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카고 Chicago (2002) ★★★☆

듀나의 영화낙서판

시카고 Chicago (2002) ★★★☆ :::

Djuna | 2003년 03월 19일
조회 3908

전에 [에비타]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현대 뮤지컬을 영화로 옮기는 작업의 위험성에 대해 이야기한 적 있었죠. 그 이야기는 [시카고]로 계속 이어집니다. [에비타]와 마찬가지로 [시카고] 역시 오래간만에 만들어진 브로드웨이 뮤지컬의 영화 버전이니까 말이에요.

그러나 그 이야기를 하기 전에 일단 [시카고]라는 영화와 뮤지컬에 대한 기본 정보를 읊어보기로 하죠. 이 작품의 제1차 원작은 시카고 트리뷴의 기자이기도 했던 작가 모린 왓킨스가 24년에 일어났던 실제 살인 사건 재판을 모델로 해서 썼던 26년작 희곡 [시카고]입니다. 이 작품은 [시카고]와 [록시 하트]라는 제목으로 두 차례 영화화되었고 나중에 밥 포시에 의해 브로드웨이 뮤지컬로 만들어졌는데, 그 작품은 또 96년도에 다시 개작되어 재상연되었습니다. 오늘 우리가 이야기할 [시카고]는 포시의 브로드웨이 버전을 다시 영화로 만든 것인데, 75년 버전보다는 96년도 버전에 가까운 모양입니다.

당연한 일이겠지만 이 긴 각색의 기간 동안 영화의 의미는 조금씩 변형되었습니다. 모린 왓킨스가 희곡을 썼을 때, 이 이야기는 20년대인 현재에 대한 냉소적인 비판이었습니다. 하지만 70년대와 90년대의 뮤지컬과 2000년대의 뮤지컬 영화로 텍스트가 넘어가면서 구체적인 비판의 의미는 조금씩 사라졌습니다. 요새 와서 보면 이 이야기는 활력이 넘쳤던 20년대에 대한 일그러진 향수로 더 잘 먹히는 것처럼 보입니다. 종종 추잡하고 더럽긴 했어도 총소리와 재즈가 난무하던 20년대는 분명 매력적인 시대니까 말입니다.

영화의 주인공은 남자 친구를 쏴죽인 록시 하트라는 벌레스크 댄서 지망생입니다. 운좋게도 시카고 최고의 형사 변호사인 빌리 플린을 만난 록시는 재판 기간 동안 피냄새에 열광하는 매스컴 덕택에 오히려 시카고 최대의 스타가 됩니다. 그러는 동안 바람난 남편과 동생을 쏴죽인 플린의 또다른 고객 벨마 켈리와 록시의 위태로운 알력이 시작되지요.

아까도 말했지만, 이 작품의 원작은 20년대 언론의 천박한 센세이셔널리즘에 대한 비판이었습니다. 하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그런 현실 비판의 느낌은 조금 사라졌죠. 현대 매스컴이 20년대보다 도덕적으로 특별히 발전한 건 아니지만 그래도 우리와 그들 사이에 놓인 몇십 년의 세월은 구체적인 비판의 힘을 조금 약화시킵니다.

그렇다고 꼭 작품이 힘을 잃었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20년대 미국 언론이라는 구체적인 표적이 사라지자 주제는 인간이라는 천박한 동물 자체로 확대되었기 때문입니다. 덕택에 이 작품의 야비한 시니시즘은 일종의 보편성을 띠게 됩니다.

그러나 우리가 관심을 가져야 할 건 주제가 아닙니다. 굉장히 무대의 느낌이 강한 이 브로드웨이 뮤지컬이 어떻게 할리우드 영화로 전환되었느냐는 것이죠.

무대의 뿌리를 철저하게 무시했던 [에비타]와는 달리, [시카고]는 절충주의적인 수법을 도입했습니다. 영화는 두 개의 세계를 번갈아 오갑니다. 하나는 록시와 벨마가 유치장에 갇히고 재판을 받는 현실 세계입니다. 다른 하나는 주인공들이 노래와 춤으로 감정을 표출하는 가상의 무대입니다. 이들은 종종 빠른 편집에 의해 한 장면 안에 공존하기도 합니다. 나쁘지 않은 아이디어죠. 영화적 사실성을 유지하면서도 원작이 가졌던 표현주의적 느낌을 지킬 수 있으니까요.

문제는 그게 얼마나 효율적이냐는 것입니다. 현실 세계 장면은 별 문제가 없습니다. 하지만 가상의 무대 장면들의 연출에는 조금 수상쩍은 면이 있습니다. 이 장면들은 대부분 전면에 앉은 관객들을 위해 안무되었는데, 카메라는 마치 안무의 구성 따위엔 신경도 쓰지 않는다는 듯 태평스럽게 배우들 주변을 빙빙 돕니다. 덕택에 종종 구석 자리 근방을 빙빙 돌며 연극을 보고 있다는 느낌까지 들어요. 이게 의도적인 것인지, 아니면 나름대로 의미가 있는 것인지는 모르겠습니다. 제가 말할 수 있는 건 이런 표현 방식이 안무와 연기를 최대한으로 활용하고 있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영화는 여전히 재미있습니다. 원래부터 소스가 좋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겠죠. 춤과 노래는 강렬하고 영화의 거의 잔인하기까지한 시니시즘은 날카로운 강철 사슬처럼 근사한 힘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캐스팅이 좋아요. 뮤지컬에 주류 배우들을 캐스팅하는 건 분명 모험인데, 이들은 대역 따위는 쓰지 않으면서 자기 역할을 훌륭하게 해내고 있습니다. 캐서린 제타-존스나 리처드 기어 같은 배우들이야 뮤지컬 경력이 있으니까 그렇다고 쳐도, 존 C. 라일리 같은 배우가 근사하게 뮤지컬 넘버를 뽑아댈 때는 놀랄 수밖에 없습니다 (이 사람도 알고 보니 경력이 없진 않더군요.)

결론지어 정리해볼까요? (1) [시카고]는 훌륭한 오락물인가? 물론이죠. (2) [시카고]의 출연 배우들의 연기들은 오스카감인가? 물론이에요. (3) [시카고]는 훌륭한 뮤지컬인가? 아마도요. (4) 무대 뮤지컬 [시카고]는 뮤지컬 영화 [시카고]로 완벽하게 전환되었는가? 그건 아무래도 아닌 것 같아요. 우린 여전히 이 영화를 좋게 보고 즐길 수 있지만, 아직 무대 뮤지컬의 대용품 이상인 무언가가 되기엔 모자란 것 같단 말이죠.

이런 건 큰 문제가 아닐 수도 있죠. 영화 버전 [뮤직 맨]도 무대 대용물이지만 여전히 사람들은 좋아하잖아요. 소스가 좋으면 그게 큰 문제가 아닐 수도 있습니다. 그래도 전 롭 마샬보다는 밥 포시와 모린 왓킨스에게 공을 돌리고 싶지만요.

기타등등

카탈리나가 헝가리어로 부른 노래의 가사 번역은 다음과 같답니다. "What am I doing here? They say, the famous Hungarian police, that I held down my husband and chopped off his head. But I didn't do it, I am not guilty. I can't believe that Uncle Sam says I did it. They say I did it, but really I didn't."

감독
롭 마샬 Rob Marshall

주연
르네 젤위거....록시 하트
Renée Zellweger....Roxie Hart
캐서린 제타-존스....벨마 켈리
Catherine Zeta-Jones....Velma Kelly
리처드 기어....빌리 플린
Richard Gere....Billy Flynn
퀸 라티파....마마 모튼
Queen Latifah....Mama Morton
존 C. 라일리....에이모스 하트
John C. Reilly....Amos Hart
테이 딕스....밴드리더
Taye Diggs....The Bandleader
크리스틴 바란스키....메리 선샤인
Christine Baranski....Mary Sunshine
콤 피어....마틴 해리슨
Colm Feore....Martin Harrison
마야 해리슨....모나
Mýa Harrison...Mona
루시 리우....키티 백스터
Lucy Liu ....Kitty Baxt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