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장전>"인간의 모순을 바라보는 경쾌한 시선"
글: �젙�꽑湲
2005년 06월 0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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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장전> 홍상수 감독, 메가박스 관객간담회 후기
- 정성일씨, "인간의 모순을 바라보는 경쾌한 시선"
멀티플렉스 메가박스 코엑스점의 주최 하에 열린 지난 4일 (토) 오후 6시 30분 영화 관람객을 대상으로 '메가박스에서 정성일, 홍상수를 만난다'라는 제목 아래 영화평론가 정성일씨의 사회로 진행된 간담회는 유머 섞인 홍 감독의 멘트와 영화 외적인 내용들에 대한 관객들의 다양한 질문이 쏟아져 열기를 더했다.
지난 달 27일 개봉한 홍상수 감독의 여섯 번째 작품 <극장전>(제작 전원사)은 영화 상영후 관객들로부터 이전 홍 감독의 전작 영화들의 아우라를 유지하면서도 보다 유머러스하고 경쾌하게 연출되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정성일씨는 "전체 82개의 숏(Shot)으로 구성된 이번 영화는 영화 속의 영화(상원,영실)(이하 1부이야기)와 영화를 보고 나온 감독지망생의 하루(이하 2부이야기)의 분량이 대등하게 배분되었다. 의도적으로 줌 촬영기법을 통해 등장인물 속 심리를 만지고 싶다고 느꼈을 때 줌으로 다가간 것 처럼 보인다"고 말하고 인터뷰를 시작했다.
정성일씨의 사회로 열린 이날 간담회 중 정성일씨가 발췌한 질문과 그에 대한 홍상수 감독의 대화 내용이다.
정성일 : 감독으로서 극장에 가서 영화를 본다는 것은 어떤 경험인가
홍상수 : 영화 감독의 시각에서 본 영화와 달리 극장에 가는 것은 관객으로서 영화를 다른 느낌으로 만날 수 있다. 극장에 가면 갈수록 영화 제작자의 시각에서 걸러진다는 경험을 하게 된다. 과거에 재미있게 본 영화가 극장에 가서 볼 때 재미 없어지는 경우처럼 말이다.
정성일 : 2부 이야기에서 동수(김상경 분)가 여관에서 나오는 영실(엄지원 분)에게 '조금 있다가면 안되요'라며 붙잡을 때 가야된다는 영실의 말에 '뭐 좀 놓고가요'라고 얘기하자 '동수씬 영화를 잘 못 보고 있는 것 같아요'라는 영실의 대사가 관객에게 궁금을 유발시켜 어떤 것을 얻고자하는 것이었나
홍상수 : 대개 내 영화 속의 대사는 등장인물이 상황에 따라 했음직한 대사를 사용한다. 트리트먼트를 쓸 때 약 전체 대사의 1/3 정도를 완성하고 나머지는 매일 아침 촬영때 대부분 떠오르는 대사를 채택한다. 즉, 직관적으로 선택되었다고 생각하면 될 것이다.
촬영 당시 사실적인 상황에 만족하는 대사이어야 하고 등장인물 간 주고받는 대사 자체의 뉘앙스 때문에 등장인물이 말이 아닌 전혀 딴 얘기를 하는 것처럼 느껴질 수 있다. 뉘앙스를 통해 이중 3중적인 대사를 채택하거나 다음 씬과 연결성을 고려해 대사를 결정한다. 현상은 매우 복잡한데 그것을 단순화시키고 고정시켜 기억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정성일 : 홍상수 감독은 영화를 만들 때 기억에 의존하지 않고 다루는 틀을 쳐다보는 시각에 큰 관심을 갖고 이를 영상화하고 있는 듯 보인다.
정성일 : 영화 속 배우 김명수의 캐릭터가 모호한데, 1부 이야기에서 상원(이기우 분)의 대사 '괜찮아요 아저씨, 제가 이젠 아버지라 불러야 되나요'에서 어머니와 관련있는 캐릭터라 생각했는데 2부 이야기에서 김명수씨는 병상에 누운 동수의 선배 이형수 역이었다. 이러한 인물 배치를 통해 어떤 효과를 얻고 싶었는가
홍상수 : 김명수란 배우를 좋아한다. 배우로서 느껴지는 맛 있다. 그래서, 캐스팅했고 죽음을 앞두고 누운 이형수 역으로 김명수와 함께 문성근씨도 고려했다. 하지만, 김명수를 캐스팅했다. 1부 이야기나 2부 이야기 모두 섹스와 죽음을 가장 가까이 붙여 배치했다.
영실과 섹스가 되지 않자 상원은 영실과 동반 자살을 기도하는 1부 이야기나 병원 앞에서 영실에 대한 욕망으로 실갱이를 하고 있는 동수 옆에 죽음을 앞두고 있는 이형수가 입원해 있다는 2부 이야기 설정이 그것이다.
정성일 : 개인적으로 홍상수 감독의 영화 중에서 죽음이 이렇게 가까이 다가왔던 것은 처음이었고 감독 자신을 화가에 비유하고 있는 느낌이었다. 영화가 끝나고 동수가 나온 극장 옆에 붙은 이형수의 영화 회고전 포스터 카피에 '영원히 간직하고 싶은 이형수 감독의 풍경화전'도 연관있어 보이는데, 영화 첫장면에서도 등장하는 남산타워는 어떤 역할이며 이를 보면 감독은 어떤 기분이 드는가
홍상수 : 남산타워가 자주 등장하는 것은 공간이 겹쳐진 상황을 생각한 것이다. 구체적인 덩어리(영화 세계)를 한꺼번에 나오게 하고 내 안의 생각들을 끄집어 낼 때는 여과없이 끄집어 낸다. 전개상의 구조나 댓구, 연결 씬을 만들 때 생각을 많이 하게 된다.
영화 속 대사나 남산이라는 공간은 상황에서 보여주고자 하는 것들을 위한 부가적 요소(플러스)와 상쇄적 요소(마이너스)로 각각 선택된다. 같은 대사나 공간도 이렇게 각자의 이름으로 붙여져 서로 다른 상황으로 배열되어 씬이 구성된다. 관객이 파악하는 의미들이 빨리 잡혀지지 않도록 각성시키기 위해 사실감과 리듬감만을 체크해 구성한다.
정성일 : 이 영화에서 개인적으로 심금을 울리는 장면은 1부 이야기에서 자살을 기도한 상원을 놔둔 채 영실이 여관을 나와 신발끈을 묶는 장면에 이어 후반부에서 동수가 여관에서 영실이 나가고 나서 거리를 나오는 장면에서 길을 가는 여자가 신발끈을 묶는 장면이라고 생각된다. 관객에게 어떤 이해를 바라는가
홍상수 : 화가 세잔느의 그림을 좋아한다. 세잔느의 회화는 구상화이지만 추상화의 손길이 그대로 남아 구상과 추상의 조화가 좋기 때문이다. 관객들이 영화의 의미를 빨리 인식하는 경우, 다면적으로 오래 의미가 지속되지 못한다. 댓구 형식을 쓰고 이런 류의 씬의 반복해 보여주면 감독의 추상적인 패턴을 통해 의미 전달이 가능해진다.
홍 감독의 답변에 정성일씨는 "회화에는 추상화, 구상화 그리고 세잔느의 형상화라는 세번째 형식이 있고 홍상수 감독은 형상화를 영화 속에 담는 세번째의 길을 걷는 감독이라 생각됩니다"라고 정리하고 본인의 질문을 맺었다.
홍 감독이 질문에 대해 다른 답변을 하자, 정성일씨는 "관객 여러분에게 한가지 에피소드를 통해 홍 감독에 대한 질문을 준비할 시간을 드린다.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를 찍던 겨울에 문을 연 채로 실내 촬영을 진행하자 연출에 관심있는 배우 유지태가 '감독님, 문을 닫고 들어가야 되지 않을까요'라고 말하자 홍 감독은 '응..그런 사람도 있어.'라고 답했다.
이처럼 어떤 대답을 얻고자 하는 질문에 해답을 얻지 못한 경우가 많다'며 관객들에게 질문에 대한 가이드를 제공했다. 이후, 관객과의 간담 내용을 정리했다.
관객 : 사람은 무슨 생각을 많이 하며 살아야 하는가
홍상수 : 사람이 개선되는 길은 자기 속에 들어가 자기가 누군지 아는 것이며, 이러한 실용적인 생각을 통해 진지하게 자기를 성찰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성찰에 급급함이나 끈기 부족, 이미지 형성의 실패 등 방해물이 있는데, 자기를 진지하게 들여다보는 과정이 살아가며 하는 생각 중에 가장 많아야 하지 않을까.
관객 : 영화를 재미있게 봤고, 영화 마지막 대사로 '생각 만이 나를 살릴 수 있다'는 감독의 의지에 따라 앞으로 생각하고 있거나 하고싶은 작품은
홍상수 : 만약에 일곱번째 작품으로 다룬다면, TV 토론쇼를 한 폭의 그림에 그려놓은 듯 하는 이야기이다. 이전의 내 작품과 질문거리가 다를 것 같고, 대답을 찾는 과정을 남들과 나누는 것이 좋아 보일 것으로 생각된다.
관객 : 영화 속에서 동수를 변화시킨 영실의 캐릭터에 대한 아이디어는 어디에서 얻었는지
홍상수 : 10년전 바에 갔을 때 '하루에 세번 우연히 마주친 여자에게 말이라도 건네야 하지 않나'라고 들었던 말의 에피소드를 극중 상황에 맞춰 변형시켜 연출한 것이기도 하다.
관객 : 줌 렌즈를 이용한 촬영 수준이 서툰 듯 보여지는 데, 의도적으로 사용된 줌 촬영에 대해 국내 최고의 촬영감독인 김형구 감독 스스로 이를 수긍했는가
홍상수 : 감독이 촬영 중에 촬영감독의 옆구리를 쿡쿡 찌르며 매일 아침에 나온 시나리오에 따라 즉흥적으로 적용해 촬영을 했다. 촬영 질이 떨어지더라도 그 대목에서는 그런 그림이 나와야 된다고 생각해서 진행했고 잘 따라줬다.
관객 : 이제껏 홍 감독의 영화 중 '남자는 여자의 미래다'가 갖아 많은 관객을 동원했는데 이번 영화 극장전은 전국 관객 몇 명이나 동원할 것으로 예상하는가
홍상수 : 잘 모르겠다. 그 동안 도와주신 분들이 많아서 영화를 찍을 수 있었는데, 내 영화들은 손익분기점을 못 넘었다. 이젠 수익을 따지며 좀 더 합리적으로 만들어야 겠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단 두 명으로 구성된 영화사('전원사')를 만들었다. 내가 제작자가 되어 전체 영화 스텝의 인건비 등을 고려해 영화의 실 제작비를 낮춰야겠다고 생각했다. 내 영화가 동원할 수 있는 관객수에 가까운 제작비를 맞출 수 있을 것이다.
관객 : 모 영화주간지와 인터뷰에서 배우 김상경이 홍 감독의 '페르소나'라는 말을 들었는데, 정말 배우 김상경이 홍 감독과 닮았는가
홍상수 : 동수란 캐릭터는 내가 표현하고자 하는 것과 실제 인물을 수정해 얻어지는 것 그리고 배우 김상경을 통해 표현할 수 있는 요소들을 섞은 것이다. 실제 인물에 대한 오해를 피하기 위해 영화 속의 캐릭터에는 실제 인물에 조금 다른 성격을 부여해서 설정한다.
관객 : 영화 속에 손숙씨 주연 연극 '어머니'가 삽입되었는데 1부 이야기에서 상원에게 '어머니'라는 연극이 어떤 영향을 준 것인가. 상원은 섹스를 하지 못하는데, 후반부에서 동수는 섹스가 가능해진 것이 어미니와 연관성이 있는가
홍상수 : 상원의 캐릭터 설명을 위한 백그라운드로 연극 장면을 넣었다. 2부 이야기에서 비록 영실과 섹스를 가지지만 영화를 잘못 본 것 같다는 영실의 지적처럼 영화 속에서 상원보다 동수가 더 허허로운 인물이라는 생각을 해서 연출했다.
관객 : 앞으로 보여줄 홍 감독 영화의 그림은 세련된 세잔느의 구상화인가
홍상수 : 브레송의 몇몇 작품은 좋아 하는데, 내 영화가 점점 루이스 브뉘엘과 장 르누아르의 회화가 되어가고 있다고 생각된다.
관객 : 홍 감독의 생각에는 인간이 사는 것이 구차한 모습인가
홍상수 : 불편한 마음으로 사회에서 많이 기대고 있는데 사람들은 서로에게 옹졸하거나, 비겁하고 솔직하지 않다고 생각된다. 오래전 20대 초반 시절에 친구에게 '무엇을 가장 두려워 하는가'라고 물었더니 '내가 뭘 두려워 해'라며 자기가 두려워하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고 있더라. 사실 인간 심리와 행동의 동기 부여중 70~80% 가량이 '두려워 하는 것'에서부터 비롯되는 데 말이다.
한 40대 주부 영화팬은 "홍 감독이 연출한 영화 여섯 편을 모두 봤는데, 가장 재미가 있다"고 평하면서 홍 감독을 일컬어 '찰나'를 '영원'으로 만드는 동양적 색채를 지닌 감독이라고 했다.
이날 홍 감독은 연일 이어지는 인터뷰 행사로 다소 지치고 피곤해 보여 '죄송하다'는 말을 반복했고, 여러 관객들과 영화와 삶을 통해 자신의 생각과 그가 표현하고자 하는 것('영화 세계'라 일컬음)을 격의없는 대화를 나누었다. 정성일씨는 대화 중간중간에 홍 감독의 영화 세계와 그의 의식세계에 대한 부연설명을 통해 관객의 이해를 도왔다.
영화평론가 정성일씨는 "영화 <극장전> 마지막에 내래이션으로 사용된 '생각만이 나를 살릴 수 있어'에서 관객들이 확인할 수 있는 것처럼 생각과 행동의 불일치로 인해 나타나는 인간의 (근원적) 모순을 바라보는 홍 감독의 시선이 담긴 작품에 많은 관심을 기울여달라"고 부탁하며 관객과의 간담회를 마무리 지었다.
/ 브레이크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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