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니와 준하> 애니메이터 이종혁 감독 인터뷰
글: 이종열
2001년 11월 2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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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영화의 파이를 한 뼘 넓힌, 이종혁 감독으로부터 이에 관한 속 깊은 얘기를 들어보았다.
애니메이터 입문 동기
만화나 영화를 좋아해서 애니메이션을 하게 된 것은 아니다. 나는 회화에서 먼저 시작하게 된 것 같다. 회화를 움직이고 싶다는. 뒤늦게서야 미야자키 하야오 작품을 보기 시작했고 한편으론 영화도 많이 좋아했다. 그러나 내가 잘 할 수 있는 건 영화도 아니고 회화도 아닌 그 중간 지점에 있는 것 같더라. 그래서 시작하게 됐다. 개인적인 내적 욕구에 의해.
<와니와 준하>의 애니메이션 부분을 하게 된 동기는?
청년필름의 모험이었다.(웃음) 농담이고…, 개인적으로 준비하던 내 작업이 있었는데 기기서 몇몇 컷을 보고는 그쪽에서 마음에 들어했던 것 같다. <와니와 준하>와 정서적으로 맞는 공통점이 보인 때문이었을 것이다.
시나리오를 보고 제일 먼저 떠올랐던 것은 사실적이고 섬세한 느낌의 애니메이션이었다. 그러나 국내 상업애니메이션에서 딱 이거와 맞는 검증된 작품은 없었다. 그래서 선뜻 하기가 겁이 났지만 다카하다 이사오의 <추억은 방울방울> 같은 것도 있고, 해보지 않을 이유는 없었다. 내가 기존해 했던 작업이랑 조금 틀리게 새로운 시도를 했는데 아주 독특하진 않지만 이런 류의 애니메이션은 조금 생소한 것이었다. 김용균 감독도 이런 류의 애니메이션일 줄은 몰랐을 것이다.
애니메이션이 굉장히 사실적이고 정겹다
사실적인 작업을 하고 싶었다. 그래서 애니메이션 분량을 영화에서 보는 그대로 미리 실사로 찍어 두었다. 실사를 찍는 건 사실적인 작업을 위해선 안전한 수단이다. 미야자키 감독처럼 사실적 표현을 위해 실사를 찍는 걸 굉장히 싫어하는 사람도 있긴 하지만 실제 배우들의 버릇 같은걸 다 담아내고 싶었던 나에겐 굉장히 유용한 방법이었다.
다른 애니메이터들도 이번 기법은 처음 해 보는 경우가 많아 적응하는데 매우 힘들었을 것이다. 그동안의 하청시스템에서 한 방법이 아니라 그림스타일도 적응하는데 힘들었을테고 동작을 만들어 가는 과정도 굉장히 틀려, 새로운 경험이었을 것이다.
사용한 기법에 대해 자세한 설명 부탁한다.
<와니와 준하> 애니메이션에서 수채화 느낌이 더 많이 다가올 수 있고 인물에 사실감이 느껴질 수 있던 건 배경을 충분히 보여주고 로토스코핑(Rotoscoping;실사로 촬영한 영상을 한 프레임씩 프린트 한 뒤, 그림으로 옮기는 방법. <로보트 태권V>(1976)의 태권 동작, <별주부 해로>에서 차용한 <매트릭스>의 플로모 기법-카메라 수십 대를 동원해 촬영한 기법, 역시 한 프레임씩 배우의 동작을 그대로 옮겨 그린 것이다.) 기법을 쓴 때문이다. 로토스코핑 기법은 현실감 높은 움직임을 획득한다는 큰 강점이 있다. 애니메이션은 움직이는 인물의 동작을 세밀히 그려야하기 때문에 머릿속에서 만들어 내는 것보다 실제 소스를 바탕으로 그리는 편이 가장 정확하고 안전하다. 사람마다 걷는 모습도 다른데다 정밀한 근육과 뼈의 움직임, 그에 따른 옷과 머리카락의 진동 등 모든 것이 생각과 실제는 다르기 때문이다. 애니메이션은 캐릭터에게 연기를 시킨다. 역학적인 움직임으로만 그리게 되면 걷는 것, 뛰는 것 모두 관습적인 동작으로 굳어버린다. 로토스코핑 기법은 실제 배우가 만들어낸 느낌을 그대로 종이에 옮길 수 있다. <와니와 준하>의 애니메이션은 인물의 움직임은 물론, 각종 소품, 배경 등 모든 것을 그대로 옮긴 뒤 수채화 느낌으로 리터치하는 방식을 사용했다.(본 질문에 대한 답은 「씨네버스」 인터뷰를 재구성한 것입니다.)
힘들었던 점은?
모든 애니메이터들은 철야를 밥먹듯이 한다. 영화에서도 애니메이터들의 현실이 나오듯이, 여러 여건들이 많이 힘들다. 무엇보다 힘들었던 건 누구나 그렇게 얘기하겠지만 시간 싸움이었다. 욕심부리면 한도 끝도 없는데 퀄리티를 높이려다 보니, 더 힘들었다. 가령 소녀가 발가벗고 나오는 장면에서 처음에는 딸기가 박혀있는 꽃무늬 팬티를 입히려고 했다. 그려놓고 마무리에서 손이 너무 많이가서 뺐다. 땡땡이로 가느냐, 딸기무늬로 가느냐 하는 것에 따라 작업시간이 며칠이 더 걸릴 수도 있는 것이다. 일반관객은 쉽게 지나갈 수도 있는 부분에서도 우리는 고심하고 조금이라도 퀄리티를 높이기 위해 불어나는 노동량을 감내한다.
애니메이션은 공예적이다. 절대시간을 투자한 것이 굉장히 정직하게 반영된다. 또 애니메이션은 즉흥적인 면이 굉장히 적다. 되게 계산적이고 절대적인 노동을 투자해야 한다. 이 작품이 좋게 나왔다면 그것은 절대적으로 더 많이 노동을 했기 때문이다.
아쉬운 점은?
욕심이 다 채워지지 못한 것이다. 내가 보여줄 수 있는걸 다 보여주지 못한 데에 대한 아쉬움 그런 거. 구체적으로 말하면 배경 같은 것인데 완성도가 많이 들쑥날쑥하다. 인물도 얼굴이 차지하는 비중이 굉장히 높아 주인공의 경우, 거의 99%를 나 혼자서 채색을 했는데 적어도 배경은 내가 욕심부려 다하지 않고 좋은 사람을 써서 했더라면 더 훌륭한 결과물을 얻을 수 있었을 텐데, 좀 아쉽다.
앞으로의 계획은?
그동안 건강과 사랑을 잃었다.(웃음) 앞으론 <바리공주> 기술감독으로서 참여하게 될 것이다. 5년 후엔 중편을 발표할 거고 10년 후엔 장편을 할 계획이다. 그동안의 작업과는 다른 어두운 작품이 될 것이다. 애니메이션은 즐기면서 하기가 참 힘들지만 최대한 즐기면서 하는 작업이 되도록 할 것이다.
<와니와 준하>를 아직 못 본 관객들에게
<와니와 준하>는 예쁜 영화이긴 하지만 어찌 보면 쉬운 영화가 아닐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어떤 관객에게 있어선 굉장히 예쁘게, 잔잔하게 갈 수 있지만 섬세하게 배치해놓은 여러 가지 영화적인 것들을 잘 캐치하지 못하면 지루해 질 수도 있는 영화인 것이다. 나는 지금껏 두 번 봤는데 실사, 애니 모두 맘에 든다.
애니메이션에 관심 있어 하시는 분들은 꼭 보셔서 이런 애니메이션을 우리나라에서도 하는구나하고 확인할 수 있는 자리가 되길 바란다.
미술을 하는 우리 학생들에게
순수미술을 하고 싶어하는 어릴 적 나의 마음은 정말로 낭만적이었다. 고흐처럼 살고 싶었다. 그냥 그림 그리는 게 너무나 좋았고 그림만 그릴 수 있다면 배고파도 살 수 있을 것 같은 시절이었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라는 걸 대학와서 곧 느끼게 되었다. 또 소통의 문제도 있었다. 도대체 내 그림이 어떤 의미가 있을까, 우리 엄마가 좀 봐서 즐거워했으면 좋겠는데…, 하는. 그런데 난 어느 순간 다시 초심, 즉 고흐로 돌아온 것 같다. 역시 그림은 그리는 게 행복하고 재밌어야지 평생 그림을 그리지 다른 현실적인 문제 때문에 타협을 하면 재미없고 자기 자신이 초라해진다. 그림을 그리는 사람은 자기 재능에 대한 확신이 있어야 되는 것 같다.
*본 인터뷰는 월간 [아트앤디자인] 12월호에도 함께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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