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킬러들의 수다> 리철진이 그립다
글: 성재원
2001년 10월 2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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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킬러들의 수다>는 솔직히 의구심이 생기더라. 킬러들의 삶은 재미없게 만들 걱정은 없어보이지만, 무엇을 근거로 그런 감동을 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뭐 킬러로서 스스로가 인간의 실존적인 문제나 살인에 대한 가치규범의 문제로 다가설 수도 있겠지만, 우리 사회, 우리 나라 사람들의 삶과 구체적인 연결고리가 없다면 조금은 무리가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뭐, 장진 감독이 이번에는 오로지 재미만 추구한다면야 어쩌겠냐는 생각으로 극장엘 들어섰는데, 간첩 리철진을 생각할때면, 그래도 찌릿찌릿한 느낌을 받을 것이라는 소망을 거둘 수가 없었다. 영화는 어땠는가?
푸하하하.. 영화 얘길 하려는데, 생각하자 마자 웃음부터 나온다.. 어리숙 멍청한 네명의 킬러들.. 4명이 엮어내는 대사와 표정, 행동들은 처음부터 끝까지 계속 웃게 한다.. <공동경비구역 JSA>에서 보았던 신하균은 정반대의 성격으로 나온다. 곱고 선하게 생긴 마스크에서 어찌그리 거칠고 뒷골목 기질이 팍팍 묻어나오는지 놀랐다. 그 연기력에 놀랄 뿐이다. 그에 비해 원빈은 좀 기량이 딸리는 느낌이고..
비록 코미디 영화라지만 살인하는 장면은 너무나 실감나고, 마지막 부분의 장면은 잔인하기까지 하다. 그러나 그 살인을 행하는 주체인 킬러 - 어리숙 멍청 & 착하고 귀여운 - 그들로 인해 그 살인행위가 갖는 심각성이 희미해진다. 또한 의뢰인의 부탁을 받아 행하는 만큼 그들의 행위에는 어떤 개인적인 동기가 없기에 살인자체가 무감각해지고, 그 행위도중에 벌이는 그들의 말과 행동을 보며 웃다보면, 살인은 중요한 이슈로 생각할 수 없다. 그냥 웃고 즐기는 것 뿐이다. 자신들의 행위에 대해 가치판단을 내릴 수 없는 재밌는 인간들의 행위를 보며 그냥 즐기는 것이다.
하지만 웃음이 가벼움으로 치닫지 않길 바라는 마음에 무언가 무게를 잡아줄 것을 눈을 씻고 찾아본다.
영화 초반, 네 킬러중의 대장격인 신현준이 거실벽에 붙여놓은 수많은 의뢰인과 함께 찍은 사진들이 찡하게 다가온다. 의뢰인들의 모습은 선량한 소시민의 것이었고 그 표정들은 선하기 그지 없다. 살인청부업자와 함께하는 소시민들(?) -.-;; 킬러들은 주로 자신이 속한 조직의 보스에게서 명령을 받고 죽이는 상대 또한 타조직의 일원이다. 뭐, 범죄자들끼리 죽고 죽이는 건 그렇다고 치지만, 일반 시민과 시민을 죽음으로 관계를 지워주는 킬러들이라. 뭔가 흑막이 있다고 비약해보고 싶다. 귀엽게 느껴지는 그렇지만 한편으로 가슴시리게 필요하게 느껴지는 그런 검은 천사들 이라고 높여주고 싶다. 그들이 필요하다고 느끼는 것은 그들이 풀어나가는 관계라는 것이 사회적 강자와 약자간의 관계라고 생각하고 싶다. 영화속에서 죽거나 혼쭐나는 인물들은 사회적 강자이다. 강자의 위치에서 약자들에게 고통을 주는 사람들이라고 보면 안될까? 후후.. 현대판 홍길동전, <마스크 오브 조로>가 되는가?
역시 무리다.. 그냥 개인적 경험을 영화적 상상으로 풀어버리는게 속 편할 듯하다. 살인의 감정.. 과거 나의 내면에서 솟구쳐 올랐던 살인의 감정을 떠올려본다. 광주 민주화 운동 문제로 5공 청문회가 열리고 그 수괴로 지목되어 국회 증인대에 섰던, 수많은 인명을 죽이고, 온갖 비리로 축재한 돈으로 잘먹고 잘살고 있는 군부세력들을 향해 꽤 오랬동안 그런 감정이 있었다. 그때 살아남은 자들과 죽은 사람들의 지인들은 나보다 더한 살인의 욕망을 느꼈을 것이다. 만약 이 네명의 킬러가 실재했다면 ? 그리고 나 또는 그들에게 의뢰비를 감당할 경제력이 있었다면? ^^;; 상상을 해본다. "그날이 오면"이 배경음악으로 천천히 깔리는 가운데, 날카로운 눈매의 정재용이 삼엄한 경비를 피해서 망원경이 장착된 총으로 빗나는 한방에 보내버린다. 신하균이 도발적인 목소리로 "아직 폭탄 안터졌어요?" 라고 전화로 통화하는 순간 그 대상이 거하는 집이 폭파되어 가루가 되어버리고.. 기타등등. 기타등등.. 비록 이성적으로 생각하면 살인 교사죄에 해당하는 도저히 행할 수 없는 끔찍한 행위지만, 상상을 해보니 꽤 시원한 감이 든다.
재미는 기대했던 만큼 있었지만, 가슴 저리게 하는 그런 감동은 좀 부족했던 아쉬움이 남는 영화다. 리철진이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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