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굳세어라 금순아]는 19세기 보드빌과 20세기 초의 스파이물에 기원을 두고 알프레드 히치콕의 [39계단]에서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 '소용돌이물' 장르에 속해 있습니다. 평범한 주인공이 괴상한 사건의 연속에 말려들어 초현실적인 모험을 한다는 이 장르의 기본 설정은 지금까지 마틴 스콜세지의 [애프터 아워/After Hours]에서부터 [러브! 퀵?]에 이르는 꽤 많은 변종들을 낳았습니다. [굳세어라 금순아]와 가장 가까운 영화는 아마 크리스 콜럼버스의 감독 데뷔작인 [Adventures in Babysitting]이 아닌가 싶군요.
영화는 부상당한 전직 배구 선수인 풋내기 가정주부 정금순이 하루밤 동안 겪는 모험을 다루고 있습니다. 술값을 못내 단란주점에 갇힌 남편을 구출하러 밤거리로 뛰어나간 금순은 우연히 조폭들의 전쟁터 한가운데로 뛰어듭니다. 물론 그러는 동안 금순은 막 출옥한 조폭 두목에서부터 포장마차 부부에 이르는 온갖 사람들을 만나며 다양한 해프닝을 겪지요.
[굳세어라 금순아]라는 노골적으로 투박한 제목만 봐도 짐작하실 수 있겠지만, 영화는 그렇게 미묘하고 세련된 작품을 의도하고 있지 않습니다. 영화가 의지하는 건 단 하나의 비주얼입니다. 결코 머리 속에 든 게 많다고 할 수 없는 젊은 여자가 갓난아기를 업고 밤거리를 뛰어다니는 광경이지요. 일차적으로 필요한 건 주인공의 단순무식함과 에너지이고 그 다음은 그 질주를 정당화할 수 있는 어처구니 없는 사건들입니다.
첫번째는 비교적 쉽게 통과할 수 있습니다. 주연 배우가 배두나니까요. 우리나라에 배두나처럼 이쁜 척 안하고 잔재주를 부리지 않으면서도 이런 식의 우직한 캐릭터를 잘 살릴 줄 아는 젊은 여자 배우들은 많지 않습니다. 이 배우의 매력이라고 할 수 있는 약간 핀트가 안 맞는 듯한 멍한 느낌도 캐릭터와 잘 맞고요.
하지만 두번째에서는 문제가 큽니다. [굳세어라 금순아]는 충분히 영화를 끌어갈 수 있을만큼 아이디어가 풍부하지 못합니다. 조폭 두목의 등장은 시작부터 진부하고 그 진부함에서 벗어날만큼 다양한 이야기를 제공하지 못합니다. 종종 등장하는 국면 전환도 그렇게 강한 편이 아니고요. 영화의 스토리는 전체적으로 밋밋하고 실제 러닝 타임보다 길게 느껴집니다. 한마디로 상상력이 모자라요.
여기에 추가되는 문제점이 하나 더 있는데, 그건 소재의 투박함을 다루는 방식입니다. 영화의 투박함이 의도적이라고 아까 말했습니다. 하지만 의도적인 투박함은 결코 투박하게 다루어서는 안됩니다. 오히려 숨은 세련됨이 필요하죠. 유감스럽게도 [굳세어라 금순아]는 그냥 투박하기만 합니다.
[굳세어라 금순아]의 기본 설정은 결코 나쁜 게 아닙니다. 하지만 이 기본 설정이 활용될 수 있는 가능성의 폭은 상당히 넓고, [굳세어라 금순아]가 택한 길은 그 중 가장 좋은 길은 아니었습니다. 심지어 가지고 있는 재료도 충분히 활용했다고 할 수 없군요. 아까 배두나의 존재감에 대해서 이야기했는데, 이 배우의 진가를 적극적으로 살린 영화라고도 하긴 어려울 것 같습니다. 이 배우의 진짜 매력을 즐기고 싶다면 [플란다스의 개]나 [고양이를 부탁해]를 다시 보는 편이 더 실속있습니다.
기타등등
1. 시사회에서 배두나는 "이제 저도 흥행을 해봐야 하지 않겠습니까?"라고 농담을 했는데, 그러고보니 정말 이 배우가 주연한 영화들 중 분명한 흥행 성공을 거두었다고 할만한 작품은 없더군요. 나이에 비해 꽤 알찬 경력인데도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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굳세어라 금순아 (2002)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