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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돼지 우르릉


퀴어영화제 2000 포럼 취재기 :::


이윤형 | 2000년 10월 10일
조회 2981


'아시아인으로써 게이 필름을 찍는다는 것'이란 주제로 포럼이 열리기로 한 시간이 오후 7시였다. 고등학교 때 '기억'이라는 것에 대해 생각하다 기억이 실재 나의 삶을 왜곡한다는 생각을 하곤 '그럴 기억이라면 아예 기억을 만들지 않겠다' 라는 지금 생각하면 말도 안 되는 생각으로 학교 외에는 거의 집밖으로 나가지 않았던 나인지라 포럼장인 인사동 '대안 문화 공간 풀'이라는 곳이 너무나 낯설었다. 그래서 '씨네라인'에서도 영화에 대한 글쓰는 것만 했지 취재를 나가는 일은 없었다.

준비 상황도 보고 현장 분위기도 파악할 겸해서 6시쯤에 도착하려고 했다. 안국 역에서 내리니 6시였다. '한 6시 10분이면 도착하겠네. .' 하고 출구로 나왔는데 도저히 길을 찾을 수가 없었다. 헤매고 헤매다 삼방이 막혀있는 곳에는 찻집과 식당뿐이었다. 아. . 내가 고작 찻집들 속에 갇혀서 인사동 미아가 돼야 된단 말이냐. . 그곳을 빠져 나와 7명에게 '풀'과 가깝다는 '모 약국'을 물어봤고 4명이 대답을 해줬는데 지금에야 안 사실이지만 2명은 제대로 2명은 잘못 가르쳐줬다. 덕분에 고생 고생해서 도착한 시각이 7시 정각.

시작 전 분위기야 파악 못했다 치더라도 포럼에는 늦지 않았으니 다행이라는 심정으로 포럼 장으로 들어갔다.

'휑~~ ' (파리 날리는 소리 아님. . 사람이 별로 없을 때 느껴지는 소리)

진행 요원들 외에는 아무도 없었다. 물어보니 시간이 연기 돼 7시 30분부터 시작이 된다고 했다. 밖으로 나와 앉아있는데 진행자인 서동진씨가 바쁘게 돌아다녔다. 인터뷰야 포럼 내용에 따라서 바뀌는 것이니 그냥 가만있었다. 자리를 옮겨서 길 중간에 있는데 '웨인 융'이 왔다. 해병대 머리보다 조금 긴 머리. . 그러니까 윗 부분만 반 스포츠 머리였다. 한마디로 펑키한 헤어스타일이었다. 눈썹 끝에는 피어싱을. . 대충 분위기 파악(손잡고 오는 동성들이 얼마나 많은가를 알아보려던 게 첫 번 째 목적이었는데 기자들을 제외하고는 일반 관객이 별로 없었다.) 하고 포럼 장으로 들어갔다.

우연찮게 맨 앞자리에 앉게 됐다. '웨인 융'과 자꾸만 시선이 마주쳤다. 패널인 이송희일씨와 최소원씨가 도착하지 않아서 포럼 장을 돌아다녔다. 뭐랄까. . 크기는 보통 크기의 비디오 가게정도였고 형광등은 하나는 정육점과 화류계에서 쓰는 빨간 불빛이고 하나는 그냥 불빛이었다. 무슨 의미가 있을까. . 빨간색과 하얀색. . 조금 더 둘러 게시물들을 보고 자리에 앉았다. 웨인 융과 여전히 눈이 자주 마주쳐서 아예 그림을 그려버렸다. 수첩에 웨인 융의 얼굴을. . 대충 그리고 나니까 이송희일씨와 최소원씨가 도착했고 서동진씨는 바로 포럼의 시작을 알렸다.



서동진씨가 간단하게 포럼 주제와 패널분들의 소개를 마치고 포럼을 시작됐다. 7시 28분.

웨인 융은 자신이 영화를 만드는 이유에 대해서 간략하게 말했다.

  • 웨인 융 - 외국인들이 바라보는 왜곡 된 아시아인들의 모습이 아닌 아시아인의 시각으로 아시아인들의 모습을 바라보고 싶었다. 서구화 돼 가는 모습이 아닌 아시아인들의 개성을.

  • 이송희일씨는 실제 아시아에서 산 사람과 웨인 융처럼 (웨인 융은 캐나다에서 태어났으며 현재는 벤쿠버에서 살고 있다.) 외국에서 산 사람의 시각은 확실히 다르지 않냐는 질문을 했고 웨인 융은 그럴 수 있지만 자신이 만드는 영화는 자신의 시각으로 보는 것이라고 말했다.

  • 최소원씨는 '10만원 비디오 영화제'의 머리답게 캐나다의 퀴어 비디오 현황에 대해 질문했다. 그 질문에는 예상대로 캐나다는 우리와는 다른 '괜찮은' 시스템을 갖고 있다고 했다.

    캐나다에서는 국가적으로 저예산 비디오를 만들 수 있게 조금의 자금과 기자재를 제공해 준다고.. 자신도 거기서부터 시작했다고 했다. 그리고 그 센터에서 하는 대표적인 일은 소외받은 계층의 아티스트들을 도와주는 일이라고 했다.

    그 외 이야기들은 웨인 융 개인적인 시각과 독립 영화 감독인 이송희일씨의 한국의 제작 여건의 어려움 들이었다. 그 즈음에 나는 수첩을 덮고 그저 이야기를 듣기만 했다. 다들 노트에 열심히 적고 또 녹음을 하길래 그냥.. 그래서 수첩을 덮어버렸다.

    웨인 융과 패널들의 이야기가 대충 끝나자 이송희일씨는 관객들에게 질문을 받으면서 중간 점검을 하겠다고 했다.

  • 어떤 사람이 능숙한 영어로 웨인 융에게 질문을 했다. 괜히 번거로운 짓이었지만 (물론 거기에 있는 사람들은 나 빼고 거의 다 영어를 잘 하는 사람들이었다.) 이쪽 분야에서 유명한 감독과 제대로 대화를 나눈다는 게 얼마나 좋은 추억이겠는가.. 아무튼 나의 무식함을 한탄하며 통역사의 번역을 들은 결과 그가 질문한 것은 한국 게이 필름들이 자살 등으로 마무리를 짓는 어두운 형식이라는 이야기를 했다. 이에 웨인 융의 대답이 얼마나 그 분야에 생각이 많은지를 알 수 있게 했다.

  • 웨인 융 - 자살등의 어두운 면은 한국이 가지고 있는 특수성이다. 혹은 이성애자인 감독의 시각으로 볼 때 그들은 마땅히 죽어야 할 사람들이라고 판단을 하는 것일 수도 있다. 그것이 개이 영화를 개이가 만들어야 하는 이유 중의 하나다.

    그 외의 질문들은 퀴어 영화들이 대부분의 포르노처럼 여성의 몸을 상품화 하고 있다는 질문이었고 그 말은 파워풀함 (통역사의 말에 따르면)은 몸매가 좋은 사람이 갖고 있냐는 것이었다. 그 질문에도 역시 웨인 융은 '개인적인 시각'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갔다.

  • 최소원씨는 웨인 융의 영화는 다 섹스로 이야기가 흘러가고 있는데 그 이유는 무엇인지 물었고 큰 이야기로 퀴어 영화의 범주는 얼만큼인지.. 정의가 무엇인지를 물었다.

  • 웨인 융 - 서양인들은 아시아인들에게 섹시함을 느끼지 못한다. 아시아인들은 섹스를 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나는 그것을 깨고 싶었다. 그리고 영화는 정책이나 선전이 아니라 즐거움을 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것을 통해서 무언가를 느끼면 그것이 더 좋을 것이다. 다시 말해 영화는 기본적으로 즐거워야하며 관객에게 서비스를 해야 한다. 그리고 내가 생각하는 퀴어 영화는 동성애 관객들이 좋아하는 영화이다. 전에 퀴어 영화제에서 <오즈의 마법사>를 상영한 적이 있는데 동성애자들이 좋아했다. 그러면 그 영화는 퀴어 영화로 해석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니까 관객의 읽힘에 의해 좌우된다고 생각한다.

    거의 이 질문을 마지막으로 포럼을 마쳤다. 어떤 관객이 웨인 융 감독 영화의 모호성에 대해서 얘기를 했는데 안타깝게도 필자가 그 영화를 보지 못한 터라 그 이야기를 100% 기술하지 못하느니 왜곡을 할 가능성이 높아 아예 빼버렸다.

    웨인 융 감독은 느리지만 논리 있게 (영어를 못 알아들어 모르겠지만 통역사가 있는 그대로 통역했다면 논리 있었다.) 자신의 생각을 말했다. 패널로 초청된 이송희일씨와 최소원씨는 많은 말을 하지는 않았지만 전문가적 입장에서 관객에게 짚어줄 것을 질문함으로써 흐름 조율을 했다.

    포럼에 참석하기 전과 후가 달라지진 않았다. 항상 생각했듯 그들 역시 그저 같은 사람들이고 이성애자의 시각으로 동성애를 욕할 수 없을 만큼 평범한 사람들이었다.

    지금의 '정상적인 시각(?)'으로써는 동성애를 '다른 것' 취급한다. 하지만 그것은 어떠한 기준이 없는 '사랑'이라는 것의 특성을 무시한 것이다. 사랑은 감정으로 판단을 하는 것이며 태어나면서부터 이성을 좋아하란 법은 없는 것이다. 물론 사회적 분위기에 휩쓸려 자신의 성 정체성을 잃어버리는 사람도 있다. 그런 시각으로 본다면 양성애자는 그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는 사람으로밖에 보이지 않겠지만 문제는 '사랑'이다. 사랑은 감정으로 하는 게 아닌가.






  • 이윤형
    전 '리버스' 편집기자. 현 '씨네라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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