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스트 쉽 Ghost Ship (2002) ★★ :::

Djuna | 2002년 12월 03일 조회 4385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저는 유령선의 이야기를 좋아합니다. 승무원들을 모두 잃고서도 마치 자체의 생명이라도 지닌 것처럼 대양을 가로지르는 거대한 인간의 구조물이라는 개념은 꼭 초자연현상을 도입하지 않아도 으스스하고 아름답습니다. 어떻게 보면 유령이 필요없는 귀신들린 집이라고 할 수도 있을 거예요. 물론 메리 셀레스트처럼 약간의 미해결 미스터리가 더해진다면 더욱 그럴싸하겠지요. 진짜 유령들이 곳곳에 숨어 있다면? 역시 나쁠 건 없죠.
그러나 정말로 괜찮은 유령선 이야기는 많지 않습니다. 아마 제작비 때문이 아닌가 싶어요. 귀신들린 집 이야기야 적당히 으스스한 집을 찾아 야외 촬영분을 찍고 나머지는 그냥 스튜디오 작업을 하면 되지만 유령선은 스케일이 훨씬 더 크잖아요? 대부분 공포 영화들은 저예산이니 시작부터 막히는 셈이지요. 귀신들린 집 장르와 대부분의 장르 규칙을 공유하고 있기 때문에 신선한 무언가를 끄집어내기 힘들다는 것도 문제겠고요.
스티븐 벡의 [고스트 쉽]도 뭔가 새롭고 그럴싸한 결과를 낸 영화는 아닙니다. 하긴 리메이크 버전 [13 고스트]를 감독한 전직 특수 효과 전문가의 신작이니 여러분도 큰 기대는 안했겠지만 말입니다.
[고스트 쉽]은 1962년 안토니아 그라자라는 이탈리아 호화 여객선에서 일어난 무참한 승객 학살에서 시작됩니다. 무도회장의 대학살이 끝나면 영화는 훌쩍 현대로 건너 뛰어 안틱 워리어라는 인양선의 승무원들로 옮겨갑니다. 마침 한탕하고 기분이 좋아져 있던 이들에게 캐나다 공군의 사진 촬영가라는 한 남자가 다가와 베링 해에서 찍은 안토니아 그라자의 항공 사진을 보여주는 거죠. 안토니아 그라자를 인양하기 위해 배에 도착한 승무원들은 엄청난 양의 금괴와 죽은 지 얼마 되지 않은 듯한 시체들을 발견합니다. 그 뒤로 이상한 일들이 일어나며 사람들이 하나씩 죽어나가는 건 당연한 순서겠죠?
[고스트 쉽]은 비교적 괜찮게 시작합니다. 무도회의 사람들이 날아가는 케이블 한 방에 모두 두 조각나는 잔인한 도입부는 요새 영화에서 지나치게 자주 반복되는 경향이 있긴 하지만 (벡도 자신의 전작인 [13 고스트]에서 한 번 써먹은 적 있죠) 효과적입니다. 안틱 워리어의 승무원들이 로맨틱한 폐허와도 같은 안토니아 그라자에 접근하는 도입부도 간결하고 인상적이고요. 전 메리 셀레스트식 미스터리로 이야기를 끌어가는 방식도 좋았고, 예쁜 드레스를 입은 꼬마 유령 케이티도 좋았습니다.
일단 영화가 본 궤도에 오르면 이야기는 조금 따분해지기 시작합니다. 특별히 새로 할 이야기가 없기 때문이지요. 사람들은 하나씩 죽어가고 몇 명은 미칩니다. 영화 속의 초자연현상은 리메이크 버전 [더 헌팅]처럼 특수 효과를 남발하는 바람에 그렇게 무섭지는 않습니다. 그래도 여기까지는 봐줄만 했습니다. 그렇게 공포영화답지는 않아도 몇몇 특수효과는 구경거리로 좋았거든요. 대표적인 예가 폐허가 된 무도회장이 서서히 원래의 화려한 모습으로 복구되는 장면이죠. 엡스와 유령 케이티의 리플리/뉴트식 관계도 괜찮았습니다.
결정적으로 영화를 망쳐놓는 건 중반 이후부터였습니다. 미스터리를 설명하는 부분에서, 영화는 일종의 영혼 수집가라고 할 수 있는 초자연적인 악당을 등장시킵니다. 영원히 바다를 떠돌며 배 안의 사람들을 죽음으로 몰아넣는 존재의 개념 자체는 나쁘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 존재를 설명하는 방식은 형편없군요. 이런 사무적 설명은 공포 영화보다는 [천국으로 가는 계단]이나 [천국의 사도 조던]과 같은 코미디에 더 잘 어울립니다. 게다가 막판의 액션 장면은 장르의 혼선 때문에 당위성이 아주 떨어져 버렸어요.
그래도 [고스트 쉽]은 기대보다는 나은 영화였습니다. 적어도 리메이크 버전 [13 고스트]보다는 나았어요. 제가 만족할만한 괜찮은 유령선 영화를 보려면 앞으로도 한참 기다려야 하겠지만 말입니다.
기타등등
1. 줄리아나 마굴리스와 론 엘다드는 부부 사이죠.
2. 전에 어떤 분이 이 영화의 포스터와 [Death Ship] 포스터와의 유사점을 지적하셨는데, 정말 둘이 닮긴 했습니다. 표절인지, 아니면 제한된 소재를 다루면서 아이디어들이 수렴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요.
3. 로저 이버트는 어떻게 대서양에서 실종된 배가 베링해에서 발견될 수 있는지에 대해 의문을 던졌습니다. 전 안토니아 그라자가 독자적으로 북서항로를 개척했다는 데 한 표 던지겠습니다.
감독
스티브 벡 Steve Beck
주연
줄리아나 마굴리스....모린 엡스
Julianna Margulies....Maureen Epps
에밀리 브라우닝....케이티 하그로브
Emily Browning....Katie Hargrove
가브리엘 번....숀 머피
Gabriel Byrne....Sean Murphy
론 엘다드....도지
Ron Eldard....Dodge
데스몬드 헤링턴....잭 페리먼
Desmond Harrington....Jack Ferriman
이사야 워싱턴....그리어
Isaiah Washington....Greer
알렉스 디미트리어디스....산토스
Alex Dimitriades....Santos
칼 어번....먼더
Karl Urban....Munder
프란체스카 레톤디니....프란체스카
Francesca Rettondini....Francesc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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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Djuna 베일에 가려진 사이버 스페이스의 협객 듀나는 SF소설가, 씨네21 컬럼니스트 등의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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