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추석연휴 극장영화 - <공동경비구역 JSA> 돌풍 예상 :::
이성복 | 2000년 09월 09일
조회 611
한국 관객들은 <타이타닉>과 <쉬리>의 광기를 거쳐 스크린쿼터 논쟁을 기점으로 어느 작품에도 폭발적인 관심을 보여주지 않고 있다. 다만 가요가 팝을 몰아냈던 과정과 유사하게 한국 영화에 대한 애정을 차근차근 높여가고 있는 중이다.
요즘 할리우드 영화의 재미란 것은 '도토리 키재기'에 불과하다. 최근 2년간 극장에 걸린 간판들을 둘러보아도 한국영화의 무게가 이젠 할리우드에 육박하는 것을 알 수 있다. 올 추석 대표영화는 한국영화 <공동경비구역 JSA>이며 유일하게 볼만한 멜로물은 이정재-전지현 주연의 <시월애>다.
 반면 할리우드 진영은 여전히 세가지 무기, 즉 특수효과, 스타 마케팅, 섹스를 들고 나섰다. 완벽하게 투명인간을 재현한 <할로우 맨>과 해저액션의 스케일을 잘 보여주는 <U-571>은 할리우드 특수효과 기술이 현실 감각을 넘어 환상의 세계로 접근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미, 마이셀프 앤드 아이린>은 '고무인간' 짐 캐리의 기가 막히는 원맨쇼로 배꼽을 쥐게 하고, 스탠리 큐브릭의 유작 <아이즈 와이드 셧>도 마침내 심의를 통과해 톰 크루즈 부부의 몸매를 보여주게 됐다.
일본 영화도 선보인다. 원작 엽기만화를 각색한 일본 영화 <소용돌이>는 일본식 호러 스타일이 잘 드러난 작품이다. 대작들 틈새에 낀 유럽영화도 볼 만하다. 뤽 베송이 할리우드적 감각으로 제작한 프랑스산 액션 <택시2>는 전편의 인기를 잇는 대중적인 작품이며, 영국 피터 그리너웨이 감독의 난해한 예술영화 <8과 1/2 우먼>은 진지한 마니아들을 위로할 것이다. 제목에서 나타나듯 페데리코 펠리니 감독의 예술가적 자기반성의 초상화인 <8과 1/2>을 빗댄 작품이다. 추석 연휴 볼 만한 영화를 추려본다.
▶U-571
제2차 세계대전 절정기에 북대서양에서 맹활약하던 U보트는 연합군 1천여척의 배를 침몰시키며 연합군의 해상 보급라인까지 위협하기 시작했다. 독일 감독 볼프강 페터슨이 'U보트'로 미국을 침공했다면 'U-571'은 그에 대한 미국의 응전이다. 연합군의 폭격으로 일부가 파손된 독일 잠수함 'U-571'의 정보를 입수한 연합군은 특수작전을 계획하고 미 잠수함 S-33호를 긴급 투입한다. 매튜 매커너히 주연. '브레이크 다운'(1997년)으로 B급영화의 잠재력을 과시한 조너단 모스토우 감독이 많은 예산을 들여 위력적인 전쟁영화를 만들었다. 2차대전후 유행했던 전쟁영화의 범주에 속하는 사뭇 진지한 액션이다.
▶할로우 맨
'할로우 맨'은 '토털 리콜'과 '원초적 본능'으로 스타덤에 오른 폴 버호벤 감독의 SF호러물이다. 투명인간을 소재로 과학에 대한 과도한 집착이 가져오는 재앙을 그렸다. 미국정부는 '할로우 맨(투명인간)실험에 대한 일급 비밀 프로젝트를 극비리에 추진하고 과학자 카인(케빈 베이컨)은 실험용 고릴라를 그 자리에서 사라지게 하는데 성공한다. 결과에 도취된 카인은 미 국방성의 명령을 어기고 자신에게 투명인간 실험을 강행한다. 카인의 상관이자 애인인 린다(엘리자베스 슈)는 매튜(조쉬 브롤린)와 함께 약의 효능을 없애려하지만 실패하고 보이지 않는 공포 '할로우 맨'과 결과를 알 수 없는 싸움을 시작한다. 투명인간으로 변하는 과정을 비롯 특수효과는 대단하지만 시나리오 설득력은 떨어진다.
▶택시 2
'택시 2'는 전편보다 더 빨라졌다. 택시기사를 천직으로 생각하는 다니엘은 전편에 등장했던 여자친구 릴리의 집에 초대된다. 프랑스군 사령관인 릴리의 아버지는 다니엘과 대화를 나누다가 일본 국방장관의 영접시간을 놓친다. 과속으로 달릴 차례. 제라르 크라브지크 감독 작품이지만 국내에선 제작자 뤽 베송 감독의 이름을 판다.
▶공동경비구역 JSA
냉전이 사라졌다고 통일이 온 것은 아니다. 이데올로기앞에 선 진실의 평범한 모습을 박찬욱 감독이 박진감 넘치게 그려냈다. 유엔과 북한의 공동경비구역 JSA(Joint Security Area). 한 밤 북측 초소에서 총성이 울린다. 수사에 나선 한국계 스위스군 소피 소령(이영애)은 남측 생존자 이수혁 병장(이병헌)과 북측 생존자 오경필 중사(송강호)의 진술서를 번갈아 분석하지만 앞뒤가 잘 맞지 않는다. 돌아오지 않는 다리를 사이에 두고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일까? 캐스팅도 그럴싸하고 화면 넘어가는 숨도 좋다. 움츠리고 보다가 가끔 웃기도 하고 끝내 가슴이 뭉클해지는 수작이다.
▶미, 마이셀프 앤드 아이린
성실하고 착한 경찰 찰리는 너무 순진해 사람들의 놀림을 받는 경찰이다. 마음속에 억눌린 포악한 성격이 드러나면 그의 이름은 행크가 된다. 자신도 모르게 '지킬과 하이드'처럼 이중인격을 지니고 있는 경찰관의 소동이 기둥 줄거리다. 물론 짐 캐리가 1인2역. 마음속의 또 다른 자아와 싸우는 과정을 판토마임처럼 몸으로 표현할 수 있는 배우는 2000만달러 개런티의 배우 짐 캐리 뿐 일 것이다. 혼자서 둘이 싸우는 격투신을 그럴싸하게 보여준다면? 게다가 감독은 '메리에겐 뭔가 특별한 것이 있다'로 소위 '화장실 영화'의 전형을 창조한 패럴리 형제다.
▶시월애
성현(이정재)에게 이상한 편지가 왔다. 2년후의 미래에서 온 편지. 그리고 2년후. 그 편지가 다시 오고 그 안에 적힌 내용들이 예언처럼 재현된다. '1월엔 눈이 많이 왔서 감기가 유행이었어요. 조심하세요' 그날 정말 함박눈이 내린다. 자신의 편지가 과거로 갔다는 사실을 알게 된 은주(전지현)는 자주 그곳으로 편지를 보낸다. 애인에게 버림받은 여인과 아버지에 대한 미움으로 아파하는 사내가 신비로운 편지를 통해 우연히 만난다. 늘 부딪치고 상상하지만 가까이가지 못하는 안타까운 사랑의 마음을 가을에 받는 연애편지처럼 곱게 쓴 작품이다. '동감'의 정적인 부드러움도 담았고, 이와이 순지 감독의 순애보와 닮기도 했다.
▶소용돌이
엽기 만화가로 유명한 이토 준지의 만화를 원작으로 만든 일본 호러 판타지물. 구로우즈 마을에 사는 소녀 키리에는 단짝 남자친구 슈우지로부터 아버지가 소용돌이 무늬를 한 사물에 병적으로 집착하고 있다는 말을 전해 듣는다. 슈유지의 아버지를 중심으로 마을에는 소용돌이 모양과 관련된 사건이 일어나고 사람들이 하나씩 죽어간다. 후반부로 갈수록 집중력이 떨어지나 새로운 아이디어가 돋보이는 작품으로 신은경이 리포터 역할로 깜짝 출연한다. 히쿠치 아키히로 감독 연출.
▶아이즈 와이드 셧
거장 스탠리 큐브릭이 '풀 메탈 쟈켓'이후 12년만에 선보이고 동시에 유작이 된 13번째 영화 '아이즈 와이드 셧'은 인간본질에 내재된 미증유의 과제를 충격적인 성적 오딧세이를 통해 펼쳐낸 진혼곡이다. 큐브릭이 톰 크루즈 부부의 몸만 탐닉했을리가 있겠는가? 전라출연과 음모 노출, 장시간에 걸친 난교장면 등으로 화제가 됐지만 영화는 생각보다 야하지 않고 예상보다 어렵지 않으며 기대를 배반하지 않는다. '질끈 눈을 감고(eyes wide shut)' 본능을 애써 감춰 보려는 성적 강박관념을 누가 영화로 만든 적이 있었던가? 159분.
▶8과 1/2 우먼
제네바의 사업가 에멘탈(존 스탠딩)은 아내를 잃은 뒤 실의에 빠져 무료한 나날을 보낸다. 지진의 스릴과 파친코에 빠져있는 아들 스토리(매튜 들라미어)는 아버지를 위로하기 위해 제네바 저택을 매음굴처럼 꾸며 기이한 행각에 들어간다. 영국 감독 피터 그리너웨이는 '영국식 정원 살인 사건'과 '요리사, 도둑, 그의 아내 그리고 그녀의 정부'를 통해 우화적이고 회화적인 수법으로 중산층의 허위의식을 드러내온 감독. '8과 1/2 우먼'은 부자사이의 동성간 근친상간 암시와 여성모독 발언이 수시로 등장하고 해학적 요소가 온 영화에 퍼져있어 가볍게 볼 수 있는 영화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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