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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itation of Life


[리버스] 뜨거운 것이 좋아 :::


양유창 | 2000년 04월 01일
조회 8041


Some Like It Hot

매니아(우리말로 하면 '마니아') 사회라는 것이 있다. 어떤 것인고 하니 자잘한 것들까지 머리 속에 줄줄 꿰고 다니면서 국민의 90%가 모르고 있는 것에 대해 이것은 이런 면이 이래서 좋다는 식의 논평까지 술술 나오는 사람들이 사는 곳이다. 그 사람들은 무협지 속의 그 양반들처럼 급수를 매긴다. 그래서 누구는 고단수네, 누구는 내공이 세네 하는 말들이 그들에게는 이상하지 않게 들린다.

필자 역시 이 사회에 있었다는 것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최근에는 방송사의 인터뷰를 거절할 만큼 다른 인생의 방향을 모색하고 있지만, 어쨌든 매니아라는 것은 한 번 빠지면 좀처럼 나오기 힘든 마약과도 같은 사회인 것은 분명하다.

매니아들은 자신의 내공이 딸리는 호적수를 만나면 긴장한다. 이건 흡사 영화팬이 자신이 좋아하는 감독이나 배우를 만났을 때와 같다. 예컨대 영화매니아들의 경우 자신이 본 영화가 상대방에 비해 한없이 적다는 것을 느낄 때, 혹은 자신의 소장품이 상대의 그것에 비해 가치가 없다는 것을 느낄 때 좌절하는 것이다. 집착이 있는 사람은 여기에 고무되고, 그렇지 않은 사람은 상대를 고수로 모신다. 그리고는 더 많은 영화보기와 수집하기, 외우기 등에 열중하게 된다. 물론 이러한 것들은 체계적인 이해가 없이는 섭렵이 불가능한 경지이기도 하다.

무엇이 그들을 뜨겁게 만드는가? 그저 하루 세 끼 밥 꼬박 먹는 자들의 유희일까? 하지만, 그렇다고 하기에는 그들의 열정이 너무나 순수하다.

이런 매니아들이 상업적 가치로 고려되는 시대가 오고 있다. 다양한 매체의 출현과 함께 컨텐트의 부족은 매니아를 전문가적 가치로 인식하게 하는 이유이다. 머지 않아 방송사와 프로덕션의 분립, 위성방송과 케이블 텔레비전의 범람, 인터넷 매체의 폭발 등과 함께 이런 현상은 더욱 가속화될 것이다.

영화계에서도, 컨텐트 보호를 위한 저작권 개념에 대한 인식제고가 급속히 이루어지고 있다. 며칠 전 만난 여러 영화업 종사자들에게서 이제 그들도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을 "컨텐트"로 인식하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이에 대해 매니아들도 하나둘씩 자기영역 확보를 위한 매체찾기(혹은 만들기)에 열을 올리고 있다. 과연 이들이 행복하게 결합할 수 있을까? 출구는 단 하나다. 서로가 욕심을 버리는 것. 컨텐트 생산자와 이의 확장자는 자신의 영역을 인정하고 합심하면 더 큰 시너지 효과를 얻을 수 있다. 그야말로 "한계효용의 법칙"인 셈이다.

꼬리가 여럿 달린 뱀은 지정된 시간에 용이 될 수 있다. 하지만, 그 꼬리가 서로를 물어뜯으면 아무것도 이루지 못한다. 모든 것이 급박하게 변해가고 있다. 어제 뜨거웠던 것이 오늘 싸늘하게 식어가고 있다. 무엇이 저 파란 하늘 아래 그토록 광활하게 뒤덮여 있는가. 오늘 여기 식어빠진 한 더미의 나무죽지가 놓여 있더라도 언젠가는 다시 타들어갈 것이다. 그래서 난 뜨거운 것이 좋다.






양유창
마음으로부터 그림을 그립니다. 무의식으로부터 시를 씁니다.
비밀스럽게 여행을 떠납니다.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노래를 부릅니다.
운명과 미래를 혼동하지 않습니다.
무심코 떨어뜨린 책갈피에서 21세기가 느껴집니다. 그곳은 슬픈 신세계입니다.
이별이란 말은 너무 슬퍼 '별리'라고 말합니다.

BLOG: rayspace.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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