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송어> 베테랑의 여행 임상보고서


글: 이유철
2000년 03월 11일

영화인의 길을 잠시 접고 교육자로서 몇 년을 보낸 박종원 감독이 4년만에 선보인 영화 <송어>는 한국의 베테랑 연기자들과 스텝들에 의해 만들어졌다. 모스크바 영화제 여우주연상 수상자인 강수연과 <박하사탕>의 설경구는 원숙한 연기로 스릴러 장르를 더욱 돋보이게 한다.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 <영원한 제국>에서부터 권력과 그것에 굴종하는 나약한 인간을 향한 비관적인 관점을 일관되게 보여준 박종원 감독은 <송어>에서 보다 차갑고 냉정해졌다 그는 인간은 모두 겉모습으로 변장하고 있지만 사실 비겁하고 소심하며 이기심과 탐욕으로 가득차 있을 뿐이라는 세상에 대한 자신의 비판적 시선을 <송어>를 통해 페쇄적인 알레고리로 만들고 있다. 그래서 <송어>는 서울이라는 도시 안에서 무작위로 선정한 샘플을 모든 상황이 통제된 실험대 위에 올려 놓고 마음대로 조작하는 냉철한 해부실의 임상보고서처럼 보인다.

객관적인 검증을 거치지 않은 실험에는 실험자의 주관적 요소가 들어가기 마련이다 이와 같이 여기에서도 그러한 이데올로기의 자장에 변수들이 반응한다 '송어'는 의도와는 상관없이 가부장적이고 남근적인 표상들로 가득 차 있으며 마초적인 남성성이 지배하는 무정부적 공간으로 들어간다 그러므로 이는 원시적이라기 보다는 남성적 환타지의 공간이라고 말하는 것이 오히려 더욱 적절하다.

어떤 이에게는 영화의 내면에서 무의식 중에 드러나는 그 남근적인 시선 때문에 <송어>가 무시무시하게 느껴질지도 모른다. 하지만, <송어>의 이러한 이데올로기적 혐의들이 영화보기의 재미를 더욱 값지게 만드는 것 역시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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