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이 내린 삼엄한 경비의 동베를린 검문소.검문소 앞에는 동베를린에서 서베를린으로 돌아가는 관광객들의 줄이 길게 늘어서있다.
관광객의 행렬을 뚫고 한 동양인 남자가 긴장한 듯 뒤를 돌아보며 빠른 걸음을 옮긴다.
그 동양인 남자가 자신을 뒤따라 오는 검은색 승용차를 발견, 목숨을 걸고 도주하면서 추격전이 시작된다.
3일 새벽 1시(현지시간) 무렵 한석규는 체코 프라하에 설치된 야외세트에서 영화 '이중간첩'(제작 쿠앤필름, 감독 김현정(A))의 촬영에 한창이다.
'이중간첩'은80년대를 배경으로 북한에서 위장 귀순한 남파간첩 림병호(한석규)의 행적과 함께 그의 인간적인 갈등과 고뇌를 담은 영화로 남한내 고정간첩으로 활동중인 여주인공 윤수미 역은 고소영이 맡았다.
이날 촬영분은 영화의 첫 장면으로 80년 6월 주인공인 간첩 림병호가 동베를린의 검문소를 통과해 주독 미군이 지키는 체크포인트 찰리를 빠져나가는 신이다.
제작진은 촬영을 위해 통일 이후 지금은 관광지가 돼 버린 베를린의 실제 체크포인트 찰리 대신 독일 분위기가 남아 있는 체코 프라하의 외곽인 홀레쇼비체 지역에 야외 세트를 설치했다.
총 8분 분량을 화면에 담기 위해 로케이션 제작 비용은 3억5천여만원이 들어갔고 동서독의 검문소와 바리케이드 등을 세트로 꾸미는 데 총 8천여만원이 소요됐다고. 현지 엑스트라로는 관광객 60여명, 동서독 군인 14명, 미군 헌병 10명 등 80여명이 밤새 진행된 촬영에 함께 했다.
2일 저녁 8시께 진행된 촬영분은 림병호가 동독의 검문소를 통과하기 위해 줄을서 있는 사이 그를 추격하는 북한의 검은색 승용차 두 대가 전속력으로 검문소로 달려오는 장면이다.
슛 사인이 들어가자 현지 스태프 60명을 비롯한 100여명의 제작진은 일순간 긴장하고 길 옆에 지금은 폐허로 변한 건물 입구로부터 나타난 승용차 두 대가 '끼익' 소리를 내며 질주한다.
두번 만에 떨어진 감독의 'OK' 사인에 이어 같은 장면을 다른 각도에서 담기 위해 제작진은 분주히 카메라의 위치를 바꾸고 다시 촬영에 들어간다.
새벽 1시가 돼서야 본격적인 추격 신 촬영이 시작됐다.
관광객 사이를 뚫고 나온 림병호가 자신을 막는 차량의 보닛 위로 튕겨나가 구른 뒤 바닥에 떨어지는 위험한 장면이 먼저 카메라에 담겼다.
이 장면은 한석규와 똑같이 진회색 정장에 회색 셔츠를 차려 입은 스턴트맨이 대신 연기했다.
스턴트맨이 승용차의 보닛 위를 구른 뒤 바닥에 '쿵' 하고 떨어지자 제작진의 걱정섞인 탄성이 절로 나왔다.
다행히 큰 부상 없이 세번 만에 촬영이 마무리됐다.
다음으로 새벽 3시가 넘어서야 한석규의 도주 신이 카메라에 담긴다.
일본인 여권을 들고 동독 검문소를 빠져나온 림병호가 자신을 추격해 온 북한의 승용차를 피해 관광객 인파를 비집고 목숨을 걸고 도주하는 장면이다.
몇 차례 같은 장면을 연기하던 그는 감독에게 말을 건넨다.
"이번 건 뭔가 좀 안좋았던 것 같아요, 감독님"하면서 스스로 다시 하겠다는 말에서 프로로서의 근성을 엿볼 수 있었다.
6∼7차례 반복하고 나서야 다음 장면으로 넘어간다.
카메라 위치를 앞으로 옮긴 뒤에는 정면에서 바리케이드를 뛰어넘는 모습이 다시 한번 카메라에 담긴다.
감독의 촬영 지시 사인이 들어가자 통역사는 "촬영을 시작한다"는 뜻의 현지어인 "쁘릇지 쁘라비에세"를 확성기에 대고 외친다.
"컷" 감독은 엑스트라의 위치가 맘에 들지 않는다고 지적한다.
엑스트라들이 너무 빨리 걸어가는 바람에 정작 림병호가 뛰어넘을 때 화면이 빈다면서 다시 할 것을 지시했다.
"레디 액션" 그러나 이번에는 엑스트라들의 혼란스런 반응이 너무 약하다고 지적받는다.
한석규도 감독에게 다가와 이전 장면을 모니터한 뒤 엑스트라에게 지시할 사항을 통역사에게 꼼꼼하게 주문한다.
네번의 반복 촬영에 감독의 반가운 목소리가 들린다.
"OK" 새벽 4시 30분께 시작된 다음 장면은 한석규가 쫓아오는 차 앞에서 목숨을 걸고 전력으로 달리는 신. 개조된 소형 차량 위에 카메라를 싣고 한석규의 달리기 모습을 담는다.
그가 달려야 할 거리는 동서독 경계 사이의 중립지역 100여ｍ. 있는 힘을 다해 달리던 한석규는 숨이 찼던지 목표점으로 갈수록 카메라와 멀어지는 바람에 NG가 났다.
밤을 꼬박 세운데다 전력질주를 3∼4차례 한 터라 피곤해 보이는 그이지만 결국 바로 이어진 촬영에서 보기 좋게 OK사인을 얻어낸다.
이날 촬영은 해가 어슴푸레 뜨기 시작한 3일 오전 6시가 넘어서야 마무리됐다.
체코 로케이션은 이틀에 걸쳐 남은 촬영분을 마친 뒤 5일 마무리된다.
체코 로케이션을 마치면 60%가 촬영 완료되는 '이중간첩'은 내년 1월말께 개봉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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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하의 <이중간첩> 촬영현장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