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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국영화의 어제와 오늘 #1 :::


강병융 | 2001년 10월 18일
조회 8391


최근 아시아 영화들 중에서 가장 괄목할 만한 성장을 보인 것은 단연 한국 영화이다. 이러한 결론에 이견을 달만한 나라가 있다면, 그곳은 바로 태국이다. 태국은 90년대 초까지만 해도 금융 위기와 복잡한 자국 상황들과 더불어 영화업이 사양길을 걷고 있었다. 그러나 지금 태국 영화는 다시 일어나고 있다. 그것도 엄청난 속도로.

1. 낭 레우아(nang reua)와 동시 상영관

처드 송스리의 <심해의 보석>
얼마 전까지만 해도 서울 변두리 지역에서 찾아보기 쉬웠던 동시 상영관이 지금은 거의 종적을 감춰 버렸다. 음울한 분위기와 퀘퀘한 냄새가 진동하고, 마음만 먹으면 3∼4번씩 연속해서 영화를 볼 수 있었던 동시 상영관. 십 수년 전 우리나라 관람객들이 영화관하면 대부분이 동시 상영관을 생각했던 것처럼 태국 사람들도 90년대 초까지는 영화관이라 하면 의례 동시 상영관을 떠올리곤 했다. 태국의 영화 관람 문화는 동시 상영관에 그치지 않는다. 그들에게는 낭 레우아라는 시스템이 있다. 딱히 시스템이라고 말하기도 뭣 하지만. 낭 레우아는 쉽게 말해 이동식 영화관이다. 절의 축제 때나 공휴일에는 어김없이 낭 레우아가 등장한다. 낭 레우아에서는 홍콩 영화나 미국, 유럽의 오락 영화(주로 공포 영화나 애정 영화) 등을 상영하고 가끔씩은 소프트 포르노를 보여주기도 한다. 태국 사람들 열악하지만 동시 상영관과 낭 레우아를 통해 영화애(愛)의 명백을 이어가고 있었다.

2. 보수 VS 진보

어느 장소 어느 시대에나 보수나 진보의 대립은 있기 마련이다. 물론 태국도 예외는 아니었다. 90년대 이전 태국 영화의 양상은 부르주아 군벌 세력인 보수 진영과 새로운 교육과 신사고를 지닌 진보 진영의 대립의 모습을 보였다. 우선 보수 진영의 경우는 군벌 출신으로 정권을 장악하고, 미디어를 통제함으로서 자신들이 만들고자 하는 영화나 방송을 만들기 시작했다. 그들이 선호하는 영화는 대부분 자신들의 권력을 지킬 수 있는 이데올로기가 담긴 오락 영화였다. 반면 진보 진영의 경우, 사회 변화를 지향하는 영화를 만들고자 했다. 하지만 태국의 경우 영화 규제가 심해서 이를 이루기에는 쉽지가 않았다. 신성모독, 범죄조장, 살인, 학대, 정부 비판, 왕실모독 등의 내용은 상영할 수 없는 것이 태국 내무성 만든 영화검열조항의 내용이다. 그 외에도 교육성이나 군부의 철저한 검열로 표현의 자유는 거의 상상할 수 없는 지경이었다.

1973년 학생혁명의 시작과 함께, 사회파 영화들이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그 무렵 국민들 사이에서도 민주화 사상이 깃들어 사회파 영화들의 붐이 일기도 했다. 피아트 포스터나 키드 수완소른, 페름폴 체야룬 등이 당시 사회파 영화의 대표격인 감독들이었다. 이들은 <개의 삶>, <붉은 대나무> 등의 작품을 통해 비평과 흥행의 동시 성공을 이루었다.

3. 우돔뎃 마노프로 대표되는 80년대 이후

태국의 대표 감독, 마노프는 독특한 이력의 소유자이다. 그는 미술교사, 아나운서 등을 거쳐 16mm 영화를 연출하게 된다. 연출의 동기는 '사회 현실에 대한 분노'였다. 작품 이름은 <사회의 주변>. 이 작품은 70년대 태국 농촌 지역의 실화를 바탕으로 만든 영화였다. 그는 토니 레인즈(씨네21로 국내에 알려진 아시아 영화 전문 평론가)에 의해 서양에 소개 되었다. 1981년에 태국에 방문한 토니 레인즈가 마노프의 영화를 보고 감명, 런던 영화제에 소개하게 되었다. 70년대 끝자락부터 90년대 초까지 마노프는 태국의 대표 감독이라고 할수 있을 만큼 다양한 시도의 영화를 만든다. 상업 영화를 표방한 <고소>, 여성문제를 다룬 <한번이면 충분해>, 하드보일드 스릴러 <벙어리는 빨리 죽고 신사는 천천히 죽는다> 등의 그의 작품이다.

그 밖에 묻다사니트라는 감독도 있다. 그는 대학에서 매스컴을 전공하고 소설을 원작으로 한 작품을 연극 무대에 올리기도 하고, 뮤지컬 형식의 영화를 연출하는 등 독특한 이력의 소유자 이다. 1978년에는 매춘을 다룬 <바21의 천사>라는 작품으로 사회적 이슈를 만들기도 하고, 1984년에는 실화를 바탕으로 한 <남푸 이야기>라는 작품으로 최고 흥행을 기록하기도 했다.



마노프의 1987년작 <한번이면 충분해>

태국의 영화는 70년대와 90년대 초까지 보수와 진보의 대립이었다. 70년대 초반에는 보수 군벌 영화가 성행을 했고, 80년대로 넘어 90년대 이르기까지는 사회성이 강한 진지한 작품들이 줄을 이었다. 그리고 90년대 중반 이후 소강상태에 접어들었다. (계속)






강병융
오넷콜맨, 살바도르 달리, 무라카미 하루키, 이제하, 장 비고, 키애누 리브스, 정성일, 쿠엔틴 타란티노, 무라카미 류, 이무영, 존 드 벨로, 김영하, 로이드 카우프만, 장정일, 디지 길레스피
- 상기 거명된 자들을 한꺼번에 믹서기에 넣고 갈아서 마시고 싶은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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