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호러는 엽기가 아니다 - 호러존 김종철 인터뷰 :::
양유창 | 2001년 02월 14일
조회 2097
요즘 '엽기'라는 단어가 유행이다. 하도 남발하다보니 이제 엽기적이지 않은 것까지도 엽기적인 것이 되어버렸을 정도다. 아마도 이러한 '엽기'의 유행은 특히 인터넷의 전파력이 큰 영향을 미친 것 아닌가 싶다. 요즘 회자되는 유해사이트나 그밖의 개인 홈페이지들에서 '엽기'라는 단어를 쉽게 찾아볼 수 있으며 검색엔진의 인기 검색어 순위에서도 '엽기'가 당당히 상위권에 랭크되어 있을 정도니까.
여기 '엽기'를 거부하는 한 청년이 있다. 그가 운영하는 사이트는 호러영화에 관한 사이트이지만, 그는 요즘 '호러=엽기'라는 일반인의 의식 속에 남아 있는 등식에 가슴이 무척 아프다. "호러영화"는 말 그대로 영화의 한 장르일 뿐인데, 마치 잔혹, 엽기 이런 것들이 호러의 모든 것을 규정짓는 것 같아 속상하단다.
피가 튀기고 시체가 빈번하는, 그래서 두 눈 뜨고 보기 힘들 것만 같은 호러장르. 이 장르에 대해 무한한 애정을 바치는 사람들은 지금 인터넷 한 사이트에 모여 산다. 현재 국내에서 호러에 관한 가장 큰 커뮤니티를 가지고 있는 "호러존"이 바로 그 아지트다. 이 모임의 설립자는 김종철씨.
김종철씨는 1972년 대구 출생으로 어릴 적부터 가졌던 호러영화에 관한 관심을 동호회와 인터넷 사이트로 발전시켜 가고 있다. 1998년 11월 6일 홀로 시작한 "호러존(http://www.horrorzone.net)"의 현 운영진으로 한국에서 호러영화에 관한 저변을 넓히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김종철님을 만나보았다.
Q: 호러영화에 처음 관심을 가진 계기는 무엇이었나?
 | | 김종철 ⓒray yang |
A: 1981년쯤엔가 초등학교 3학년쯤 됐을거다. <13일의 금요일>을 보았는데 그날 밤 잠을 잘 수 없었다. 무섭다기보다는 너무 재미있어서였다.
Q: 호러영화와 관련한 인연을 말해달라.
A: 1985년부터 87년까지 비디오 대여점에서 주로 B자 테잎들을 빌려보면서 호러영화와 친해지게 됐다. 당시에는 출시된 호러 비디오가 거의 없었기 때문에 호러영화를 보려면 어쩔 수 없이 불법 복사된 테잎을 보아야 했다. 덕분에 비디오 대여점 아저씨와 친해지기도 했지만. 기억에 남는 영화는 <피세스(Pices)>라는 스페인 영화와 <좀비오(Re-Animator)>다.
Q: 호러존을 시작할 때 상황이 궁금하다.
A: 처음에는 kornet에 계정을 얻어 개인 홈페이지로 만들었다. 취미로 한 건 아니고 처음부터 본격적인 사업을 의도하고 시작했다. 처음 호러존에는 호러영화에 관한 리뷰를 주로 싣었다. 처음 6개월간 싣은 분량이 350편 정도 된다.
Q: 호러존의 동호회는 아마 호러에 관련한 국내 동호회 중 가장 활성화된 곳이 아닌가 생각되는데, 동호회 시작은 어땠나?
A: 호러존을 방문하는 사람들 중 몇몇과 의기투합하여 1999년 7월 5일 동호회를 개설하였다. 초기에는 5,6명이 발기인으로 나서 함께 시작하였지만 이분들은 개인적인 사정으로 중도에 하차하시고 현재 남아있는 사람은 없다.
Q: 현 호러존의 운영진은 어떻게 되나? 소개해달라.
A: 일단 본인 김종철과 LA에서 디자인과 프로그래밍을 담당하는 이화용씨, 호러영화 리뷰를 쓰시는 김진성씨, 김송호씨, 엄다인씨, 한청남씨가 있다. 이분들은 모두 나우누리 호러모임 '고블린' 출신이기도 한데, 특히 엄다인씨는 괴수물에 대해 전문가적 지식을 갖고 있고, 한청남씨는 주로 일본 호러 소식을 전한다. 그밖에 외부필진으로는 듀나, 강명석씨와 한동진씨가 있다.
Q: 호러존은 어떤 식으로 운영되나?
A: 일단 1달에 1회 동호회 차원에서 정기상영회를 갖는다. 주로 신촌의 RUSH라는 장소를 이용한다. 그리고 서울에서 1달에 2,3회씩 운영진 회의를 갖는다. 본인이 대구에 사는 관계로 한 번 모임을 가지려면 지금처럼 서울에 올라와야 하는 불편이 있기에 주로 대화는 나우누리에서 채팅으로 하는 편이다.
Q: 호러존 말고도 국내에 호러모임이 더 있나?
A: 일단 호러는 국내에서 약간 천대받은 장르지만, 마니아들도 거느리고 있는 장르다. 호러의 특성이 그런 것 아닌가. '하이텔 호러천국', '천리안 캐슬록', '나우누리 고블린', 그리고 '유니텔'에 각각 호러모임이 있고 'nKino 클럽', '다음 카페'에도 여러 모임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하지만 호러존이 가장 활성화되어 있다.
Q: 호러존에서 주로 하는 일은 뭔가?
A: 일단 호러에 관한 모든 것을 다 하려고 한다. 영화, 음악, 책, 게임 등 호러에 관한 것이면 뭐든지 다 소개한다. 영화로 시작했지만 차차 다른 장르로 넓혀가고 있는 중이다. 나중에는 각각 매체별로 특화시킬 계획이다. 영화사나 출판사들과 연계해서 온라인 홍보를 해주기도 한다. 지금까지는 주로 서적을 협찬받아 홍보하는 일을 했다. 클라이브 바커의 [피의 책], [뱀파이어 헌터 D], 무협소설 [유혼], [고어영화], [텔미썸딩], [해피엔드], 스즈키 코지의 소설 등을 홍보했다. 대개 시공사에서 출판한 책들이 많다. 그밖에 음반은 <처키의 신부> OST, <여고괴담 두번째 이야기> OST, <가위> OST, <링 오리지널> OST 등을 홍보했다.
Q: 호러존에서는 영구아트와 심형래에 관한 글을 자주 볼 수 있다. 영구아트와의 관계를 말해달라.
 A: 호러존의 운영진 모두 심형래의 팬이다. 그래서 그렇게 칭찬하는 글을 쓸 수밖에 없는 것 같다. 우리들 모두 영구아트에 놀러가서 심형래씨의 작품 구상 듣는 것을 즐긴다. <용가리>가 욕을 많이 먹긴 했지만, 뭐 우리는 개의치 않는다. 그보다 훨씬 이전부터 팬이었으니까. <티라노의 발톱>은 한국호러영화사상 걸작이라고 생각한다. 영구아트와의 관계는 팬 입장을 떠나서는 사업적 협력관계라고 할까. 앞으로 많은 교류가 있을 것이다. 물론 우리는 인터넷 매체로서 영구아트의 영화를 홍보해주는 일을 하겠지. 현재 호러존이 제휴하고 있는 곳은 영구아트와 씨네라인이 있다.
Q: 호러존에서 궁극적으로 하고 싶은 것은?
A: 일단 호러를 일반인들에게 좀더 알리고 싶다. 요즘 '엽기'라는 말이 유행하고 있는데 한편으로는 엽기와 호러가 동일시되는 것 같아 안타깝다. 그래서 사람들이 호러를 더 천박한 장르라고 여기는 것이다. 우리 동호회에서는 '시체', '스너프'란 말을 언급하기만 해도 회원 자격이 박탈될 정도로 이 문제에 예민하다. 사람들이 액션영화를 좋아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호러도 그저 한 장르로 받아들여주었으면 좋겠다.
Q: 앞으로의 계획은?
A: 영문 사이트를 오픈할 계획이다. 아무래도 호러의 팬은 국내보다는 외국, 특히 미국과 일본에 집중되어 있다. 영문화 작업을 하면 보다 많은 한국 호러를 외국에 알릴 수도 있을 것이다. 또, 앞서 말했듯이 매체별로 사이트를 분리할 것이다. 영화, 음악, 책, 게임 등등. 현재 추진하고 있는 것은 '괴수물' 전문 사이트다. 아마도 국내 최초의 괴수물 사이트가 될 것인데, 이 사이트는 한글과 영문으로 동시에 제작된다. 주소는 Monster.horrorzone.net 이 될 것이고 조만간 오픈할 예정이다. 아무래도 괴수물은 일본이 전문인데, 사진 한 장에도 저작권 문제가 까다롭다. 그래서 이 사이트는 비영리 팬사이트 형식으로 운영될 것이다. 영문 번역을 위해 도움을 주고 있는 분들이 있다. 이화용, Demian, 김송호, 김진성, 강보연씨 등이 그들이다.
Q: 수익창출 계획도 있나?
A: 아쉽게도 호러존은 현재 수입원이 없다. 아무래도 우리들이 단지 호러의 팬 입장에서 시작하고 초기 투자비용도 없다보니 수익을 내는 데에는 신경을 쓰지 못했다. 앞으로는 CP 사업과 캐릭터 상품을 판매하는 쇼핑몰 등으로 수익을 낼 계획이지만, 한참 후의 일이다.
Q: 최근에는 외국 호러 사이트와 제휴를 모색하고 있다고 들었다.
A: 사실이다. 이번에 사이트를 영문화하면서 기사교류를 추진하고 있다. 미국의 호러잡지 중 'Phandom'이라는 곳은 꽤 규모가 큰 곳이다. 이곳에서 운영하는 'MonsterZero' 사이트와 기사교류를 추진중이다. 미국 시카고에서 열리는 'G-Fest'라는 거대괴수영화제가 있는데 이 사이트에 대한 취재기도 교류형식으로 받을 예정이다.
Q: 왜 호러영화를 보는가?
 A: 재미가 있으니까. 우리 사이트 중 '호러의 눈'이란 코너가 있는데 여기에 호러에 대한 우리의 생각을 정리해놓았다. 사실 알고보면 우리가 보는 모든 영화에는 다 호러적인 요소가 있는 것 같다. 그런데 그런 걸 모르면서 영화를 보는데 사실 끔찍하다. 예를 들어, <타이타닉>에서 사람들이 다 떠내려가고 빠져죽는데 로맨스에 가려서 잘 보이지 않는다. 즉, 스펙터클 자체로 치장되어서 수많은 사람이 죽어가도 아무렇지 않게 느껴지는 것이다. 그에 반해 일반적인 호러영화에는 '사람'이 있다. 사람을 죽이는 데에서 공포감을 만들어가는 장르가 호러이기 때문에 호러팬들은 그런 영화를 보면서 공포감을 느끼게 된다. 이건 <타이타닉>이 아무런 거리낌 없이 사람들을 죽이는 것과 다른 것이다. 호러가 훨씬 인간적이라고 할까. 일반 사람들은 호러를 좋아하는 사람을 무슨 범죄라도 저지른 것처럼 색안경을 끼고 보기 일쑤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호러팬을 단지 한 장르의 팬으로 봐주었으면 좋겠다.
Q: 작년에도 그렇고 올해에도 한국에서 호러영화는 계속 만들어질 것 같다. <여고괴담> 이후 계속되는 한국의 호러영화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A: 다 거품이다. 엄청나게 히트한 <스크림>의 영향이 결국 <여고괴담>을 낳았고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호러는 소외되고 있긴 하지만, 대중적인 장르다. <스크림>이 1억달러를 벌어들였는데 다른 장르의 영화로도 그런 박스오피스는 놀라운 수치다. 호러영화는 싼 값에 제작해서 크게 히트시킬 수 있기 때문에 한 마디로 돈이 되는 장사로 인식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제대로 만들어진 한국 호러영화는 없는 것 같다.
Q: 그렇다면 한국에서는 어떤 호러영화가 나와야 할까?
A: 전통적인 귀신영화가 나와야 한다. 우리에게는 그게 맞는 것 같다. 개인적으로는 <월하의 공동묘지>를 리메이크했으면 좋겠다. 아마도 이제 디지털 시대이기 때문에 호러장르는 더 인기 있어질텐데 외국것을 베끼는 것보다 우리가 잘할 수 있는 걸 해야한다.
Q: 작년엔가 영국에서 발간한 호러영화 도감을 보다가 <월하의 공동묘지>가 영어로 소개되어 있는 걸 보고 기뻤던 적이 있다. 1996년에는 <천년환생>이란 제목으로 남기남 감독이 리메이크한걸로 아는데.. 물론 소리소문없이 지나갔지만, 그런데 1967년의 그 권철휘 감독이 아직 살아있나?
A: 그건 잘 모르겠다. 개인적으로도 그렇고 우리 운영진들도 남기남 감독은 특출난 감독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렇게 적은 규모 말고 요즘 돈 들이는 것처럼 몇십억 들여서 <월하의 공동묘지> 같은 건 리메이크 할 만하다고 생각한다.
Q: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호러영화는 뭔가?
A: <엑소시스트>, <할로윈>, <링(일본판)>, <티라노의 발톱>이다.
Q: 호러팬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A: 건전한 호러생활을 즐기자. 호러는 엽기가 아니다. 또 천대받아야 할 장르도 아니다.
호러존: http://www.horrorzone.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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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양유창
마음으로부터 그림을 그립니다. 무의식으로부터 시를 씁니다.
비밀스럽게 여행을 떠납니다.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노래를 부릅니다.
운명과 미래를 혼동하지 않습니다.
무심코 떨어뜨린 책갈피에서 21세기가 느껴집니다. 그곳은 슬픈 신세계입니다.
이별이란 말은 너무 슬퍼 '별리'라고 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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