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섬> 고통과 아픔이여 나비처럼 날아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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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섬> 고통과 아픔이여 나비처럼 날아가라 :::

노처녀 | 2001년 11월 3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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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곳에는 희망이 있고 보이지 않는 진실이 있고 아름다움이 있다.

1. 혜나
세 여자가 있다 귀에 빼곡이 박힌 피어싱, 노랗고 짧게 기른 머리카락, 건들거리는 말솜씨. 그녀는 십대소녀이자. 방금 화장실에 아이를 버리고 온 여자이다. 배속에 힘을 주었는데도 아이는 나오지 않는다. 긴긴 한숨을 쉬어 간신히 자신의 뱃속에서 낳은 아이를 주저함도 없이 먼 곳으로 밀어버렸다. 온 통 땀에 젖은 혜나의 손에는 녹색 날개가 펄럭거린다. 그녀는 그 날개를 가슴속에 달고 무작정 시외버스터미널로 떠난다.

2. 옥남
자신의 딸을 위해 몸을 바친 엄마. 소중함이 무엇인지 잘 알고 있는 그녀는 딸의 행복을 위해 자신의 몸을 버린다. 그리고 남편에게 버림을 받는다. 남편이 쥐어준 새파란 종이 몇 장. 이것을 손에 쥔 옥남. 이제 어디로 가야 하지?

3. 유진
뮤지컬가수인 그녀는 하얀 눈처럼 맑은 마음을 가진 여자이다. 하지만 자신의 목에 퍼진 종양을 자신의 마음으로는 밀어낼 수 없다. 자신이 간직해온 물건들을 차곡차곡 쌓아 쓰레기통에 넣으며 뒤돌아 선다. 그러다 다시 뛰어가 자그마한 오르골을 꺼낸다. 자신의 성대처럼 자그마한 오르골. 그것은 그녀가 하고 싶은 가수를 이젠 못한다는 생각에 오르골이라는 또 하나의 희망을 가수로 착각하고 있는 지도 모른다. 그녀는 오르골을 꺼내며 죽음을 기다린다.

4. 만남
그들 셋은 만남을 반복한다. 옥남과 혜남은 거대한 눈길 사이에 죽음을 기다리는 유진을 만나고 거대한 눈산위에서 유진과 같이 죽음을 기다리는 노인, 욕쟁이 트럭운전사, 조금은 징그럽지만 코믹한 게이밴드, 그리고 뱃사람을 만나며 슬픔을 잊게 해주는 꽃섬으로 소풍을 가기 시작했다. 만남 속에는 죽음이라는 것도 포함이 된다. 세상을 살아가기에 버거운 사람들. 죽음을 기다리는 사람들. 그들은 만나는 사람들의 상처를 보면서 함께 있어주고 보듬어 준다. 자신들의 상처는 생각지도 않은 체 성모마리아가 된 것처럼.

5. 꽃섬
꽃섬은 그들에게 남겨진 마지막 안식처다. 그들에게서 꽃섬은 그들의 아픔을 소독해주고 잊게 해주는 망각제와도 같은 존재다. 하지만 그들은 그곳에서 한 명을 먼 곳으로 보내게 되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온다. 우리 눈으로 보여지지 않는 마법 같은 이야기들. 그들에게서 약은 꽃섬보다는 현실이었나 보다.

6. 잡담
제가 꽃섬을 보게 된 이유는 두 가지 였습니다. 우선 문승욱 감독이 만든 나비와 너무나 흡사한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리고 고통과 슬픔이 없는 곳. 그런 곳을 나 또한 느끼고 싶어서 였지요. 하지만 실제로 우리 삶에 그런 곳이란 없습니다. 현실적으로 따지면 아마 꽃섬은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도시 한부분 인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저는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꽃섬을 통해서 느끼고 싶은 건. 삶이 지겨울 때 내가 지칠 때 한번쯤은 꽃섬이란 곳을 상상하며 우리의 고통을 조금이나마 덜어보자 이런 환상을 주고 싶었던 게 아닐까 라고요. 그런 생각에 이 영화는 나에게 중요한 존재가 되었습니다. 내 인생에서 한부분을 차지할 영화가 되겠지요.

하지만 나비처럼 이 영화는 관객들에게는 그다지 희망을 얻지 못할 것 같습니다. 나비가 어디론가 날아가듯이 꽃섬도 나비를 따라 어디론가 사라져 관객들 시선 밖으로 멀리 날아갈 때쯤 우리는 느낄 것입니다. 잡을 껄..

와이키키와 나비와 꽃섬을 보면서 이 영화들은 우리 영화계의 또 다른 틈을 비집고 가려는 중요한 요소가 되어 줄텐데. 이것들을 보지 못하는 관객들이 미워집니다. 하지만 또 나오겠죠. 이런 좋은 영화는 언젠가 빛을 보기 마련일 것입니다. 저는 그걸 믿고 영화를 사랑하는 사람도 믿고 있을 것입니다.

꽃섬을 보고 몇일 뒤 또 한번 지갑을 털어 동네 극장에서 영화를 보았습니다. 아마 그 영화 간판이 내리기 전까지 저는 몇 번 더 그 극장을 찾아 갈 것입니다. 그리고 사람들에게 얘기하겠죠. 이 영화는 정말 고통을 잊게 해주노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