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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제 소식


서울영화제 감상문 ㅡ 영화야, 안녕? :::


곽은주 | 2006년 09월 12일
조회 4629


















<테라야마 슈지 : 미궁담 >

가을이, 한창 익는다.
속살 보드라운 한낮의 햇살에 아직 덜 영근 풋사과는 제 살갗을 붉게 붉히며 익어가는 시간이다.
가을빛에 사과가 농익어 가듯, 탑골 공원 어디쯤에 누워 순정한 가을 햇살을 온전히 누리고 싶다. 사과처럼 동글하게.

서울아트시네마와 스폰지 하우스를 종종 걸음으로 오고가며, 이 거리가 이렇게 흥분되고 즐거웠던 때가 있었나싶게 즐거운 주말이었다.
개막작 누리 빌게 세일란 감독의<기후>를 시작으로 테라야마 슈지 감독의 <책을 버리고 거리로 나가자>와 <안녕 하코부네>, 돈 앨런 펜베이커 감독의 <뒤돌아보지 마라>, 에른스트 홀저 감독의 <불타는 집>, 소피 피엔스 감독의<지젝의 기묘한 영화강의>등 6편을 금, 토, 일요일 3일을 연일 낑낑거리며 서울 올라 다니며 봤다. 아으, 서울 시민은 복 받은 사람들.

누리 빌게 세일란 감독의 <기후>는 전작인 <우작>과 별반 다른 색깔을 띠고 있지 않다. 그 대상이 동성에서 이성으로 옮겨 간 것 외엔. 이번 작품에서도 감독은 나와 타인과의 관계 맺기ㅡ 소통의 문제에 끈덕지게 집착한다. 또한 감독은 ㅡ 잊지 마시라, 나는 사진 작가야! 라고 관객에게 말하듯, 시원하게 뽑아낸 영상은 잘 박은 풍경 사진처럼 두 눈에 박힌다. 영화음악도 넘침이 없이 적절하다. 감정의 낭비가 없다는 얘기. 아, 그는 탁월한 미적 감식가! 그가 보여주는 세계로 눈보라처럼 빨려든다 ㅡ소통하지 못하는 은밀한 고통에, 그 미세한 떨림에 귀 기울인다. 들리는가, 그대 향한 은밀한 사랑이.



< 테라야마 슈지 : 토마토 케찹 황제 >

스리랑카 비묵티 자야순다라 감독의 <버려진 땅>을 포기하고 본, 테라야마 슈지 감독의<책을 버리고 거리로 나가자>.
역시 올해 서울영화제의 야심적인 기획작다웠다.

작품이 눈부시다. 1971년작. 일본 젊은이들이 프랑스 68 시민혁명에 고무되던 시기. 혁명을 꿈꾸지만, 현실은 늘 우리를 배반하듯, 무력한 익명의 군상으로만 겨우 존재하는 남루한 인생들에 비루한 일상들을 감독은 건조하게 응시한다. 영화 속 배경도 일본의 1970년의 한 시절이다. 격변의 시대, 상실의 시대ㅡ 그만큼 영화는 국가에 대해, 사회에 대해, 가족에 대해, 개인에 대해, 문화에 대해ㅡ 영화에 대해서조차 냉소적이다.
<책을 버리고 거리로 나가자> 영화의 이미지를 글로 표현하자면, 아마도 이럴 것이다

“우리는 유대도 없고 깊이도 없는 세대다. 우리의 깊이는 나락이다. 우리는 행복도 없고, 고향도 없고 그리고 이별도 없는 세대다. 우리의 태양은 희미하고, 우리의 사랑은 잔인하며, 우리의 젊음엔 젊음이 없다. 그리고 우리는 한계도, 주저함도 없고 보호받지도 못하는 세대다. 유년 상태의 보호 울타리에서 쫓겨나, 이 세상으로 내팽개쳐진 우리들. 쫓겨나 있다 하여 우리를 경멸하는 사람들은 우리에게 이런 세상을 마련해놓고 있다 "

ㅡ 볼프강 보르헤르트의 < 이별 없는 세대 중 발췌... 전문을 다 옮기지 못해 심히 아쉽다. 길지 않은 글이니, 궁금진 분은 꼭 챙겨 읽으시라. 절절히 박히는 그 무엇이, 당신을 한동안 먹먹하게 할 것이다. >

일본에 이런 멋진 감독이 숨어 있었다니, 그에 짧은 생애를 애도한다. 감독의 부재가 사무친다( 1935년생. 1983년 47세 나이로 생에 마침표를 찍음).
감독은 영화여, 안녕! 하고, 작별을 고하며 영화를 끝맺지만
나는 영화야, 안녕? 하고 첫 만남에 인사를 나눈다.
나는, 환한 실루엣을 만들며 스크린 속으로 뚜벅뚜벅 걸. 어. 간. 다. 첫사랑에 울렁거림으로 스크린으로 걸어간다.

이번에 상영되는 그에 모든 작품을 다 챙겨 볼 수 있다면, 당신은 축복 받은 사람.
13일 수요일 3시에 시네코아V 관에서 열리는 <테라야마 슈지 포럼>을 떨리는 마음으로 기다린다.
12일 4시 <테라야마 슈지 : 실험2>, 13일 2시 <테라야마 슈지 : 실험1>, 9시<안녕 하코네부>, 14일 2시 <테라야마 슈지 : 실험2 GV >, 6시 <복서 GV >, 15일 2시 <토마토케찹 황제 GV>, 4시 <상하이 이인창관 GV>, 폐막날인 17일 10시 30분에 < 책을 버리고 거리로 나가자 GV>가
앞으로 상영된다.

그 외 알렉산더 소쿠로프 감독의 <더 선>, 장 클로드 브리소 감독의 <죽음의 천사>를 즐겁게 기다리며, 오늘도 서울영화제로 향한다.

영화제는 17일 일요일까지 계속된다( www.senef.net )









곽은주
1960년생. 젊음의 끝, 나이 마흔에 뒤늦게 영화 바람난 못말리는 영화 중독증 환자. 그 여자 오늘도 빨간 배낭 둘러메고 시사회장을 기웃거린다. 영화의 참맛 그대는 아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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