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추억 Sous le sable (2000) ★★★☆
글: Djuna
2002년 10월 2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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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소아 오종의 전작들에 익숙한 사람들에게 [사랑의 추억]은 당연하면서도 낯선 영화입니다. 그의 분위기는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 무표정하고 냉랭하면서도 성적 긴장감으로 넘치는 오종 특유의 이질적인 느낌 말입니다 (특히 그의 전작 [바다를 보라]와 여러 표현의 유사점을 공유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의 이전 영화들에서 찾아볼 수 있었던 심술궂은 악동의 작품과도 같은 느낌은 이 작품엔 없습니다. 이 영화는 50대의 중년 여성이 주인공이고 오종은 이전 영화에서 그가 거의 특기로 내세웠던 냉정한 뒤집기 따위는 시도하지 않습니다. 그는 영화가 시작할 때부터 끝날 때까지 진지하고 캐릭터에 동화되어 있습니다. [사랑의 추억]은 진지한 어른의 작품입니다.
기본 설정은 이미 위에서 설명했습니다. 우리의 주인공 마리의 세계는 남편 장이 존재하지 않은 현실과 실종된 그가 아직도 그녀와 공존하는 허상 사이에 존재합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마리가 남편의 실종에 충격을 받아 미쳐버렸다고 생각하시지는 마시길. 그녀는 여전히 영문학 교수라는 꽤 책임있는 직위를 지탱하고 있고 교우 관계도 원만합니다. 남편이 실종되었다는 사실 역시 어느 단계에서는 인식하고 있고요. 마리는 단지 남편의 부재를 인정할 수 없을 뿐입니다. 어떻게 보면 [사랑의 추억]은 빌리에 드 릴라당의 단편 [벨라]의 현대판인 셈이죠.
[사랑의 추억]에서 보여지는 마리의 다소 초현실적인 경험은 일종의 은유로서 기능합니다. 실제로 이런 입장에 있는 많은 사람들은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을 그렇게 쉽게 인정하지 않으려 하지요. 남편이 그냥 죽은 게 아니라 실종되었다는 사실도 마리를 부추키고 있습니다. 장은 슈레딩어의 고양이처럼 비존재와 존재 사이에 서있는 셈이니까요.
영화는 부정의 힘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죽음의 부정을 통해 감정의 강렬함을 끌어내고 있는 것이지요. 영화에서 정말로 중요한 건 남편의 환상이 아니라 그런 환상을 유지할 수 있게 필사적으로 노력하는 마리의 노력일 수도 있겠어요.
전체적으로 영화는 몽환적이고 조금은 귀신들린 듯 합니다. 오종이 의도적으로 감상주의와 로맨티시즘을 제거했기 때문에 그런 느낌이 더욱 크죠. 화면 속에 종종 등장하는 정갈한 빈 공간은 유령들로 가득 차 있습니다. 아파트에서 내려다 보이는 묘지, 버지니아 울프의 유언장, 반복되는 물의 이미지는 영화의 빈 공간에 차가운 에로티시즘을 채워넣습니다.
이런 오종의 스타일은 샬롯 램플링의 캐스팅에서 완벽하게 완성됩니다. 아마 특별한 일이 없다면 [사랑의 추억]은 램플링이라는 배우의 진가를 확인할 수 있는 가장 안전한 선택으로 남을 것 같습니다. 램플링은 영화처럼 차갑고 몽환적이며 아름답습니다. 오종이 그런 것처럼 램플링도 쓸데없는 오버 액션이나 감상주의로 힘을 낭비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이 배우가 가장 인상적일 때는 캐릭터가 창조한 환상 속에서 행복과 안정감에 싸여 있을 때지요. 아마 이 사람의 어쩔 수 없는 영국적 특성이 프랑스라는 배경에서 더욱 차가운 빛을 발하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사랑의 추억]은 결코 전형적인 오종 영화는 아닙니다. 적어도 지금까지는요. 하지만 그의 스타일이 그가 새로 찾은 이야기와 완벽하게 맞아떨어진다는 걸 생각해보면 불평을 늘어놓을 필요도 없을 겁니다. 하긴 그도 나이를 먹긴 해야 하니까요.
기타등등
중간에 등장하는 램플링의 젊은 시절 사진은 꽤 유명한 핀업이라, 극중 인물 마리와 배우 램플링의 경계가 잠시 흐려지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감독
프랑스와 오종 François Ozon
주연
샬롯 램플링....마리
Charlotte Rampling....Marie
브뤼노 크레메....장
Bruno Cremer....Jean
자크 놀로....뱅상
Jacques Nolot....Vincent
알렉산드라 스튜어트....아만다
Alexandra Stewart....Amand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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