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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itation of Life


세상의 근원 - 미술과 영화 :::


양유창 | 2001년 12월 16일
조회 106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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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개봉한 영화들 중 몇 편은 내게 많은 생각을 하게 해주었다. 특히 <센터 오브 월드>와 <나쁜 남자>, 그리고 <멀홀랜드 드라이브>는 영화를 보는 내내 스크린과 내 상상속의 세계를 넘나들게 하는, 오랜만에 만나는 자신감 넘치는 영화들이었다.

이 세 편의 영화들에는 어떤 공통점 같은 것이 있었다. 그것은 마치, 일종의 그림을 한 편 본 것 같은 공통점이었다. <센터 오브 월드>가 구스타프 쿠르베라면 <나쁜 남자>는 에곤 쉴레일 것이고, <멀홀랜드 드라이브>는 르네 마그리트와 프란시스 베이컨을 합쳐 놓은 것 같은 느낌이었다. 아니, <멀홀랜드 드라이브>는 그보다는 좀더 과격한 뉴욕의 젊은 무명 화가의 추상화처럼 느껴졌다. 한 번 강렬한 인상을 받았지만, 다시 생각하려고 찾아보면 금새 이름과 작품 어떤 것도 기억할 수 없는 그런 무명 화가 말이다.

미국 화가 제임스 휘슬러의 애인이었던 아일랜드 태생의 조안나 히퍼넌은 이후 쿠르베의 정부이자 모델이 되어 쿠르베의 화폭 안에 여러번 담기는데, 쿠르베가 은밀하게 당시 백만장자의 부탁을 받고 그려준 이 '세상의 근원'의 모델도 그녀일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비어 있음이 주제야. 그림의 중심이야. 나는 비어 있음의 둘레를 그릴 거야. 터널은 자기 모습을 드러내지 않기 때문이지. 여성의 중심에 있는 남성의 장소이고, 그 순간에 나의 장소인 거야. 그 없음과 그 지고함인 거야. 거기에, 바로 가장 위대한 행복과 가장 깊은 절망의 근원이 있어. 자, 다들 보시오. 이게 이 잘난 세상의 근원이라구. 사랑과 정열이 무슨 대단한 것이라도 되는 양 낭만적인 덧칠을 하는 멍청한 몽상가 여러분, 잘들 보라구. 세상이 그렇게 감미롭고 신비로운 줄 알아? 결국 이거야, 온갖 정념과 상상력의 근원, 모든 진실의 귀착지는 결국 이거야, 잘들 봐!"

'세상의 근원(L'Origine du monde/1866)'을 발표한 쿠르베의 비아냥거림이다. 이 그림은 파리 오르세 미술관에 전시되어 있는데, 그 뻔뻔함은 사람을 참 민망하게 만든다. 그 민망함은 <센터 오브 월드>에서도 역시 마찬가지다. 필자는 5년 전쯤 웨인 왕이 들려주던 소소한 이야기 <스모크>를 아주 좋아했는데, 당시 정치색이 들어간 영화를 싫어하던 터라 이런 정적이면서도 감정이 많이 실리지 않은 휴먼드라마에 무엇보다 애착이 갔었다. 담배연기와 함께 인생을 이야기하는 그 여유로움에 매료되었던 것이다. 그래서일까? 사실 <센터 오브 월드>가 미국에서도 등급거부 판명되었다고 했을 때 별로 놀라지 않았다. 홈페이지가 보여주는 에로틱한 상상력에도 불구하고 영화는 별로 그렇지 않으리라는 것을 예감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센터 오브 월드>는 <스모크> 만큼이나 정적인 영화다. 그리고 아주 친절하고 사려깊은 영화다. 영화 속에 아무런 불법도 등장하지 않고 NC-17 등급에 논의되었던 영화답지 않게 심지어 욕도 거의 나오지 않는다. 오히려 이 영화는 '세상의 중심'을 자기 나름대로 생각하는 두 남녀의 차이점을 보여주는 영화다. 남자는 그것이 여성으로부터 사랑을 얻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여자는 그것이 자궁이라고 생각한다. 또, 남자는 세상의 중심이 인터넷이라고 생각하고, 여자는 그것이 돈이라고 생각한다. 서로 사랑하면서도, 남자는 여자에게 사랑받고 싶어하고, 여자는 남자에게 창녀 이상의 역할을 거부하려한다. 세상의 근원이 저기 저렇게 아무렇지도 않게 보이지만, 저건 허구에 불과하다.

두번째 작품은 에곤 쉴레이다. 에곤 쉴레 역시 마찬가지로 여성의 누드그림을 많이 그린 화가였다. 그의 표현주의적 작품에서 느껴지는 차가움은 그의 성격을 말해주는데 가난하던 그는 세상에 잘 적응하지 못했고, 젊은 나이에 요절하기 전까지 철저히 고립된 삶을 살면서도 전쟁에 자원하는 등 자존심이 강한 사람이었다. 어느 시골 마을에서 한 여성의 누드를 그리고 있던 그는 마을주민들의 고발로 인해 소녀추행범으로 감옥에 갇히게 된다. 그 이후 그는 철저히 의사소통을 단절한다. 아마도 그러한 느낌이 그의 작품에 있을 것이고, 또 그의 작품을 소품으로 한 김기덕(A) 감독의 <나쁜 남자>에도 있을 것이다.

  • <나쁜 남자> 삽입곡 Carola - Blott En Dag 듣기

    혀를 잘린 듯한, 도무지 아무런 말이 없는 한 남자가 한 여자를 강렬한 눈빛으로 쳐다본다. 그 남자는 여성의 누드그림을 그리고 소녀를 추행하는 것을 넘어 그것으로 생계를 꾸려가는 남자다. 그가 그 여자에 대해 가지고 있는 감정이 어떤 것인지 나는 모른다. 화가가 '저 여자를 그리고 싶다'라고 말할 때의 감정과 비슷할 것이라고 짐작할 뿐이다. 모든 작업이 끝나고 나서 그는 그 여자를 다시 처음의 자리에 내려놓는다. 화사한 꽃이 핀 어느 벤치에 앉은 그녀는 이제 순결한 대학생에서 창녀로 신분하락되어 있는 상태다. 혹은 자신을 발견한 화가와 사랑에 빠져 있는 상태다. 그곳에서, 그녀는 왜 집으로 돌아가지 않을까? 왜 자신의 원래 신분으로 복귀해서 '위험한 상상력의 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오즈의 마법사'처럼 귀환하지 않고, 유랑극단처럼 바닷가 마을을 떠돌기를 자청하는 것일까?

    그녀가 찢어서라도 소장하고 싶어했던 한 점의 그림이 그녀의 감정을 설명해줄 수 있을까? 면과 굴곡으로만 표현되어 있는 남녀는 도대체 어디를 보고 있는 것일까? 자신의 몸이 수차례 망가진 후에야 그녀는 비로소 자신의 몸을 떠나 자유로워지는 것일까?

    여자의 몸이 망가지는 느낌은 <멀홀랜드 드라이브>에서는 초현실적으로 나타난다. 정말 오랜만에 느껴보는 영화의 사려깊은 매력이 담긴 장면 장면들은 내 가슴을 뛰게 했다. 느릿느릿한 인물들의 대사, 도대체 다음 장면이 어떻게 전개될 지 짐작도 할 수 없는 말도 안되는 내러티브, 하지만, 데이빗 린치의 팬이라면 너무도 익숙한 소품들과 음악들. 영화를 보고나서 이 영화는 한 폭의 그림으로 옮기기에 아주 적절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런 그림을 이미 본 것 같았다. 누군지 알 수 없는 한 여자가 소리지르고 있는데, 그녀의 얼굴은 흐릿한 비닐에 가려져 있고, 그 주변에는 붉은 커튼이 드리워져 있으며, 커튼 사이로 보이는 유일한 출입문에는 파란색 자물쇠가 달려 있다. 얼굴이 유난히 큰 난쟁이가 아래에서 위를 지팡이로 가리키면 위에는 자동차가 한 대 공중에 떠 있다. 이 모든 광경들은 스크루볼처럼 휘어져 있으며, 그 휘어짐은 불균질하고 불규칙적이다.


    영화가 한 폭의 그림이 되어 머리 속에 각인되는 이 상상은 참 우연한 것이다. 더구나 좋다 싫다를 확실하게 말할 수 없는 위 세 편의 영화들은 가치관의 판단을 유보하고 바로 정지된 그림 속으로 모든 러닝타임을 맡겼다. 영화가 말하고 싶어하는 세상의 근원이란 과연 무엇일까?






  • 양유창
    마음으로부터 그림을 그립니다. 무의식으로부터 시를 씁니다.
    비밀스럽게 여행을 떠납니다.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노래를 부릅니다.
    운명과 미래를 혼동하지 않습니다.
    무심코 떨어뜨린 책갈피에서 21세기가 느껴집니다. 그곳은 슬픈 신세계입니다.
    이별이란 말은 너무 슬퍼 '별리'라고 말합니다.

    BLOG: rayspace.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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