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stivals : 전주 국제영화제

대안영화, 디지털 영화들의 난장


글: 라인지기
2000년 04월 30일

영화제 조직위가 전하는 영화제 첫날 풍경

전주시 고사동 소재, 새로 단장한 '영화의 거리'는 오늘 하루 영화제에 참가하기 위해 모인 사람들로 넘쳐났다. 개막 전 이미 전체 티켓의 3분의 1이 팔려버린 예매율로 볼 때 어느 정도 예측된 상황이지만, 이 정도로 많은 인파가 모일 줄은 몰랐다며  영화제 관계자들은 기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영화제 가이드 맵과  티켓 카탈로그를 양 손에 들고 상영장 앞에 줄지어 선 관객들의 열띤 호응으로, 전주의 태양 빛이 한층 더 뜨거웠다.

예매 마감시 매진된 작품은 총 60여 편, 처음 시작하는 영화제치고는 순조로운 출발을 보여주었다. 영화제 첫날 매표소마다 길게 줄을 선 관객들을 안타깝게 한 작품으로는 <아드레날린 드라이브> <포르노그라픽 어페어> <부에노스 아이레스 제로 디그리>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 등 영화제 시작 전부터 화제를 몰고 온 작품들이 대부분이다. 특히 영화제에서 야심차게 기획한 '오마주와 회고전' 부문의 여러 작품들 - <미스터 웨스트의 신나는 모험> <세컨드 서클> <연연풍진> 등 - 도 매진되어 전주 시민들의 높은 안목을 확인시켜 주었다.

 


축제의 현장에서 만나는 또다른 즐거움

제1회 전주국제영화제에서 부대행사로 준비한 크고 작은 이벤트들이 대안영화, 디지털 영화를 지지하고 소개하는 영화제답게, 다양하고 색다른 서브문화를 즐길 수 있도록 특별히 구성되어 축제 분위기가 한층 고조되고 있다. 영화제 첫날인 오늘은 영화의 거리에 설치되어 있는 메인무대와 덕진공원 야외상영장의 야외무대에서 치뤄졌는데, '영화의 거리'를 말 그대로 가득 메운 관람객들의 폭발적인 호응 속에 진행되었다.

대안영화? 우리는 대안적인 춤꾼들.. 제1회 CIFF컵 힙합 배틀넷

아마추어 힙합 댄스팀들이 출전해 자신들의 댄스실력을 겨루는 힙합 문화마당인 'CIFF컵 힙합 배틀넷'은 오후 5시에 덕진공원 야외상영장에서 열렸다. 힙합은 전주영화제가 지향하는 '대안'이란 주제에 가장 적합한 장르로, 이 행사는 전주를 찾아온 젊은 관객들을 위해 특별히 준비한 프로그램이다. 총 5개 팀이 참가해 경연을 펼치고 정통 힙합 그룹 '피플 크루'가 심사를 맡았다. 참가자들의 열정적인 무대에 관객들도 박수와 몸짓으로 응대했으며, 행사 중간에 깜짝 이벤트로 마련한 관람객 참여의 '막춤' 코너는 폭소를 이끌어내 축제의 분위기를 한껏 돋우었다.

전주는 이제 '별들의 고향' - 스타 영구보존  페이스 프린팅

전주국제영화제를 기념하기 위해 초청 인사와 한국을 대표하는 영화인의 얼굴을 순간조형으로 떠서 그들의 사인과 함께 영구 보관하는 것이다. 사실 영화제에 참가하는 사람들이 누리는 또 하나의 특권은 자신이 좋아하는 영화인들을 영화제 현장에서 직접 볼 수 있다는 것. 이번 페이스 프린팅 행사는 변영주 감독의 진행으로 초청 게스트들의 인터뷰와 함께 진행된다. 오늘은 오후 7시에 B급 영화의 대부 로저 코만 감독과 최근 개봉작이자 전주국제영화제 '한국영화' 부문 출품작인 '섬'의 김기덕 감독 페이스 프린팅이 이루어졌다. 로저 코만 감독의 경우, 오늘밤 있을 예정인 '미드나잇 스페셜' 첫째 날인 <로저 코먼의 밤>에 대한 기대감으로 모인 사람들의 적극적인 질문들이 끊이지 않아 일흔이 넘은 노감독을 흐뭇하게 했으며, 김기덕 감독은 '섬'의 제작자 이은, 주연배우 서정, 김유석과 함께 등장해 자신의 작품세계를 소개하였다. 게스트들이 조형된 자신의 얼굴에 직접 사인할 때에는 우레에 같은 박수가 터져 나왔다.

심포지엄 특별 이벤트 - 두 명의 변사

'두 명의 변사'는 영화를 보는 재미 뿐만 아니라 영화를 보는 방식에 대해서도 생각해 볼 수 있는 절호의 기회! 두 편의 무성영화 - 미국영화 <괴인 서커스단의 비밀>과 한국영화 <검사와 여선생>-를 두 명의 변사가 각기 다른 언어로 재현하는 특별 이벤트이다. (씨네21 3관/ 4회 오후 8시)

미국 무성영화의 거장 토드 브라우닝 감독의 기이하고도 재미있는 영화 <괴인 서커스단의 비밀>은 우리 나라 최후의 변사 신출씨가 담당하고, 한국 무성영화 <검사와 여선생>은 미국에서 비교문학을 전공한 시인 월터 류씨가 변사 역을 맡았다. 먼저 진행자의 변사공연에 대한 간략한 설명과 변사들의 인사가 이루어지고 상영이 시작되었다. 상영장에는 어린이에서부터 할머니까지 다양한 연령층이 모여 있어 이 행사의 의미를 더했는데, 가족 단위의 관객이 많았다. 일례로 할머니와 딸과 손자 3대가 함께 오붓하게 앉아 있는 가족도 있었다. 공연이 끝나자 관객들이 힘차게 두 명의 변사에게 힘차게 박수를 치는 가운데 두 변사가 서로 다정하게 격려하자 이에 다시 한번 감사와 경의의 갈채를 보내는 등, 공연자나 관객 모두 훌륭한 매너를 보여 행사에 참여한 모든 이들을 흐뭇하게 했다.

이 외에도 오늘 상영작 중 하나인 '애니메이션 비엔날레' 부문의 <앨리스>의 주연 성우인 시미즈 가오리와의 대화가 메인 무대에서 진행되었는데, 자신이 직접 불렀던 엔딩 테마곡을 무대에서 부르기도 했다. 영화제 기간동안 이 행사는 매일 진행될 예정이다. 한편 오늘밤에는 전주를 찾아온 골수 영화팬들이 기다려 마지않는 <미드나잇 스페셜> 그 첫 번째 밤 행사가 드디어 열리며, 내일은 애니 캐릭터 쇼인 '코스튬 플레이' 이벤트도 펼쳐진다.

 


감독과 관객의 공감 - 관객과의 대화

영화제는 만남의 장이다. 영화를 보는 이들과 만드는 이들의 만남. 그 속에서 영화제는 진정한 축제가 된다. '관객과의 대화'는 그런 의미에서 매우 중요한 시간이라 할 수 있다. 29일 하루동안 이루어진 '관객과의 대화'는 <부에노스 아이레스 제로 디그리>, <인터뷰>,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 <아드레날린 드라이브>, <원피스 프로젝트>, <앨리스>, <절망의 조이 스트리트> 등 7회.

이미 몇 번의 단편영화제에서 실력을 인정받은 바 있는 류승완 감독은, 영화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에서 폭력의 극한을 실험하고 있다. 그런 그의 작품에 대해 한 관객은 "이 영화는 통제할 수 없는 것 그 자체이다"라고 표현했으며, '관객과의 대화'에 함께 자리한 조용규 촬영감독은 왕가위 감독의 스타일과 비슷하지 않느냐는 질문에 대해 "감독이 핸드헬드 촬영기법을 좋아한다"며 "이 영화의 라스트는 '라이언 일병 구하기'에서 영향을 받았다"고 했다.

한편 최첨단 디지털 상영방식으로 상영되어 관심을 끈 일본 애니메이션 <앨리스>는, 주연 성우인 시미즈 가오리와 감독 마에지마 켄이치가 함께 전주를 방문하여, 상영장 안과 밖에서 관객과의 행복한 만남을 가졌다. 애니메이션 비엔날레 김준양 코디네이터의 사회로 진행된 대화 자리에서, 서툰 한국말을 애써 구사하는 켄이치 감독의 모습은 한국 관객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디지털로 제작되고 상영되었다는 점 때문인지 기술적인 측면에 대한 질문이 많이 나왔으며, 후배 애니메이터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대해서는 "사람들에게 얘기할 수 있도록, 이론으로 무장하라"는 메시지를 전했다. 특히 16살의 나이만큼이나 발랄하고 귀여운 성우 시미즈 가오리는 <앨리스> 대사 중 한 부분을 직접 해 보임으로써, 관객들에게 많은 박수를 받았다. 메인무대에서 그녀는 주제가인 '화이트 릴리'를 불렀는데, 노래 가사가 영화의 내용과 딱 맞아떨어지고 너무 감동적이어서 개인적으로 좋아한다는 감상까지 얘기했다.

누구보다도 오늘의 주인공은 <아드레날린 드라이브>, <원피스 프로젝트>의 감독 야구치 시노부였다. 김소영 프로그래머의 짤막한 소개와 감독의 무대인사로 상영을 시작한 <아드레날린 드라이브>는, 영화가 진행되는 동안에도 몇 번이나 박수가 터지는 등, 관객들의 호응이 대단했다. 작품만큼이나 재치로 똘똘 뭉친 야구치 시노부 감독은 관객들의 황당한 질문에도 재치있게 대답했으며, 이 작품은 자신의 전작 <원피스 프로젝트>에서 모티브를 따 왔다고 하여 흥미로움을 더했다. 2시간 후 덕진예술회관에서는 바로 그 작품이 상영되었으며, 원 씬 원 쇼트로 이루어진 이 매력적인 단편들의 모음에 대해 관객들은 폭소와 박수로 응답했다. 감독은 "영화란 절대 어려운 것이 아니며, 아이디어로 승부해야 한다"고 말했으며, 이를 지켜본 관객들도 "단순히 유머러스한 것만이 아니라 영화에 대해 일반인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형식상의 대안을 보여줬다"고 하여, 감독과 관객의 공감지대가 형성되는 영화제만의 가슴 설레는 풍경이 연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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