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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itation of Life


<정글쥬스> 이 영화를 왜 만들었을까? :::


양유창 | 2002년 03월 20일
조회 9420


장혁(A)이 좋다. 처음 정우성을 흉내내던 때나 TJ Project 같은 어설픈 모습은 사라지고, <화산고>부터 드디어 그에게 진정한 양아치의 모습이 나타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정글쥬스>는 장혁의 진가를 보여주는 영화다. 그는 그의 이미지와 딱 맞는 캐릭터를 딱 맞게 연기한다.

장혁에 비해 이범수는 비교적 이미지가 굳어진 편이다. 비록 처음으로 타이틀 롤을 맡은 영화이긴 하지만, 그동안 이런 종류의 역할을 너무 많이 한 탓인지 이범수에게는 그 존재감은 느껴질지언정 새롭다는 느낌은 들지 않는다.

<정글쥬스>는 이 두 사람을 위한 영화다. 그리고 한 사람 더. 오랜만에 영화로 연기를 재개한 손창민. 그동안 말쑥한 정장차림이던 손창민은 머리를 빡빡 깍고 욕을 찍찍 해댄다. 그다지 어색하지 않고 신선하다.

사실 난 <정글쥬스>라는 영화가 왜 만들어져야 했는지 이유를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영화 속에서 위 세 사람이 등장하는 것을 보는 것은 큰 즐거움이었다. 더구나 이 영화는 한국영화 중 아마 가장 밝은 화면을 보여준 영화가 아니었나 싶다. 그동안 칙칙한 화면 일색이던 한국영화에 이처럼 밝은 거리화면이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을 확인시켜 주었다. 하늘은 파랗고 거리는 선명해서 뿌연 먼지조차 보이지 않는다. 서울이 정말 이렇게 깨끗한 곳이라면 좋겠지만, 사실 대부분의 촬영은 지방에서 이루어졌다고 한다.

그나저나 이 영화는 왜 만들어져야 했을까? 최근에 개봉을 앞둔 한국영화들 중 이런 의문을 갖게 한 영화가 또 있었다. 바로 <생활의 발견>이다. 도대체 <생활의 발견>은 왜 만든걸까? 하지만, 그 영화의 경우 홍상수 감독이 워낙 국제적인 작가로 알려진 관계로 그가 만들고 싶어하는 게 영화가 될 수 있다는 면에서 내 근본적인 의문은 별로 오래가지 않았다. 그러나 <정글쥬스>는 다르다. 이 영화는 <눈물>과 비슷한 면을 갖고 있으면서도 더 대중적이고 오락적이다. <돈을 갖고 튀어라>의 구조를 갖고 있으면서도 더 엉뚱하다. 하지만, 그냥 재미로 보기에는 조금 과격하고 주인공이 하는 일도 일반적인 것과는 거리가 있다.

요약하자면 이렇다. 별로 대중적이지 않은 직업의 주인공들을 소재로 영화를 만든다면 대개 관습적인 플롯을 따르지 않는 것이 보통인데, 이 영화는 철저히 관습적으로 흘러간다. 영화를 철저히 관습적으로 만든다면 대중성을 노리기 위해 일반인들에게 친숙할 수 있는 소재를 다루기 마련인데 이 영화에 등장하는 인물이나 그 가족들은 별로 그렇지 않다. 대체 이 영화를 왜 만들었을까?

이번주에 동시에 개봉하는 한국영화 두 편, <생활의 발견>과 <정글쥬스>는 전혀 다른 것 같으면서도 공통점을 갖고 있는 영화들이다. 우선 왜 만들었는지 모르겠다는 것이 공통점이고, 둘째는 어릴 적부터 한국어 사용자였던 나에게 '듣기'의 문제를 고민하게 해주었던 영화들이라는 공통점이고(두 영화들에는 얼버무리거나 짧게 끊는 대사들이 많아 알아듣기 무척 힘들다), 셋째는 그동안 '벗기기'를 자제해왔던 한국영화에서 과감한 섹스신이 등장한다는 공통점이다. 특히 <정글쥬스>에서 장혁이 보여주는 '풍차돌리기'는 지금까지의 한국영화에서 보기 힘들었던 능동적인 섹스장면 중 하나이다. 그런 면에서 '여관방의 달인' 홍상수는 조금 더 배워야 한다.

간혹 내 글을 '비꼬기'로 받아들이는 독자들이 있는 지도 모르겠다. 지금까지 가끔 내가 글을 그런 식으로 쓴 적도 있었기 때문일게다. 하지만, 이 글의 경우 그런 의도가 전혀 없었음을 밝힌다. '이 영화를 왜 만들었을까?'라는 물음에 '이런 영화는 필요 없다'는 숨은 뜻이 있는 것은 아니다. 정말 궁금한 것 뿐이다. 보통 이런 식으로 영화를 만들지는 않기 때문이다. 혹시 영화사에서 이 영화의 포지셔닝을 잘못해서 영화제를 노리고 기획한 작품이 상업성 쪽으로 치우친 것은 아닌지 되묻고 싶다. 그리고, 홍상수의 여관방 이야기는 진짜다. 난 홍상수가 영화 속에서 자꾸 여자들을 벗기는 것을 못마땅해 하지만, 이왕 그렇게 여관방을 계속 집어넣을 거라면 좀더 독특한 장면들을 찾아보기를 권한다.






양유창
마음으로부터 그림을 그립니다. 무의식으로부터 시를 씁니다.
비밀스럽게 여행을 떠납니다.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노래를 부릅니다.
운명과 미래를 혼동하지 않습니다.
무심코 떨어뜨린 책갈피에서 21세기가 느껴집니다. 그곳은 슬픈 신세계입니다.
이별이란 말은 너무 슬퍼 '별리'라고 말합니다.

BLOG: rayspace.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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