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D  PW    쪽지함쇼핑카트




Imitation of Life


범죄의 재구성 :::


양유창 | 2004년 04월 12일
조회 9430



국회의원 선거가 3일 앞으로 다가왔다. 이번 선거는 대한민국 역사상 가장 중요한 선거 중의 하나라고 감히 말하고 싶다. 지난 50년간 대한민국의 기득권을 대표해왔던 세력이 과연 몰락하느냐 아니냐를 결정할 수 있는 단 한 번의 기회이기 때문이다. 불행히도 결과는 그다지 낙관적이지 않다. 초유의 탄핵사태로 똘똘 뭉쳤던 개혁 세력이 연거푸 자살골을 넣으며 무너지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3공 세력이 죽이지 말아달라고 애원하는 눈물 공세를 전방위적으로 펴는 덕에 마음 약한 국민들이 하나둘 굳게 지켰던 맹세를 허물고 있다. <태극기 휘날리며>에서 원빈이 자신을 죽이지 말아달라고 애원하던 병사를 풀어줬더니 전세가 역전되자 원빈에게 달려드는 장면이 생각난다. 정말 눈물이 난다. 힘들게 이루어왔던 민주화가 다시 원점으로 되돌아가는 것인지..

이렇게 중요한 시점에 영화 얘기 따위를 해야하는가? 라고 반문하면서 이 글을 시작한다. <범죄의 재구성>은 훌륭한 영화다. 재미있는 영화이고 한국 영화사에서 의미있는 영화이기도 하다. 이 영화로 데뷔한 신예 최동훈 감독은 칭찬받을 만하다. 그에게 한국영화의 미래를 걸어도 좋을 만큼 짜임새 있게 잘 만들었다. 신인감독의 솜씨라고 믿기 힘들 정도다. 작년 장준환 감독이 멋진 데뷔전을 펼친데 이어 올해는 최동훈이다.

화면을 분할하는 예스런 기법 - 필자는 이런 기법을 아주 좋아한다. 지능적인 두뇌플레이에 과거와 현재를 넘나드는 구성이 흠잡을 데 없이 자연스럽다. 게다가 사기꾼 놀이는 스릴 만점이고, 박신양이 보여주는 잔꾀들도 그럴 듯하다. 무엇보다 범행수법이 허무맹랑하지 않아서 좋다. 미처 생각지 못한 지능범죄로 관객의 시선을 집중시킨다. 괜히 어설프게 현대판 <오션스 일레븐> 흉내를 냈다가는 한없이 진지한 블랙코미디로 전락했을 것이다.

또, 배우들 모두 연기를 잘했다. 백윤식은 <지구를 지켜라!>에 이어 2연타석 홈런을 날렸고, 박신양은 그동안 가라앉아있던 그의 연기의 바탕이 연극의 기본기에 뿌리를 두고 있음을 확실하게 증명했다. 하지만 뭐니뭐니해도 이 영화에서 발견은 염정아일 것이다. <텔미썸딩> 때만 해도 심은하에 가려서 도대체 왜 캐스팅됐는지 이유를 알 수 없었던 그녀가 <장화, 홍련>에서 외모를 무기로 제법 그럴듯한 배역을 맡더니 드디어 <범죄의 재구성>에서는 존재 자체를 드러낸다. 생선 한마리 잡으러 생선가게의 부뚜막에 침입한 도둑고양이 - 바로 그녀의 배역이다. 어리숙한 표정에서 농염한 포즈까지, 이 영화에서 지능이 필요한 부분을 뺀 나머지 부분을 그녀가 채워주고 있다.

<자카르타>에서 어설프게 시도되었던 두뇌형 집단 범죄영화가 별다른 계보도 없이 단 한 방에 방점을 찍는 기분이다. 시원스럽고 명쾌한 영화. 개봉이 15일이던데, 아무리 급해도 투표는 꼭 하고 보시라. 일반 시민이 그 투표권을 갖기 위해 뿌려왔던 엄청난 피와 2천년이 넘는 어마어마한 인고의 세월을 생각하면 투표를 안할 수가 없을 것이다.






양유창
마음으로부터 그림을 그립니다. 무의식으로부터 시를 씁니다.
비밀스럽게 여행을 떠납니다.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노래를 부릅니다.
운명과 미래를 혼동하지 않습니다.
무심코 떨어뜨린 책갈피에서 21세기가 느껴집니다. 그곳은 슬픈 신세계입니다.
이별이란 말은 너무 슬퍼 '별리'라고 말합니다.

BLOG: rayspace.tistory.com

 양유창 님의 다른 기사 보기 >><< 양유창 님과의 대화 


Readers' Comments


내 의견 쓰기


More Articles to Explore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 어리버리 최악 (2004/05/06)
아라한 - 장풍대작전 (2004/04/29)
범죄의 재구성 (2004/04/12)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 (2004/03/20)
강제규와 강우석 비판 (2004/02/29)

  기사목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