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의 방> 영원히 되풀이될 이야기
글: 박우진
2001년 11월 0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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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과 의사인 조반니. 아들이 죽고 난 후, 누구보다도 인간의 속내를 말갛게 들여다 볼 수 있을 것 같은 그도, 정작 자신의 마음을 쓰다듬어 내릴 재간이 없다. 이제, 떠돌다 자신의 귀에 내려앉은 다른 인생들을 담아낼 여유는 사라지고 다만 하염없이 밀려드는 먹먹한 마음의 파도를 감당하는 데만도 버겁다. 파도는 날카로운 손톱을 웅크린 채 달려들어 가슴을 그적그적 할퀴어 대고, 때로 그 육중한 몸을 일으켜 마음 밖으로 철썩 넘쳐 난다.
산 사람에게 닥쳐 오는 지인(知人)의 죽음은 핵폭탄처럼 삶의 뿌리를 무너뜨리는 단기간의 충격을 주는 것이라기 보다는, 대지에 점점이 박힌 지뢰처럼 자금자금 폭발한다. <아들의 방>의 가족도 일상을 가장한 지뢰밭을 걷는다. '죽은이의 부재'라는 황량함이 잔뜩 묻힌. 초조한 까치발로 지뢰를 디뎠을 때, 그들은 울컥 허물어진다. 하지만 그 이후에도 이어져야만 하는 아슬한 삶의 시간- 그들의 고통은 어쩌면 이 것이다.
이탈리아의 국민 감독이자 배우인 난니 모레띠는 물리적인 '죽음'보다는 이미 벌어진 죽음을 의식 속으로 아우르는, 심리적인 '죽음의 과정'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죽음에 대한 지나친 강박관념이나, 어색한 격렬함이 없는 <아들의 방>은 그래서 더욱 쓸쓸하다. '남은' 가족들이 국경 근처 바닷가에서 펄럭이고 있을 때, 극장을 뭉클하게 채우던 Brian Eno 의 음악처럼 나직이, 은근히 마음을 아프게 눌러 온다.
감독은 사회적인 전작들과는 달리, <아들의 방>을 지극히 개인적인 관점에서 풀어내고 있다. 갑작스런 그의 전향에 곱지 않은 시각도 있다고 하는데, 이 작품이 그의 '외도'가 될 지 '반환점'이 될 지는 두고 볼 일이다. 인간의 영원한 화두는 '사랑'과 '죽음'이라는 누군가의 말처럼 난니 모레티도 한번쯤은 죽음에 대해 성찰해 보고 싶었던 것이 아닐는지. 그것이 인류 역사의 물줄기가 수도 없이 휘감았던, 모 하나 없이 깎여 반질해진 돌이라 해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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