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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itation of Life


일본영화 2차개방에 앞서 - 이상한 러.브.레.터 :::


양유창 | 1999년 10월 01일
조회 9685


기대와 우려의 목소리. 하지만, 우려할 만한 상황은 아닐 거라는 언론의 여유가 여론을 감싸고 있다. 그래 뭐, <하나비>나 <우나기>도 그 정도였잖아. 오십보 백보라구.

씨네21에서는 일본영화 2차 개방 소식과 함께 개봉가능권에 들어간 영화들의 목록을 일부 보여주었다. 영화목록을 쭈욱 훑어보노라면... 이와이 슌지와 츠카모토 신야의 영화를 빼놓고는 그다지 경쟁력 있는 영화들은 없어보인다. 이중 츠카모토 신야도 일부 매니아들에게만 인기있을 뿐이고 실제로 대중적인 인기는 얻지 못할 것이다. 그렇다면 이와이 슌지는? 그 역시 마찬가지일 거라는 게 필자의 생각이다. 큰 파장은 펴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결코 안도에서 하는 얘기가 아니다. 난 <러브레터>가 떼돈을 벌기를 바라는 사람이니까.

사실 일본영화는 상업적인 면에서 국제적인 경쟁력이 별로 없다. 일본영화는 침체 일로에 있고 여기저기서 일본영화 부흥을 위한 대책방안이 모색중이란다. 게다가 일본에는 영화배우라는 단어조차 없다고 한다. 얼마전 내한한 야쿠쇼 코지는 안성기가 영화배우라는 호칭으로 불리는 것을 보고 부러운 듯이 고백한 적이 있다.

자, 다시 <러브레터> 이야기로 돌아가자. 내가 <러브레터>의 성공을 바라는 이유는 두 가지이다. 첫째는 <러브레터>의 성공을 통해 한국사회의 무방비적 빗장에 충격을 주려는 의도이고, 둘째는 일본영화의 중흥기 부활을 바라기 때문이다.

역대 대통령들이 그랬지만, 김대중의 문화정책 역시 크게 다르지 않다. 한 번의 깜짝쇼와 어슬렁거리는 고위층 인사, 그리고 그 뒤에서 바가지로 욕먹는 말단 공무원들로 요약된다. 이들은 태생적, 구조적으로 한 번 개쪽을 당해야 허겁지겁 재검토하는 습성을 가지고 있다. 위계질서의 조직이 그렇듯이 늘 계층에 따라 부패의 기운이 감돌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해서 내가 이들에게 지나치게 긴장하여 오히려 다시 빗장을 잠그라고 강요하는 것은 아니다. 딴은 제대로 정비를 해놓고 풀자는 것이다. 김대중 정권은 집권 초기부터 문화산업을 육성한다고 떠들어댔지만, 실제로 혜택을 받은 기업이나 단체는 얼마 되지 않는다. 혜택을 받기 위해서는 수십건의 서류와 씨름해야하고, 더군다나 지원은 될 성 싶은 영화사나 투자사에 집중되어 있다. 장기적으로 영화를 기름지게 해주는 부분, 즉 단편영화나 독립영화 혹은 인력양성, 기술발전 등에 대한 지원은 찾기 힘든 것이다.

그렇다고 무턱대고 반발심 만으로 <러브레터>를 응원하기에는 <러브레터>의 성공이 영화계 전체에 곧 강한 위축감으로 나타날 수 있다는 점에서 이런 주장은 매우 조심스럽다. 실제로 <러브레터>는 그 뒤를 이을 만한 히트작으로 연결되지 않을 것임이 자명함에도 불구하고(왜냐하면 그만큼 주목받는 영화가 없으므로), 괜히 영향력을 가진 것으로 판명되어 겁먹은 관계자들과 보수언론들이 개방의 역효과에 대해 신나게 떠들어댈 소지를 안겨줄 수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재미있고 경계해야 할 것은 보수언론, 그들의, 애국심을 가장한 상업주의다. 하긴 뭐 그들은 항상 국가를 위해 일한다고 생각하는 자들이기에 막을 수는 없겠지만, 정말 국가를 생각한다면 자신들이 하는 일이 어느 국가를 위하는 일인지를 더 생각해보아야 할 것이다.

필자 주장의 또하나의 근거는, 일본영화의 부흥을 위해서 <러브레터>가 한국에서 흥행에 성공해 주었으면 하는 것이다. 그동안 가깝고도 먼 시장이었던 한국시장이 열리면, 그들은 한국영화 전반에 대해 더 많이 알게 될 것이고, 이는 침체되어 있던 일본 영화제작자들의 움직임을 부추길 기폭제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단순히 기호에 의해 이런 말을 하는 것이 아니다. 한국영화가 나아갈 길 역시 일본영화와의 제휴에 의해 동반상승하는 것이 가장 빠른 길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정상급인 일본영화의 국제적인 노하우에 현재 피치가 급격하게 올라간 한국영화의 제작기술이 합쳐지면 유럽, 미국에 내놓아도 뒤떨어지지 않을 영화와 마케팅 능력을 동시에 확보할 수 있다.

사실 <하나비>와 <우나기>, <카게무샤>는 상업적인 영화가 아니었다. <하나비>와 <우나기>는 각각 베니스와 깐느 영화제 황금사자상과 황금종려상의 프리미엄에도 불구하고 일본 내 일부 예술극장에서만 상영되었고, <카게무샤>는 당시 구로사와의 컴백대작이라는 프리미엄이 있었지만, 사실 조금 오래된 영화였다. 이렇게 보면 <러브레터>의 흥행을 위한 조건이 아주 좋은 것만은 아니다. 일단, 1996년이라는 시간에서 3년이 지나와 있다. 이것은 그만큼 관객의 감수성이 3년을 지나쳤다는 말이고, 감성에 승부하는 멜로영화로서는 경쟁력이 떨어질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주연을 맡은 나카야마 미호(가수로 더 유명한) 역시 지금은 나이가 든 모습이다. <러브레터>의 무기는 오로지 그때의 감수성이 아직도 유효하다는 것을 보여줄 동시대성과 국내에서 표절되고 차용된 이미지를 재포장하는 것 정도일 것이다.

<러브레터>의 흥행성 여부는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 하지만, 최근 여론조사에서 <러브레터>를 이미 비디오로 관람한 관객의 70%가 극장에서 재관람 의사를 표명했다. <러브레터>는 지금까지 대학가, 씨네마떼끄 등지에서 수백차례 이상 상영되었고, 이 관람객의 수를 최소 10만명으로 본다면, 이중 적어도 6만명 정도는 이미 관객으로 확보한 셈이다. 여기에 소문만 듣던 20대들과 또한번 일본영화 바람을 몰아다줄 언론플레이에 의한 고정관객을 합치면 대략 30만 정도의 관객동원은 무난할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40만 고지이다. 한국시장에서 헐리웃 영화가 아닌 다음에 40만은 넘어야 할 큰 산이다. 하지만 필자가 생각하는 흥행성공의 최저는 서울 50만 관객이다. 보통 신문의 광고는 두 배 부풀려 발표하는 것이니 이에 주의하면서 <러브레터>의 흥행일기를 지켜보자. 아마도 관심있는 분들에게는 가장 궁금하면서도 재미있을 숫자놀이가 아닐까.






양유창
마음으로부터 그림을 그립니다. 무의식으로부터 시를 씁니다.
비밀스럽게 여행을 떠납니다.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노래를 부릅니다.
운명과 미래를 혼동하지 않습니다.
무심코 떨어뜨린 책갈피에서 21세기가 느껴집니다. 그곳은 슬픈 신세계입니다.
이별이란 말은 너무 슬퍼 '별리'라고 말합니다.

BLOG: rayspace.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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