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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itation of Life


하나를 위하여 :::


양유창 | 2002년 04월 23일
조회 5685


요즘 극장가는 좀 심심하다. 속속 발표되는 깐느영화제 초청작 명단을 제하고는 그다지 이슈도 없어 보인다. <집으로...>와 <재밌는 영화>가 박스오피스를 양분하고 있는데, 오랜만에 찾아온 한국영화의 흥행 성공이지만, 그다지 주목받고 있는 것 같지는 않다. <집으로...> 같은 영화가 가지고 있는 비주류 배우의 사실성과 '향수'라는 뻔한 아이템이 이 영화의 성공을 해설하는 열쇠의 전부다. 다른 건설적이거나 창조적인 분석기사는 찾아볼 수 없는 게 현실이다. 아니, 어쩌면 애초부터 그런 것은 불가능한 것인지도 모르지만.

오늘 '르 몽드' 사이트에 들어가서 '안티-르뼁'에 관한 기사를 읽었다. 사실 이것은 내게 큰 충격이었다. 21일 프랑스 대선에서 장-마리 르뼁(Jean-Marie Le Pen)이 리오넬 조스팽을 제치고 2위로 결선투표에 진출한 것이다. 난 르뼁이라는 이름만 들어도 소름이 끼치는데, 프랑스 동부 알자스 지역의 소위 분리주의자들이 르뼁의 열렬한 지지자들인 것으로 알고 있다. 엄청나게 욕을 먹으면서도 꾸준하게 10% 안팎의 지지를 받고 있는 국민전선(Front National)의 당수 르뼁. 마치 우리나라의 김종필을 연상시키는 인물이다.

지금 수백만명의 젊은이들이 르뼁 반대 시위를 벌이고 있다. 르 몽드의 만평은 이번 선거결과를 극우주의당의 경비행기가 에펠탑을 들이받는 테러를 저지르고 이에 젊은이들이 레지스땅스를 조직하는 라디오 방송을 하는 것으로 그리고 있다. 그들의 슬로건은 이것이다. "첫번째, 두번째, 세번째 세대들, 우리 모두 이민자의 자식들이다."

이민자의 나라인 프랑스에서 이민자들을 추방할 것을 주장하는 르뼁의 부상은 사실 유럽 전체의 우경화와도 무관하지 않다. 족벌기업 회장 출신인 베를루스코니가 총리로 있는 이탈리아를 비롯해 스페인, 벨기에, 오스트리아 등은 우파 정부가 운영중이다. 영국의 토니 블레어는 점점 우경화되어가고 있고 영국의 극우당 BNP의 부상도 염려된다. 독일 역시 지금 진행중인 지방자치 선거에서 우파의 승리가 눈에 띄게 증가하는 추세이다. 우파의 득세는 점점 깊어가는 유럽 경제 침체와 실업률 증가와 무관하지 않은데 문제는 이것과 별로 연관도 없는 이민자들, 유색인종들이 고통받게 된다는 것이다.

어쨌든 프랑스는 지금 프랑스적 가치를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 르뼁의 부상으로부터 얻은 쇼크를 이겨내기 위해 좌파마저 노선은 다르더라도 시라크 쪽으로 단결하자는 메시지가 나오고 있다. 자유, 평등, 박애의 가치로 최초의 근대시민사회를 세우고, 68혁명의 도화선을 제공하고, 레온 블룸 같은 훌륭한 좌파 정치가를 양성한 국가인 프랑스가 지금 왜 이렇게 극단을 달리게 되었는지 제대로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은 드물다. 사실상 유럽의 중심이라고 할 수 있는 프랑스에서 만약에라도 르뼁이 대통령이 되는 날이면 세계는 또한번 히틀러의 치욕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다음달 벌어질 결선투표에서 이것을 막아야 한다. 그리고 좌파가 다시 내각을 꾸리도록 지원해야 한다. 민주주의란 납득할 수 있을 만한 가치들을 다수결 원칙으로 운영하는 체제이다. 납들될 수 없는 가치에는 똘레랑스를 적용할 수 없다. 그것은 모두가 동의한다고 해서 인간이 인간을 잡아먹을 수 없는 것과 똑같은 이치다. '르 몽드'의 부제처럼 '하나를 위하여' 유럽은 좀더 좌측으로 갈 방법을 찾아야 할 것이다.






양유창
마음으로부터 그림을 그립니다. 무의식으로부터 시를 씁니다.
비밀스럽게 여행을 떠납니다.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노래를 부릅니다.
운명과 미래를 혼동하지 않습니다.
무심코 떨어뜨린 책갈피에서 21세기가 느껴집니다. 그곳은 슬픈 신세계입니다.
이별이란 말은 너무 슬퍼 '별리'라고 말합니다.

BLOG: rayspace.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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