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고기자리>의 김형태 감독 인터뷰
글: 양유창
2001년 05월 04일
작년 10월에 개봉한 <물고기자리>는 꽤 오래된 영화같이 느껴진다. 흥행실패와 이미연의 청룡영화제 여우주연상 수상. 그 정도의 성과를 거두고 기억의 저편으로 사라진 것만 같다. 그래서일까. <인디안썸머>가 개봉한 지금, 김형태 감독은 이미연을 시집보낸 느낌이란다. 신인감독으로서 영화 한 편을 위해 15년을 준비해온 사람. <물고기자리>의 시나리오를 들고 6년간 제작자를 찾아다닌 사람. 너무 완벽하게 시나리오를 기억한 나머지 촬영 현장에서 아무런 거리낌이 없었던 사람. 오히려 그래서 더 융통성이 없었다고 후회하고 있는 감독.
김형태 감독은 충무로 토박이다. 22살에 충무로 막내로 시작해서 15년간 영화감독의 꿈을 키워왔다. 마치 '성공시대' 프로에나 어울릴 것 같은 이 표현은 그에게 너무 적확하게 어울린다. <창밖에 잠수교가 보인다>의 막내로 시작해 한강에서의 헬기사고로 7명이 사망한 불운의 미완성작의 조감독에 이르기까지 그의 이야기를 듣는 것은 한국영화가 걸어온 길을 밟아보는 것이었다.
비록 국내에서는 평단에서도 흥행에서도 큰 지지를 받지 못했지만, 남미와 유럽의 영화제를 통해 약간의 만회를 하고 돌아온 김형태 감독을 만났다.
Q: 남미와 유럽 관객의 반응은 어땠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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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형태 ⓒ ray yang |
Q: 아르헨티나에서 영화를 수입해 개봉까지 할 것이라는 보도가 나갔습니다.
A: 올 여름에 개봉할 지도 모릅니다만, 예정일 뿐입니다. 확실하게 정해진 것은 없습니다.
Q: 영화를 하게 된 계기가 있으신가요?
A: 고등학교 때 사춘기를 겪으면서 주로 동시상영관에 자주 다녔어요. 그때는 영화보다는 그저 그 공간이 좋았어요. 서너시간씩 자유롭게 보낼 수 있는 공간 말입니다. 그때 영화를 보면서 영화인이라는 직업이 있구나 라고 처음 알았습니다. 대학에 들어와서는 영화를 많이 보기 시작했습니다. <택시 드라이버> 같은 영화들을 학교 열람실을 통해 구해 봤지요. 당시 전공은 금속공학이었는데, 전공에 취미가 전혀 없었어요. 영화를 보는 게 좋았고, 그래서 22살때 영화를 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마침 <창밖에 잠수교가 보인다>의 감독님을 친구의 소개로 우연히 알게 되었고, 그분의 추천으로 서울예전 연극과에 다시 입학하였습니다. 그래서 원래 84학번이었지만, 서울예전은 89학번입니다.
Q: 막연한 동경보다는 직업으로서의 영화는 다를텐데요.
A: 전 넥타이 매는 생활이 싫었어요. 자유롭게 살고 싶었고 그게 영화였어요. 충무로에서 막내부터 시작해서 연출부 생활을 하면서 한 번도 영화 이외의 것을 생각하지 않았어요. 어쩌면 <물고기자리>에서 이미연이 연기한 '애련'이 저와 다를 바 없지요. 집착인지도 몰라요. 제가 사랑하는 대상은 영화입니다.
Q: <물고기자리>는 어떻게 만들어졌나요?
A: 저는 조감독 시절 입봉을 준비하면서도, 제 스타일에 맞는 작품으로 데뷔를 하고 싶었어요. 그저 스타에 줄서서 데뷔하는 감독은 되고 싶지 않았지요. 시나리오 두 편을 가지고 있었는데, 한 편은 <비트> 스타일의 영화였고, 또 한 편이 지금의 <물고기자리>였습니다. 마침 당시에 <비트>가 기획되는 바람에 전자는 접었구요. 후자를 가지고 제작자를 찾아다녔습니다. 당시 막 대기업 자본이 영화계로 들어오기 시작한 때였는데, 오히려 더 힘들었지요. 대기업 사람들은 영화계 경력이 많은 조감독 보다는 젊은 신인감독을 원했습니다. 뭐랄까 좀더 자기들이 쉽게 다룰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저야, 10여년간 영화 하면서 영화가 만들어지는 시스템을 잘 알고 있었으니까 그쪽에서 좀 부담스러웠을 겁니다.
그렇게 4년을 그냥 보냈습니다. <물고기자리> 시나리오를 수정하면서 여러 제작자를 만났지만, 그들은 모두 흥행성이 없다고 거절했습니다. 당시는 로맨틱 코미디가 유행하던 시기라 이런 심리적인 멜로영화는 인기가 없었지요. 그러다가 우연치 않게 한 프로듀서를 만나게 됐고, 그가 투자자로부터 펀딩을 받아 영화화가 결정되었습니다. "흥행에서는 자신 없지만, 이 영화는 만들어져야 될 영화라고 생각한다." 라고 투자자를 설득했는데 운이 좋았다고 생각합니다.
Q: 요즘 비둘기둥지라고 영화 노동자들의 권리찾기 인터넷 동호회가 화제가 되고 있는 것 아시지요? 도제시스템에서 데뷔한 감독으로서 어떻게 생각하세요?
A: 그건 당연히 보장받아야 하지요. 저는 감독 데뷔하기 전까지 다른 직함이 없었어요. 누가 직업이 뭐냐고 물어보면 그저 '감독지망생'이라고 말하고 다녔어요. 한 마디로 소속감이 없는 거지요. 어디 소속되어 있지 않으니까 불안하고 불안하니까 불편한 처우에 대해 이야기하기가 힘든 거예요. 저는 연출부 시절에도 1:1 계약을 주장했는데, 그러면 제작자는 저보고 또라이라고 했어요. 당시에는 임금을 어음으로 주는게 관례였는데 저는 절대 어음 안받겠다고 해서 제작자들의 기피인물이기도 했지요. 사실 몇 푼 되지도 않는걸 어음으로 주다니요! 요즘 한국영화 제작비가 올라가고 있지만, 스탭들이 받는 돈은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그대로예요.
Q: 제 생각으로는 영화노동자들이 단체를 만들지 못해 힘을 발휘하지 못하는 것 같아요. 일종의 노조 같은 것이 있어야 하는데, 지금은 노조는 커녕 그들이 소속된 회사 자체가 없으니 그저 관례대로 따를 수밖에 없는 형국이지요.
A: 맞습니다. 지금의 한국영화가 점점 수준이 높아지고 있는 것이 궁극적으로는 스탭들의 공헌이 큰 데 정작 제작자들은 그걸 인정하려 하지 않아요. 제 생각에 이런 것들이 전반적으로 고쳐지려면 2-30년은 걸릴 것 같아요. 제작자들의 마인드와 스탭들의 마인드가 변화한다면 조금 더 급진적으로 바뀔 수도 있을 겁니다. 스탭들의 경우에, 예전에 조명 세컨드, 써드 이런 거는 그냥 동네 양아치 데려다가 일꾼으로 부려먹은 거거든요. 한 마디로 전문성이 없는 거죠. 이런 부분도 정말 전문적인 인력을 양성하려면 그만큼의 처우개선이 있어야 합니다. 그게 곧 한국영화의 발전과 직결된 문제이기도 하구요.
Q: 화제를 돌려보죠. <물고기자리>의 이미연씨는 요즘 최고의 주가를 올리고 있습니다. 당시에는 작업하는게 어떠셨어요?
A: 그 당시에 미연씨는 스케줄이 한가한 상태였어요. 아시겠지만, 개인적인 사유도 있었고, 정신적인 부분도 있었기 때문에 이 작품에 모든 것을 걸겠다는 자세로 덤볐어요. 저도 그런 부분이 마음에 들었구요. 제가 미연씨를 주인공으로 선택한 이유는 미연씨의 이미지가 마음에 들었기 때문입니다. 뭐랄까 청순한 이미지를 원했어요. 뒷모습이 청순한 여인. 하지만 돌아보면 가슴속에 무언가를 숨기고 있는 듯한 여자의 얼굴을 갖고 있었어요. 미연씨는 몰입하는 연기자예요. 실제 배역의 인물이 되기 위해 평소에도 똑같이 행동합니다. 상대배역인 최우제씨의 사진을 늘 갖고 다니면서 보고 감정을 놓치지 않으려고 노력해요. 물론 최근에는 박신양씨의 사진으로 바뀌어 있더군요. 그때는, 내 작품을 떠난 배우를 보는 것이 마치 딸을 시집보낸 느낌이었어요.(웃음)
Q: 최우제씨의 캐스팅은 어떻게 이루어졌지요?
A: 남자배우는 반드시 신인을 쓰겠다고 생각했어요. 일단, 스타를 쓰게 되면 제가 두 남녀 스타에게 치여서 제대로 연출을 못할 거라고 생각했구요. 오디션을 통해 최우제씨를 선발했습니다. 우제씨를 선택한 것에 대해 후회는 없습니다. 다만, 연기경험이 없는 우제씨를 위해 현장에서 좀더 물리적인 시간을 여유있게 할애했어야 했다는 교훈을 얻었지요. 우제씨가 가지고 있는 잠재적인 능력을 제가 다 끌어내지 못한 것 같아 미안할 따름입니다.
Q: <물고기자리>는 어떤 영화였다고 생각하세요?
A: 처음에 투자를 받지 못하고 있을 때 제작사들이 주로 요구했던 것은 영화를 스릴러로 만들자는 거였어요. 하지만, 저는 그랬죠. <원초적 본능>이나 <위험한 정사>, <미저리> 같은 영화보다 더 잘 만들 자신이 없기 때문에 그렇게는 할 수 없다. 왠지 그런 식으로 나가면 제 영화가 안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던 거죠. <물고기자리>는 절반의 성공이면서 절반의 실패예요. 일단 한국에 없던 영화를 만들었다는 점에서 초석을 세웠다고 생각하지만, 관객들에게는 외면받았잖아요.
<물고기자리>는 이미지 중심의 영화입니다. 극중 소품이나 색감, 커트 코베인이나 새드 무비 등의 이미지 역시 등장인물의 심리상태를 나타내기 위한 이미저리로 쓰였습니다. 한편으로 <물고기자리>는 사랑과 집착의 경계에 있는 영화지요. 우리가 흔히 영화 속에서 보는 낭만적인 사랑 이면에는 이런 면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있는데 그 사람에 대해 어디까지가 사랑이고 어디까지가 집착인지 그거 미묘한 갈등이거든요. 그런 이야기를 다루려고 했습니다. 미연이 연기한 '애련'은 너무 순수한 여자입니다. 순수한 여인이기에 상처를 받고 상처를 주는 데에 쉽게 이끌립니다. 전 사랑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이런 종류의 감정에 대해서 한 번 생각해보고 싶었습니다.
Q: 앞으로 하고 싶은 영화는 어떤 영화입니까?
A: 전 상업영화 하고 싶어요. 제가 주로 하고 싶은 테마는 사람의 심리를 다루는 거예요. 장르에 관계 없이 사람의 심리가 들어 있는 영화를 하고 싶습니다. 또 제 영화를 사람들이 많이 봤으면 좋겠구요. <물고기자리>처럼 일부 마니아들이 좋아하는 영화보다는 이제 좀더 많은 관객들이 편하게 볼 수 있는 영화를 하고 싶어요. 다음 작품은 지금 시나리오 작업 중인데, <물고기자리> 보다는 조금 더 스케일이 큰 이야기가 될 것입니다. 살인사건을 둘러싼 심리극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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