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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itation of Life


스즈키 세이준과 반미감정 :::


양유창 | 2002년 02월 23일
조회 8830


1. 스즈키 세이준

스즈키 세이준이라는 이름은 참 오래된 이름이다. 예전에 박찬욱 감독의 책에서 처음 접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물론 그때는 영화는 보지 못했고, 기이한 감독이라는 것만 짐작할 수 있었다. 처음 본 그의 영화는 사실상 <피스톨 오페라>였다. 이전에 그의 영화를 볼 기회가 몇 번 더 있었지만, 이상하게 그때마다 별로 의욕이 생기지 않았다. 집에 크라이테리온에서 나온 <살인의 낙인> DVD가 있으면서도 보지 않았다. 그래서일까? <피스톨 오페라>를 보기 전에도 약간 망설여졌다. 한국에서 굳이 보고 싶지 않았는데 네덜란드까지 와서 볼 필요가 있을까? 다행인지 불행인지 원래 그 시간대에 보려고 했던 다른 영화가 매진되는 바람에 <피스톨 오페라>를 보게 되었다. 그 큰 극장에서 많은 사람들이 참 진지하게 영화를 보았다. 하지만, 난 답답했다. 여배우가 예쁘다는 것 빼고는 별로 주목할 만한 것이 없었다. 더구나 감독은 마치 대가라도 된 것처럼 영화 곳곳에 다른 예술가들과 철학자들의 클리셰들을 삽입해놓고 있었다. 하지만, 이 영화가 그런 대가들의 작품을 수용할 만큼 가치가 있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영화가 끝나고 난 뒤 내 느낌은 실망 그 자체였다.

그 뒤, 요즘 열리고 있는 스즈키 세이준 회고전에서 두 편의 영화를 더 보았다. <유메지>와 <살인의 낙인>이다. 그리고, 감독과의 대화에 참석하였다. <유메지>는 한 마디로 <피스톨 오페라>의 동양화 버전이고, <살인의 낙인>은 <피스톨 오페라>의 전편 혹은 소품 격이었다. 역시 둘다 뛰어난 영화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무슨무슨 대가라고 그를 추켜세우는 미사여구들이 모두 장난처럼 생각되어졌다. 감독과의 대화에서, 닛카츠 영화사에서 시키는 대로 영화를 찍었다는 감독의 말을 들으면서 이 할아버지가 불쌍해지기 시작했다. 정말로 아무런 철학이 없는 것인가. 그의 영화들에서 내가 가장 염려하는 부분인 여성인물에 대한 너무나 방만적인 아무런 개념 없는 묘사에 대한 그의 답변은 "내가 알 바 아니었다"였고, 이쯤되자 나는 짜증이 나기 시작했다. 도대체 이런 감독의 회고전은 왜 필요한 것일까? 십분 양보해서 다양한 영화를 경험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할지라도, 그의 말대로 그가 죽은 다음에 해도 되는 것 아닌가. 영화 속에서 몇몇 깜찍한 아이디어는 있었지만, 그것들을 제외하고 그는 살아있는 송장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2. 반미감정

[칼의 노래]라는 소설로 조선일보사가 주최하는 동인문학상을 수상한 김훈이 한겨레 기자가 된다고 했을 때, 한겨레 게시판에는 많은 논쟁이 있었다. 친조선일보적이고, 남녀차별적인 발언이 [한겨레21]에 실린 이후 [시사저널] 편집국장을 사직한 그였기에 한겨레 노선과 맞지 않는 그를 기자로 영입한 이유를 따져묻는 논쟁이었다. 오늘 그 논쟁 글들을 훑어보다가 재미있는 기사 하나를 읽게 되었다. 바로 [월간조선]에 실린 인터뷰 기사였다. 그 기사에 의하면 김훈은 자신의 세계관이 분명한 사람이었다. 그리고 그 세계관을 간단하게 좌 혹은 우로 나눌 수 없는 사람이었다. 아니, 그것을 거부하는 사람이었다. 일례로,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침공에 대해 그는 이렇게 말한다. 어차피 약육강식의 세상이기에 나라가 부국강병해지는 길이 최선이라고. 개인이 아닌 국가에 대해 도덕적인 판단을 물을 수 없는 것이라고.

언론인인 김훈은 외곬수적인 그의 성격으로 여러 직장을 옮겨다니다가 등단하면서 어느덧 유명해지게 되었다. 인터뷰에서 그는 한 사건에 대해 객관적으로 조명하는 대신 도덕적인 기준을 갖다 대는 언론을 비판하는데, 나는 비록 김훈의 모든 의견들에 동조할 수는 없지만, 좋은 것과 나쁜 것을 가림으로써 여론을 편파적으로 몰아간다는 이런 시각은 생각해 볼 만한 것이었다고 생각한다.

언론은 미국에 대한 보도에서 사실을 보도하면서도 그것을 선과 악으로 나누기 때문에 여론을 호도할 수 있다. 예컨대, 부시의 '악의 축' 발언에 나라가 들썩한 것이나 김동성의 실격사건에 대한 보도 역시 그런 측면에서 볼 수 있다. 사실을 보도하고 옳은 것과 그른 것을 판단하는 기능을 넘어서 언론은 선과 악을 구분하려 한다. 마치 부시정부가 미국편과 테러리스트편을 구분하라고 종용하는 것과 같다.

물론 나 역시 김동성의 실격판정은 기분 나쁘고 부시의 생뚱맞은 제스처는 역겹다. 하지만, 그에 대한 대응은 감정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다. 한국 네티즌들이 솔트레이크의 서버 몇 대를 정지시킨다고해서 관심있는 사람들이 "과연 한국 네티즌들이 옳군!" 하고 손 들어줄 일이 아니고, 한국경찰이 반미시위대를 폭력진압한다고 해서 미국인이나 부시 방문단 일행이 "역시 미국은 대단해!" 하고 웃을 일도 아니다. 제대로 정신 박힌 사람들이라면, 이번 올림픽 전체를 위해 마련된 서버가 한 종목과 관련된 집단으로 인해 마비된 것에 대해 기분이 나쁠 것이고, 또, 반미시위대를 폭력진압한 경찰에 대해 인권을 존중하지 않는 국가의 권력남용이라며 비판할 것이다.

나는 반미감정은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그것이 지금처럼 무턱대고 지지받거나 폭행당하는 일은 없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양유창
마음으로부터 그림을 그립니다. 무의식으로부터 시를 씁니다.
비밀스럽게 여행을 떠납니다.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노래를 부릅니다.
운명과 미래를 혼동하지 않습니다.
무심코 떨어뜨린 책갈피에서 21세기가 느껴집니다. 그곳은 슬픈 신세계입니다.
이별이란 말은 너무 슬퍼 '별리'라고 말합니다.

BLOG: rayspace.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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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aders' Comments

글이란..제대로 보고 난 후 nawaana(임재진) - 2002/02/25
전편의 영화를 거의 봤고 몇 편은 두어번 이상 본 사람으로서 유메지와 살인의 낙인을 피스톨 오페라와 비교한 것은 거북하고 감독의 사후에 회고전 운운은 진부하다. 제목의 반미감정에서 새로운 점을 기대햇지만 다른얘기였고.. 적어도 야쿠자류의 영화에서 서부영화 느와르 표현주의 뮤지컬등의 요소만으로도 세이준의 영화는 재미 그자체다. 부산에서 상영할 때 좀 보심이..
스즈키 세이준에 중독되어 보낸 일주일 cineeun(곽은주) - 2002/02/26
오늘, 마지막 상영작 <육체의 문>을 그야말로 마지막으로 보고 새벽5시가 넘도록 날밤 새우고 있다. 주말에 부산으로 내려가서 또 보고 싶다는 강한 유혹을 이런 저런 이유로 스스로 뿌리치며.
감독에 대한 어떤 사전 지식이나 정보도 하나 없었다
근래 볼 영화가 없어서 심심해 하고 있던차라 수원에서 기차타고 구루마 타고 선재까지 갔었다 지난 화요일.
그리고 <켄카 엘레지>(1966년작)를 봤다. 감독의 유머와 재치가 21세기를 살고있는 지금의 정서에도 크게 벗어나 있지않다는 사실에 놀랬다. 유치하고 촌티나는 것이 사실은 인간 본래 모습이 아닌가싶다. 세련되게 치장하고 과대 포장하는 작금의 영화들에 길들여진 우리들에게 `너희들 영화 맛좀 볼래'하며 보여주는 영화들. 색색의 알사탕을 녹여 먹는 기분이들었다 그렇게 영화는 달콤하고 맛낫다 신났다 흥분됬다.
시간이 자유롭지 못해 겨우 7편밖에 못 본 것이 두고두고 아쉬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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