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울은 어디서나 공포의 대상입니다. 세상 어디를 가도 거울과 관련된 괴담은 있습니다. 거울과 가위바위보를 하면 가끔 여러분이 질 겁니다. 거울을 들여다보고 블러디 메리를 열세 번 부르면 무시무시한 마녀가 거울 속에서 나와 여러분의 얼굴을 뜯어갈 겁니다. 숙직실 거울 속에는 머리를 빗는 유령이 들어있습니다. 어떤 거울을 자정에 보면 자신의 죽은 모습이 비치고 그 시간에 다른 거울을 보면 거울 요괴가 여러분을 거울 속으로 잡아간 뒤 여러분 행세를 하겠지요.
여러분은 이런 이야기들을 정말 끝도 없이 늘어놓을 수 있습니다. 내용은 다르지만 기본 공식은 비슷합니다. 거울 안에는 우리가 사는 세계와 닮은 또다른 세계가 숨어 있습니다. 만약 여러분이 거울을 잘못 가지고 놀면 지금까지 유지되었던 완벽한 대칭은 깨지고 여러분의 세계는 초자연적인 혼돈 속에 빠져들 것입니다.
[거울속으로]는 그런 우리의 오랜 믿음을 적극적으로 이용하는 영화입니다. 세상에 흔한 게 거울 괴담이지만 정말 거울만을 소재로 삼은 장편 공포 영화는 많지 않으니 상당히 좋은 소재인 거죠. 사람들의 눈길을 끌만큼 새로우면서도 우리의 악몽을 자극할 정도로 보편적이니까요.
영화는 화재로 문을 닫았다가 다시 재개장하려는 백화점에서 일어난 연쇄살인사건을 다루고 있습니다. 피해자들은 모두 백화점 직원이고 다들 거울 앞에 혼자 있을 때 살해당했죠. 백화점의 보안 책임자인 우영민은 이들이 1년 전에 일어났던 화재 사건과 어떤 관련이 있고 아직도 초자연적인 기운이 백화점에 숨어 있다고 확신하게 됩니다. 사건의 유일한 단서는 백화점 주변을 떠도는 이지현이라는 정체불명의 여인이고요.
[거울속으로]의 핵심은 이미 공개된 영화 예고편에도 수록되어 있는 첫번째 살인 장면에 압축되어 있습니다. 거울 앞에 선 여자가 들고 있던 물건을 떨어뜨립니다. 그걸 집으러 고개를 숙인 여자가 문득 거울 위를 올려다 보았을 때 그녀는 거울 속의 자신이 자기를 내려다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거울 속의 이미지는 들고있던... 하여간 대칭성의 붕괴와 어긋난 복귀, 익숙한 자신의 이미지가 갑자기 타인이 되어 나타난다는 공포의 설정이 이 간결하고 우아한 살인 장면에 모두 녹아 있습니다.
유감스럽게도 영화는 도입부의 강렬함을 반복하지 못합니다. 그 뒤로도 다양하게 변주된 거울 살인들이 일어나지만 모두 첫번째 살인만은 못하고 계속 비슷한 살인들이 반복되다보니 효과가 점점 떨어지거든요. 여기서부터 관객들은 의심을 하게 됩니다. 충분히 창의적이고 훌륭한 비주얼을 보장하기도 하는 이 소재가 과연 장편 영화를 지탱할만큼 큰 것일까?
적어도 [거울속으로]가 이 소재에서 충분한 신선함을 끌어내지 못한 건 분명합니다. 거울 살인을 지워내면 이 영화는 정말 공식적이어도 이렇게 공식적일 수가 없는 형사물이거든요. 과거의 실수 때문에 괴로워하는 전직 형사와 그의 옛 동료였던 수사관, 뒤에서 숨어 모든 것들을 조종하다가 막판에 바보스럽게 나타나 장황하게 자기 범죄를 고백하는 범인과 같은 것들은 모두 형사영화 클리셰 사전에서 가져온 것이죠.
영화의 각본은 디테일면에서도 굉장히 약합니다. 특히 도식적이고 부자연스러운 대사는 심각할 정도이고(팁 하나. 영화의 대사가 얼마나 나쁜지 알려면 경력 짧은 조연배우들이 몇 번 허둥대는지 세어보면 됩니다) 이야기가 흘러가는 방식 역시 도식적이기 짝이 없습니다. 뻔한 예를 하나 들까요? 고뇌하는 주인공이 잠시 옛 동료 형사와 이야기를 나누고 떠나자 잠시 멀리서 구경하고 있던 1번 조연이 화면 안으로 들어와 친절하게 묻습니다. "아니, 지금 나간 사람은 아무개 아닙니까. 어디서 무엇하고 무엇하고 무엇하던 유명한 사람인데 왜 지금 여기서..."
그러나 [거울속으로]의 진짜 문제점은 쉽게 어울리지 못하는 두 가지 장르를 결합하면서도 충분한 노력을 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형사물과 초현실적인 공포물은 잘 맞는 장르 같지만 사실 그게 그렇지가 않습니다. 공포물과 퍼즐 미스터리는 완벽하게 궁합이 맞습니다. 에드가 앨런 포우가 백 여년 전에 증명했듯, 이 두 장르는 모두 시입니다. 하지만 현대형사물은 기본적으로 산문이란 말이에요. 이 둘을 결합시키려면 보통 이상의 노력을 들여야 합니다.
여기서 중요한 건 초현실적인 공포의 시를 이야기와 결합하는 것인데, 이 목표는 미스터리를 숨기고 산문적인 형사물의 공식을 반복하는 것만으로는 도달할 수 없는 것입니다. ([양들의 침묵]을 보세요. 사실적인 형사물의 형식을 취한 것 같아보이지만 사실은 퍼즐 미스터리에서 끌어온 추상적인 시가 절묘하게 녹아 있답니다.) 덕택에 공들인 설정과 이미지에도 불구하고 [거울속으로]는 대중심리학과 초현실적인 트릭을 빌려온 뻔한 형사물로 남게 됩니다.
배우들의 연기도 그저 그렇습니다. 점점 한석규가 되어가는 유지태야 그러려니 하고 봤지만 김명민과 김혜나는 정말 실망스럽군요. [소름]과 [꽃섬]에서 이 사람들이 보여준 연기의 반의 반도 못 따라가니 말입니다. 하지만 모두 배우 탓인지는 의심스러워요. 도식적이고 지루한 캐릭터들과 어색한 대사 때문일 가능성이 더 큽니다. 연기 지도 역시 문제가 있는 것 같고요. 배우들이 감탄사와 생략법을 어떻게 사용하는지만 봐도 감독이 연기에 얼마나 관심을 쏟고 있는 지 알 수 있죠.
[거울속으로]는 영화를 보면서 마구 이야기를 다시 쓰고 싶은 생각이 들게 만드는 영화입니다. 영화는 평범한 결과로 떨어지고 말았지만 여전히 가능성이 눈에 보이고 그걸 조금만 더 만지작거리면 정말 뭔가 나올 것 같단 말이에요.
기타등등
정몽헌 회장의 자살 뉴스를 들은 직후 이 영화의 시사회를 봤기 때문에 후반부의 투신 자살 장면이 나올 때 기분이 이상하더군요. 둘 다 12층에서 떨어져 죽었다면서요?
국가별 검색
가격대별 검색
국가별 검색
가격대별 검색
거울속으로 (2003) ★★☆ :::
적어도 [거울속으로]가 이 소재에서 충분한 신선함을 끌어내지 못한 건 분명합니다. 거울 살인을 지워내면 이 영화는 정말 공식적이어도 이렇게 공식적일 수가 없는 형사물이거든요. 과거의 실수 때문에 괴로워하는 전직 형사와 그의 옛 동료였던 수사관, 뒤에서 숨어 모든 것들을 조종하다가 막판에 바보스럽게 나타나 장황하게 자기 범죄를 고백하는 범인과 같은 것들은 모두 형사영화 클리셰 사전에서 가져온 것이죠.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