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fter the Day Before...영화적인 언어란 무엇인가

영화제 소식

After the Day Before...영화적인 언어란 무엇인가 :::

곽은주 | 2004년 10월 1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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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 After the Day Before : 악몽의 단편들 : 부산국제영화제 제공>

가을 빛이 아름답게 익어가는 10일 일요일 오후, 영화의거리 남포동은 영화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즐거운 함성으로 풍요로웠다.
다음 상영관으로 극장을 옮겨다니기조차 힘들 정도로 사람과 사람들에 어깨가 부딛치며 밀려다니는 곤욕도 이곳 남포동에서 만이 맛 볼 수 있는 한 즐거움이리.
축제 분위기로 흥겨운 남포동 거리와는 사뭇 다르게 해운대 메가박스밖 풍경은 이곳이 영화제가 열리는 곳이 맞나싶게 한산하기 조차하다. 날 봐주세요, 손짓하며 길게 늘어선 상영작 포스터만이 거센 바닷 바람을 막아 줄 뿐. 이벤트 행사를 위해 설치한 상설무대는 주로 밤에 행사가 있고 낮 시간엔 거의 낮잠 중이다. 그래도 커다란 포스터를 배경으로 기념 사진 박는 무리들의 재잘거림이 있어 바라보는 이들을 잠시 즐겁게 한다.
설렁한 극장밖 풍경과는 대조적으로 극장안 풍경은 활기차다. 10개관이 한층에 나란히 마주하고 있어 극장 로비는 상영관을 옮겨 다니는 발 걸음으로 늘 분주하다.
특히 올해는 몇몇 관에서 오후 10시에도 영화가 상영돼, 열혈 영화팬들은 늦은 밤까지 극장을 못 떠나고 있다.

그 중, 10일 오후 10시에 상영된 <악몽의 단편들>은 감독과의 대화 시간도 마련돼 있어 늦은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일반매진 됄 정도로 관객의 관심을 끌었던 영화.
영어 제목이 After the Day Before 인 아틸라 야니시 감독의<악몽의 단편들>은 이번에 초청된 단 2편의 헝가리 영화 중에 한편으로 비평가들이 선정한 `크리틱스 초이스' 섹션에 소개된 작품.
제목이 암시하듯, 사건이 발생한 날의 전, 후를 `하늘', `먼지', `바람', `길' 등의 부제로 현실과 꿈, 현재를 중심으로 해서 본 과거와 미래, 미래와 과거를 오가며 한 마을을 중심으로 일어난 살인 사건을 매우 철학적이고 사색적으로 그려낸 영화다.

감독은 영화를 만들 때, 영화적인 언어란 무엇인가?를 항상 가장 깊이 생각하고 고민한다고 한다. 그래서 직접적인 말로 표현하지 않고 영화적인 언어인 `이미지'로 말하고자 하며 이 영화도 이야기 중심이 아닌 이미지 중심의 영화라 보는 이들이 지루할 수 있지만, 영화가 완성된 순간 영화는 온전히 관객의 것이라며, 자신이 보고 느끼는 대로 느끼는 것이 가장 좋은 영화 감상법이라고 관객을 배려하는 겸손함을 보였다.
다른 영화제에 출품했을 때 이 영화를 보고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의 작품들과 비슷하다는 말을 들었었다고 한다.
그러나 본인은 워낙 여러 감독들의 작품을 많이 봤기 때문에 어느 특정한 감독에게 영향을 직접적으로 받았다기 본단, 여러 감독들의 영향을 잠재적으로 받았다고 생각한다고.
헝가리 각지역에서 일어 났던 실제 사건들을 바탕으로 시나리오를 썼으며 허구라기보단 실제 상황에서도 충분히 일어 날 수 있는 사건을 단지 영화적 언어인 `이미지'로 표현해 보고 싶었고 그래서 이미지를 중심에 두고 사건을 풀어 나갔다고 한다.

영화 음악도 무척 이미지적이다. 카톨릭 신자가 아니더라도 한 두번은 들어 봄직한 중세 종교음악의 선율이 가슴 깊은 곳에 잠들어 있는 영혼을 흔들어 깨운다. 간결한 선율은 알 수 없는 미궁에 빠진 듯 홀린 듯, 몽환적으로 영화 이미지와 절묘하게 조화를 이룬다.
한국어 제목이 <악몽의 단편들>이라 단편 모음인줄 알았다는 관객이 있듯이 한국어 제목은 영화 주제나 이미지와는 거리감이 있어 차라리 After the Day Before을 직역한 그자체, <그날의 과거와 미래> 혹은 <그 사건의 전과 후>로 부치는 것이 영화의 의미 전달에 더 적절하지 않았나싶다.

만약, 당신이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소개됐던 헝가리 감독 벨라 타르의 <사탄 탱고>나, <베크마이스터 하모니즈>를 보고 긴 롱테크로 집요하게 좇아가는 이미지에 매료 당했었다면, 만약 당신이 알렉산더 소쿠로프의 이미지 영화들을 좋아한다면, 그들의 영화가 그립다면, After the Day Before는 그 목마른 갈증에 샘물이 될 것이다. <사탄 탱고>와 촬영 감독이 동일인이란다.

10월 12일 오후 5시 대영 시네마에서 마지막 상영을 남겨놓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