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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itation of Life


서울에서 집으로 가는 생활의 발견 :::


양유창 | 2002년 03월 09일
조회 8639


연속으로 세 편의 한국영화를 보다. 첫 날은 포복절도, 둘째 날은 눈물바다, 셋째 날은 허허실실. 차례로 <생활의 발견>, <집으로...>, <서울>.


1. 생활의 발견

홍상수는 시대의 흐름을 잘 읽는 감독이라고 생각한다. 작년에 대학교 신입생에게 가장 좋아하는 감독이 누구냐고 물었더니 홍상수라고 해서 깜짝 놀랐던 적이 있다. 왜 홍상수를 좋아하는지 물었더니 <오! 수정>의 새로움이 좋다고 했다. 어찌보면 정말 진부하고 지리멸렬하지만, 한편으로는 정말 새로운 이야기란다.

그 말을 들으니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의 시사회가 생각났다. 당시 아무런 사전 정보 없이 시사회에서 이 영화를 처음 보았다. 조촐하게 시작되는 타이틀과 영상에서 무슨 독립예술영화가 아닐까 생각했다. 하지만, 알려진 배우가 거의 없는 이 영화에 차츰 빨려들어갔다. 별 사건도 없이 단지 등장인물들의 관계로만 설명되는 이 영화. 오락실, 여관, 그리고 살인장면에까지 이르자 나는 별 5개 만점을 주고 기분 좋게 극장을 빠져나왔다.

하지만, 홍상수에 대한 좋은 기억은 거기서 멈추었다. 이어 평단의 주목을 받고 작가처럼 떠오르자 나는 이내 거부감이 생겼다. 그의 차기작에 대한 평가 역시 엇갈렸다. 무엇보다 너무 우울한 분위기가 싫었다. <강원도의 힘>은 너무 지쳐 있었고, <오! 수정>은 너무 약았다고 생각했다. 단지 컷과 컷을 붙이는 솜씨나 자질구레한 디테일에 신경쓰는 정성 이외에는 그다지 정서적으로 공감이 가지 않았다.

그런데 <생활의 발견>을 보고 나서 그에 대한 생각이 바뀌었다. 홍상수는 점점 가벼워지고 있고, 그것은 시대의 흐름과도 상통하는 부분이 있다. 그의 4편의 영화들을 차례대로 나열해보면 그 흐름은 한 방향으로 궤를 같이 한다. 앞으로 나아 갈수록 동어반복이 심해지고, 더 가벼워지며, 더 섹시해진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해서 나는 <생활의 발견>에 어떤 철학적인 메시지가 있을 거라고 생각하고 싶지 않다. 임어당의 수필집을 떠올리고 싶은 생각은 더더욱 없다. 그저, 로저 에버트 식으로 '아주 유쾌하고 즐겁고 섹시한 올해 최고의 코미디'라고 말하고 싶다. 충분히 대중적으로 어필할 수 있고, 흥행에도 성공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이번에 홍상수가 유발시키는 웃음은 물론 홍상수식 어색하고 썰렁한 웃음이긴 하지만, 그 어줍잖은 썰렁함이 지나칠 때 대중적인 호흡과 함께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솔직히 난 포복절도했다. 예지원이 등장하는 장면부터 웃느라고 정신 없었다. 비록 홍상수가 여자를 다루는 방식에 대해 나는 이해할 수 없지만, 그런 여자들이 이 세상에 존재한다는 사실은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홍상수 영화가 늘 그런 것처럼 그런 여자들이 생활 속에서 간단하게 발견될 수 있다는 것에는 쉽게 동의할 수 없다. 그런 의미에서 이건 '일상'이라기 보다는 '어드벤처'다. 그런 여자들을 우연히 어딘가에서 만날 가능성은 아마 그 여자들이 스콧 니어링 자서전을 읽었을 가능성과 비슷할 것이다.

생각해보면 홍상수 영화에 등장하는 여성 캐릭터들은 이유 없이 칭얼대거나 독립적으로 보이면서도 남자들에게 매달린다. 논리적으로 비약이 심한 대사들을 읊어대고 비교적 쉽게 몸을 허락한다. 과연 홍상수는 예지원추상미를 모두 벗겨내면서 '작가'임을 과시한다. 그리고는 "이렇게 돌려도 좋아?", "우리 사람은 될 수 없어도 괴물은 되지 말자" 같은 주옥같은 대사들을 김상경의 입을 통해 선사한다.

<생활의 발견>은 한 조연배우가 영화 캐스팅이 무산되자 춘천과 경주로 여행을 떠나는 이야기다. 그 과정에서 사랑, 아니 여자들이 발견된다. 춘천에서는 선배가 점찍어둔 여자 예지원을 만나고, 경주에서는 추상미에게 반한다. 두 지역을 사이에 두고 동어반복으로 구성된 플롯은 춘천에서 사랑한다고 말해달라는 예지원의 대사를 경주에서 그가 추상미를 향해 똑같이 내뱉게 만들어 놓고 있다. 그러나 공교롭게도 김상경은 두 여자에게 모두 "내 안의 당신, 당신 속의 나"라고 적힌 유치한 사랑 메모를 받는다. 정말 홍상수 영화의 여자란 모두 그런 것일까?

일상을 벗어난 작은 일탈 속의 사랑이야기 <생활의 발견>에서 인물들은 에릭 로메르 영화의 등장인물들처럼 연애를 걸고, 쉽게 자신을 표현하지 못하며, 타인과의 관계에 소홀하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모두 노력한다. 홍상수는 모 인터뷰에서 자신은 노력보다 우연을 믿는다고 했지만, 내가 보기에 <생활의 발견>의 인물들은 모두 열심히 노력하고 있다. 자신의 근심이 사라지도록 정말 간절히 기원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물론 해결되는 것은 아무 것도 없고 단지 쑥스런 감정 조각들 뿐이지만.


2. 집으로...

나는 이정향 감독의 <미술관 옆 동물원>에 대해 그저 괜찮은 정도의 영화라고만 생각해왔다. 중간에 나오는 동화 장면만 드러내면 좋은 영화가 되었을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3년 만에 두 번째 작품을 들고 온 그녀를 보니 그의 전작이 일관된 그녀의 생각에서 비롯된 것임을 알겠다.

<집으로...>는 <미술관 옆 동물원>과 마찬가지로 두 남녀의 동거생활을 다루고 있다. 전작에서 성격이 전혀 다른 미술관 심은하와 동물원 이성재가 만나 티격태격 사랑을 키워갔다면, 여기에서는 도시에서 살다 잠시 외할머니댁에 맡겨진 손자와 말 못하는 외할머니간에 티격태격 사랑이 쌓여간다. 주는 것 밖에 모르는 외할머니의 정성을 손자가 알아채는 순간, 둘이 헤어져야 할 시간은 점점 다가온다.

<집으로...>는 눈물 없이는 볼 수 없는 감동의 드라마다. 이런 상투적이고 촌스런 표현이 이 영화에 딱 어울린다. <생활의 발견>을 보면서 웃느라고 거의 뒤집어졌다면, <집으로...>를 보면서는 눈물샘이 터져서 참을 수 없었다. 아마 사람만 적었다면 엉엉 소리내서 울어버렸을 것이다.

이 영화의 기자회견장에는 등장했던 아이들과 마을주민들이 초대되었는데, 그 자리에서 영화의 촬영이 끝나고 헤어지는 것이 서운했던 아이들이 울음을 터뜨려 다시 한 번 사람과 사람 사이의 정을 느끼게 했다.

충청도의 한 조용한 시골마을에서 6개월간 이 영화를 만들어낸 이정향 감독과 스탭들에게 감사의 표시를 하고 싶다. 비록 이 영화를 구상하고 만들어낸 것은 짧은 기간이었을지 모르지만, 이 영화를 보고 눈물 흘리게 된 나와, 그리고 앞으로 이 영화를 관람할 사람들에게 그 보람은 기분 좋게 남을 것이기 때문이다.


3. 서울

필자로부터 열렬한 지지를 끌어낸 위 두 편의 영화와 달리 대충 "나쁘지는 않군" 정도의 썰렁한 표정을 짓게 만든 <서울>은 '2002 한일합작공동프로젝트'라는 자막으로 시작한다. '토키오'라는 밴드 보컬이자 일본 TV 시리즈에 출연해온 나가세 토모야와 1997년 미스코리아 진 출신이라는게 도저히 믿기지 않는 김지연이 모두 영화에 처음 출연하였고, 여기에 툭하면 거만한 표정으로 "여기는 서울이야!"를 외치는 최민수가 카리스마 넘치는 자세로 등장한다. 감독은 <러브레터> 프로듀서 출신 나가사와 마사히코.

중반 이후부터 갑자기 흐름이 빨라지는 것이 단점이고, 스토리 전개에 있어 논리적인 비약이 심한 부분이 많긴 하지만, 어차피 이 영화를 보러 갈 사람들은 스토리의 논리력보다는 액션 장면의 볼거리와 한 일본 경찰관의 한국문화체험(!)에서 재미를 찾을 것이므로 영화의 완성도을 구체적으로 이야기하고 싶지는 않다.

여기에서 한국의 예의라고 소개된 것은 어른 앞에서 담배 피우지 않는 것과 나이 많은 사람이 먼저 수저를 든 후 밥을 먹는 것, 그리고 연장자가 계산하는 것 정도인데, 아무리 생각해도 각본을 쓴 하세가와 야스오가 한국을 책으로만 알고 있거나 혹은 아주 예전에 접한 기억 밖에 없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혼자서 버스를 쫓아가 테러리스트들을 쓸어버린다는 발상보다 한국의 예의를 언급하는 부분이 더 인상적이었으니 <서울>은 정말 알 수 없는 영화다.






양유창
마음으로부터 그림을 그립니다. 무의식으로부터 시를 씁니다.
비밀스럽게 여행을 떠납니다.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노래를 부릅니다.
운명과 미래를 혼동하지 않습니다.
무심코 떨어뜨린 책갈피에서 21세기가 느껴집니다. 그곳은 슬픈 신세계입니다.
이별이란 말은 너무 슬퍼 '별리'라고 말합니다.

BLOG: rayspace.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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