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국제영화제- 나는, 행복합니다

영화제 소식

부산국제영화제- 나는, 행복합니다 :::

곽은주 | 2008년 10월 1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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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길 수 없는 약속처럼 나는 올해도 부산에 내려왔다.

영화제의 열기가 한 김 빠져나간 폐막을 3일 남겨 놓은 10월 7일 내려와서 3일 낮과 밤을 숨차게 보냈다. 이제 날이 밝으면 내년을 기약하며 일상으로 돌아 갈 것이다.

영화제를 떠나는 마지막 날은 의례 잠 못 들고 해운대 바닷가를 서성이게 된다.

안나 카리나 마스터클래스

오늘은 바다도 깊이 잠 못 들고 뒤척이는 밤이다. 파도가 토해내는 거친 숨소리조차 다정하여 어둠 속 바다를 하염없이 바라본다. 돌이켜 보니 상영관이 해운대로 이동하면서부터 매년 부산에서의 마지막 밤은 늘 초롱한 눈으로 새벽을 기다리며 일출을 맞이했던 것 같다. 하루쯤 뜬 눈으로 바다를 깊이 바라보며 일출을 기다리는 밤도 부산에서만이 누릴 수 있는 행복이리.

내려 온 첫날 오로지 덴마크 영화라는 단 하나의 이유에 끌려서 헨리크 루벤겐츠 감독의 <무서운 행복>을 봤고 이튼 날은 배우 안나 카리나의 마스터 클래스를 듣기 위해서 그녀의 연출작인 <빅토리아>를, 그리고 영화제의 꽃인 뉴커런츠 경쟁부분에 출품한 인도 영화인 라제쉬 세라 감독의 <노인의 바다>를 봤다.

삼일 째인 어제는 폐막작인 윤종찬 감독의 <나는 행복 합니다>와 왕가위 감독의 1994년 작인 <동사서독>의 재편집 본인 <동사서독 디럭스>를 봤다.

<무서운 행복>은 기대 이상은 아니었지만 남자 조연 배우가 관객과의 대화 시간에 참석하여 영화에 대한 이런저런 뒷이야기 들을 들려줘서 덴마크 시골 지방의 한 일면을 엿볼 수 있었다.

<빅토리아>도 음악은 감미롭게 귀에 감기는데 영화적인 감칠맛은 없는 평이한 영화였다.

하지만 배우로서의 안나 카리나는 여전히 아름다움으로 우리의 시선을 고정시키는 흡인력을 갖고 있었다.

장 뤽 고다르 감독조차도 그녀의 파란 눈의 매혹에 빨려 들지 않았던가

이번 영화제에서 발견한 보석은 단연 라제쉬 세라 감독의 <노인의 바다>다

감독의 장편 데뷰 작인 <노인의 바다>는 2008년도 아시아독립영화후반작업 지원 작이기도 해서 더욱 눈길이 가는 영화다. 가능성 있는 아시아의 젊은 감독들에게 재정적인 지원에 길을 열어 줘서 작가적 역량을 발휘 할 수 있도록 후원 할 만큼 부산 영화제의 위상과 권위가 단단해졌다는 것이 기쁘다.

영화는 2004년 동남아와 서아시아를 강타한 쓰나미 이후에 인도의 외딴 섬지역의 돌아오지 않는 어린이를 기다리는 한 교사의 치유되지 못한 상처를 담고 있다. 치유되지 못한 상처는 과거의 행복했던 순간들을 기억하며 그 기억들로 위로 받으며 하루하루를 견뎌내는 모습을 가감 없이 보여준다. 자연을 다스리고 정복하는 인간의 모습이 아니라 거대한 자연의 힘 앞에서 무력할 수밖에 없는 무능한 인간의 모습이 자연과 신에 대한 외경심으로 표현된다.

일 년에 7천여 편에 영화가 만들어지는 인도에서조차 독립영화 작업이 쉽지 않다는 감독의 말은 많은 것을 시사 한다. 영화가 산업으로만 치달려 가면 예술로서의 영화의 입지가 그만큼 어렵다는 말일 것이다. 내친김에 <노인의 바다>가 뉴커런츠 상을 받기를 바라며 앞으로 감독의 행보가 기대된다. 감독의 예술적 재능이 순금처럼 빛나길 기원한다.

살다보면 세월이 지나고 난 후에야 그 지난 시간의 무게만큼 깨닫게 되는 것들이 있다.

사랑도 그 사랑이 지나가고 난 후에 비로써 사랑을 알게 되는 것처럼.

좋은 시절을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하지 못한 것을 깨닫게 된 후 깊은 회한으로 세월을 보낸 <동사서독>의 여주인공처럼.

오랜 세월이 지났어도 안나 카리나가 고다르감독의 이야기를 들려 줄 때 그녀의 바다 같은 파란 눈을 사랑한 고다르가 그녀의 마음에 파릇하게 살아 있는 것처럼.

영화제의 참맛을 즐길 줄 아는 피프 환자들은 오늘밤 아마도 나처럼 깊이 잠들지 못하리라.

영화제가 있어서 나는 , 우리는 행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