덕이 있다. 예컨대 10년 전 배우인 이혜영을 부활시킨 것이나 중간마다 만화처럼 살짝 등장하는 인물의 과거 에피소드 등은 다분히 장난기가 섞여 있는 재능이다. 문제는 그가 너무 많이 나갔다는 것이다. 한 번 재미있었던 장난도 여러 번 하면 짜증나게 마련이다. 같은 장난을 반복하다가 결국 가장 중요한 캐릭터의 소개나 이야기의 전개 타이밍을 놓쳐버리는 우를 범했다.
실패이유 3: 무엇이 새로운 것인지 모르는 것 같다.
아마도 우리가 류승완 감독에게 기대하고 있었을 '새로움'이라는 코드에 대해 류승완은 아무런 답도 들려주지 못했다. 실마리조차도 제공해주지 못했다. 마지막 장면, 해변가에서 전도연과 이혜영이 나누는 오뎅장사와 관련한 대사는 최악이다. 장난으로 그냥 집어넣어 본 것이기를 바랄 뿐이다. 쿠엔틴 타란티노가 <펄프 픽션>으로 추앙받은 뒤 다음 작품으로 내놓은 <재키 브라운>과 <피도 눈물도 없이>는 어쩌면 비슷한 전략을 취하고 있다. 팜 그리어라는 한물 간 흑인스타를 전면에 내세워서 '누가 돈가방을 가져갔을까?'라는 컨셉으로 이야기를 풀어간 <재키 브라운>은 그래도 자기가 좋아하는 것들을 고전적인 스타일에 접목시킴으로써 욕심부리지 않고 타란티노의 순발력을 보여주기라도 했다.
하지만, <피도 눈물도 없이>는 괜히 타란티노의 전략을 따라하다가 별로 성과를 얻지 못한 것처럼 보인다. 시나리오상의 치밀하지 못함은 연출로 극복되지 못했고, 그래서 영화를 만든 이유조차 회의하게 만든다. 아니, 한 가지 얻은 것은 있다. 바로 신구(A), 백일섭을 비롯한 여러 연기자들의 열심히 하는 연기다. 하지만, 나는 이것마저도 못마땅하다. <피도 눈물도 없이> 같이 감독의 장난기로 일괄하는 영화에서는 연기자들도 '대충 하는 연기'가 더 실감이 났을 것 같기 때문이다. 마치 <재키 브라운>에서 하비 케이틀이 대충 대사 한 번 치고 쓱 훑어보는 것 같은 모습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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