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투는 나의 힘> 종옥의 발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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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투는 나의 힘> 종옥의 발견 :::

이준목 | 2003년 04월 27일
조회 2406

한국 영화 시장이 최악의 불황이라는 요즘, 가문의 영광이나 조폭 마누라 같은 비싼 쓰레기들이 한국 영화의 유일한 대안이 될수밖에 없는 작금의 현실에서 이 초보 여성 감독의 새 영화는 신선한 희망을 안겨준다.

질투는 나의 힘- 쌍팔년도 드라마 이름같은 유치한 제목도 제목이지만, '누님, 그 쉑이랑 자지 마요, 나도 잘해요~~' 라는 처절하면서도 야시시한 카피에서 호감을 느끼기는 쉽지 않았다. 그렇다고 요즘 상한가를 올리고 있는 쭉빵걸이나 깜찍걸이 나오기를 하나, 그냥 가만히 있어도 심각해보이는 문성근 아저씨, 좋게 말하면 순진해보이고 나쁘게 말하면 청승맞아보이는 총각 박해일, 거기다 여주인공은 이제 한국에선 아줌마 역 연기하기 딱 좋은 나이의 배종옥 누님이시다.

그러나 '시카고'를 보러 갔다가 우연히 보게 된 '질투-'예고편을 보고는 웬지 이 영화도 한번 봐줘야될 것 같은 그런 끌림이 있었다.(게임 화면을 응용한 예고편은 정말 잘만들었다. 솔직히 영화 본편보다 재밌더라.) 더구나 대중적으로 크게 주목받은 적은 없지만, 항상 인상적인 연기를 보여주던 옥이 누님의 캐릭터가 흥미를 자극한 것도 사실이다.

그녀에 대한 기억은 10여년전 내가 코흘리개 시절에 '행복어 사전' '도시인'같은 tv드라마에서 보여준 중성적인 모습에서 시작된다. 드라마 자체는 쉣스러웠지만, 당시 그녀의 연기는 내 어린 눈으로 보기에도 정형화된 여배우들의 캐릭터와는 다른 차별화가 있었다. 지금도 크게 발전한건 아니지만, 당시만해도 멜로드라마에서 여배우들의 캐릭터는 청승가련형의 새침데기와 그 새침데기에게서 남자주인공을 뺏으려고 발광하다 결국 뺀찌먹는 떨거지 조연의 두 가지 캐릭터가 전부였다.

그녀는 외모만 봐도 알겠지만 남자들의 사랑을 먹고사는 새침데기 역과는 거리가 멀다. 고장난 라디오같은 초저음의 허스키 보이스에서 사랑해요..따위 닭살만땅의 대사가 튀어나오기를 기대하는 것은 절대 무리였다. 그녀는 기존 여배우들의 캐릭터와는 달리 자기 주장이 분명하고, 주체적인 커리어우먼의 모습을 자신의 캐릭로 만들어왔다. 그 대신 사랑싸움에서는 언제나 손해를 볼수 밖에 없는 운명이다. 두 편의 작품에서 모두 최수종을 라이벌 (이응경과 음정희)에게 빼앗기고 속으로 눈물을 삼키던 외강내유의 캐릭터가 바로 옥이 누님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사랑싸움을 훼방놓는 팥쥐 역할이 아니었다. 능력두 좋으면서 변변찮은 남자주인공하나 뺏겠다고 G랄발光을 다하는 요즘 팥쥐들과 달리, 그녀는 이쁜 척하며 앉아서 남자들의 처분만 기다리고 있지 않는다.우유부단하고 뭐 하나 제대로 하는 것없는 남자주인공에게 '제대로 하라'면서 딱부러지게 야단을 칠뿐 아니라, 사랑에 상처받고도 '에이,까짓거 갈테면 가라.'면서 그 순간이 지나면 털털하게 웃고 넘기는 화통함까지 보여준다. 멋지지 않은가?

이런 강단있고 주체적인 캐릭터는 적어도 보편적인 남성 판타지의 기준에서는 '드센 여자'정도로 치부되어 사랑받지 못하는 경우가 보통이다. 그녀가 출연한 드라마의 작품 목록을 되새겨 보아도 그녀의 사랑이 아름답게 결실을 맺었던 마무리는 기억하기 힘들다.

그녀는 한국영화속에 주류적인 여배우 캐릭터와는 애시당초 친해질수가 없는 연기 스펙트럼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 그녀가 여배우들이 흔히 걷는, 옆집 아줌마- 아이 엄마-엄마 친구 등등 같은, 몰락의 길을 걷지 않고 고유의 개성을 지키면서 오늘날에 이르렀다는 것은, 성격파 배우가 드문 한국 영화계에 귀중한 자산이기도 하다.

질투는 나의 힘은 박해일의 영화이지만, 스토리에서 박해일의 비중이 갈수록 문성근과 배종옥이라는 두 중견 연기자의 공력에 밀려나는 것이 느껴진다.특히 문성근의 연기가 뛰어남에도 전작인 오!수정의 감독 캐릭터와 오버랩되면서 그리 새롭게 다가오지 않는 반면, 배종옥의 연기는 독특하다.

아마 그녀의 출연작 사상 최초가 아닐까 싶을 정도로, 두 남자의 수작을 동시에 받는 히로인임에도 불구하고 역시 그녀는 흔히 연상되는 로맨틱한 여주인공과는 거리가 멀다. 패션과는 거리가 먼 부시시한 스타일, 툭툭 내뱉는 뜬금 만땅의 엉뚱한 대사들, 개그를 해도 알아먹질 못하고 '그래서?' 하고 무안을 줄것같은 흐리멍텅한 눈동자, 그러나 알고보면 오!수정의 수정보다 열배는 더 의뭉스러우면서도 인생의 쓴맛단맛 다 아는 듯한 경륜이 느껴지는 옥이 누님의 캐릭터는 한국 영화에서 보기 드문 신선한 발견이다.

박찬옥 감독은 홍상수 감독밑에서 조감독 생활을 한 경력 때문인지, 스타일에서 종종 홍상수 감독을 연상시킨다. 그녀는 이 영화에서 초보 감독다운 엉뚱함과 과욕도 종종 보인다. 그러나 적어도 홍상수 감독보다 여성의 미묘한 심리 변화에 대한 시각 포착은 한수위임이 분명해 보인다. 홍상수 감독의 영화에서처럼 여성 심리에 대한 무지와 부자연스러운 때려맞추기가 이 작품에는 보이지 않는다. 그것은 이 영화에서 박해일이나 문성근보다 배종옥의 캐릭터가 생생하게 살아있다는데서 확실하게 느껴진다.

질투는 나의 힘은 영화 자체로 보면, 매끈하게 잘 빚어낸 영화는 아니다. 그러나 적어도 배우들의 연기와 맛깔나는 대사만으로도 충분히 감상할만한 가치가 있는, 재미있는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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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aders' Comments

	배종옥-임청하,장만옥 ? (세인) - 2003/07/18

	지금 님의 글을 읽으면서 생각해보니, 배종옥은 국내배우중 임청하나 장만옥의 이미지를 가진 유일한 배우가 아닐까 합니다. 그리고 이 두 배우 모두 나이가 들 수록 더 뛰어난 매력을 보이죠. 배종옥의 배우로서의 자의식이 깊어지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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