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스페스트 개막작 <애니버서리 파티> 리뷰

Festivals : RESFEST 디지틀 영화제

레스페스트 개막작 <애니버서리 파티> 리뷰 :::

이윤형 | 2001년 10월 26일
조회 2614

RESFEST KOREA 2001 개막작인 <애니버서리 파티(Anniversary Party)>는 SONY 사의 DSR-500으로 촬영한 디지털 영화이다. 디지털 영화제의 개막작인만큼 디지털 영화로써의 특성이 담겨 있어야 할 이 영화는 모호한 DV(Digital Video)의 경계에 있는 듯 하다.

DV는 Film으로만 만들어지던 영화의 대안적 매체로써 자리를 잡아가고 있는데 그 미래는 아직 미지수로 보인다. DV는 영화에서 우선적으로 거론되어야 할 것은 아니지만 Film에 비해 가격이 상대적으로 저렴한 편이고 카메라가 작아 기동성이 있고 많은 움직임이 있는 화면을 잡기에 용이하다. 예를 들면 <백치들>의 경우가 그것을 잘 활용한 영화라고 할 수 있다. 미친 듯 뛰어 다니는 인간들의 정신없는 모습을 담아내기에 DV는 더없이 좋은 매체였다. 하지만 이 DV는 Close up shot을 잡을 때는 티가 안 나지만 Long shot을 촬영할 때는 왠지 입체감이 떨어져 보이고 생뚱한 느낌을 주기도 하며 관용도가 Film에 비해 2stop이 떨어져 세밀한 영상을 잡아내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고 한다. 그리고 어쩔 땐 카메라가 가볍다는 게 단점으로 작용하는 영화를 만들어내기도 한다. 그러니 장점이 단점이 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는 것이다.

(사실 DV에 대한 편견을 없애려면 이렇게 DV의 특성을 따져가며 하는 영화 평도 없어져야 할 게다. 영화를 봐야 하는데 디지털 카메라를 본 건 아닌지 모르겠다. .)

<애니버서리 파티>는 결혼 기념일 파티에서 하루 동안 일어나는 일을 그린 제니퍼 제이슨 리와 알란 커밍이 공동 각본, 연출한 영화다.

영화는 6주년 결혼기념일을 맞은 샐리(제니퍼 제이슨 리)와 조(알란 커밍)가 여러 친구들을 초대하고 그 친구들과 놀기도, 싸우기도 하며 광란의 결혼 기념일 하루를 보낸다는 내용이다. 결혼 기념일 아침부터 다음날 아침까지 딱 하루를 보여주는 이 영화는 보통 짧은 시간을 다룬 영화에서 볼 수 있듯 인물들 간의 내용이 주를 이룬다.

그 인물들은 주인공 두 명이 즐겁기도, 화내기도 딱 좋게 설정되어 있다. 부부가 다 좋아하는 사람들, 부부 둘 다 싫어하지만 어쩔 수 없이 초대한 사람들, 남편은 좋아하는데 부인은 좋아하지 않는 사람. 이 영화의 호흡은 중요한 결혼 기념일 파티 시퀀스를 사이에 놓고 초반과 종반 느리게 감정 조절을 한다. 위에서 말한 모호한 DV의 경계라는 게 바로 이 말이다. 정신없는 인간관계, 엑스터시를 복용한 후 더욱 정신없어지는 인간들을 잡는 데 가벼운 카메라는 아주 유용했지만 호흡 조절을 해야 하는 부분에서도 그 카메라는 무거워질 줄을 모른다. Fix 되어 있는 디지털 카메라는 약점이 보일 수도 있다는 생각에서인 지 감정과는 달리 카메라는 칠칠맞게 혼자 떠돌아다니고 있다.

(다시 DV 얘기에서 떠나 진짜 영화 얘기를 하도록 하자. .)

<애니버서리 파티>는 약간 모자란 관조를 보인다. 영화의 구성은 종반에 가서 영화 모두를 아우르는 형식을 취하고 있는데 그 부분에서 조금 더 안타깝고, 조금 더 많은 생각을 갖게 하기 위해선 인물들에 대한 설명을 조금 더 하거나 특정 인물 몇 명을 많이 부각시켜야 했고 마지막 중요한 역할을 하는 조와 샐리의 아이에 대한 언급과 조의 여동생에 관한 이야기가 아주 조금은 더 들어가 있어야 했다. 관객은 정신없이 펼쳐지는 정신나간 인간들의 모습을 정신없이 떠돌아다니는 카메라를 통해 보다가 정작 마지막에 중요한 부분에 대한 보여지지 않은 암시를 놓치게 된다. 하지만 호흡 따윈 일반 관객들에게 필요 없다. 아니. . 어쩌면 이 영화는 그런 건 애초부터 염두 해 두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중요한 건 많이 보여지는 것이 대중 영화 아닌가. . 적어도 이 영화에서는 많이 보여지는 것에는 강하고 구성력 역시 우습지 않다.

주요 시퀀스는 모두가 인간 관계에 대한 얘기들이다. 감독 데뷔를 준비하는 작가 출신 남편. 결혼 후 헤어져 있다 다시 만나 아이를 갖게 된 배우인 부인. 이 부부에게 찾아온 사람들은 위에서도 말했듯 즐겁게 하기도 화나게 하기도 하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각각의 개성으로 조와 샐리의 기분을 움직이게 되는데 이 모든 이들이 주요 시퀀스에서 제 역할을 다할 뿐 아니라 결국 조와 샐리의 관계가 다시 극단으로 치닫게 되는 부분에까지 충실히 닿아 있다. 가볍게 한 번의 웃음거리로 실없이 사라지는 게 아니라 이 많은 인간들이 심각한 상황에서 결론적으로 한 몫씩 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한없이 가벼워 보이는 이 영화가 꽤 수준 있는 구성력을 가진 영화라는 것을 입증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