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용] 락 발레 Being I, II

제2채널

[무용] 락 발레 Being I, II :::

성재원 | 2002년 08월 2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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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과 몸짓만으로 이루어진 작품에 낯설기에 공연에 대한 감상을 정리하기가 망설여진다. 무용의 상이한 역동성과 그로부터 배어나오는 분위기, 표정, 배경음악의 흐름을 좇아 주제를 어느 정도 파악할 수 있다. 하지만 영화나 연극 같은 서사극에 중독된 나로서는 보다 쉽게 내용을 전달해주는 장치가 없는지 눈과 귀의 안테나를 최대한 곧추세울 수 밖에 없었다. 애석하게도 눈으로 감지하는 배우들의 몸 동작은 일련의 암호처럼 읽혀지지 않은 고대 이집트의 그림문자처럼 흘러가고 만다. 그나마 나의 귀를 자극하는 여러 음악의 가사에 희망을 걸어보지만 오호 통재라 죄다 영어뿐이니.. 한국의 락씬은 다 사멸했나? -.-;; 꽝꽝거리는 스피커의 울림이 앉아있는 좌석의 울림으로 전이되며 읽고 싶어하는 욕구를 계속 자극했다.

단발머리의 여성보다 긴 생머리의 여성이 더 매력적으로 보이고 시선을 강하게 유혹하는 것은 그 머리카락의 움직임에서 느껴지는 에너지의 강도가 길이에 비례하기 때문이다. 무용에서도 마찬가지다. 아담한 배우보다 쭉쭉 빠진 배우의 몸에 시선이 자주 간다. 아무리 봐도 시원시원하고 호쾌하다. 또한 비중 있는 역을 맡은 배우는 청바지와 티를 입은 다른 배우들과는 달리 통이 조금은 크고, 얇은 천의 바지를 입고 상의는 티 위에 롱 코트나 그와 비슷한 겉옷을 더 걸쳤다. 손발의 움직임에 작은 시간차를 두고서 나풀거리는 의상이 다른 배우들의 몸짓과 비교되어 그 움직임의 폭과 감성을 2배, 3배로 확장해주는 것이다. 그러나 2부의 주인공역을 맡은 남자배우는 그런 의상의 도움을 받지 않고 오로지 자신의 몸으로만 연기한다. 찢어진 청바지와 벗겨진 상체는 관객의 시선에 그대로 노출된다. 오호.. 그런데 긴 곱슬머리가 공연이 무르익어감에 따라 배우의 몸에서 흘러나온 땀에 젖었을 때 그의 무용에 강한 악센트를 준다. 머리회전의 강약에 맞추어 공중으로 발산되는 땀방울이 주는 미묘한 쾌감이 그럴 듯하다.

공연은 힘찬 락음악과 강한 무용이 지배적이지만, 중간중간 고요한 장면과 절제된 무용으로 극의 흐름을 조율한다. Being I, Being II 에서 각각 한 번씩 나오는 고요하고 성스러운 장면이 있다. 물론 배경음악도 조용하기 그지 없다. 이 파트에선 소수의 배우들만이 춤으로 연기하는데 사실 이런 곳에서 배우들은 자신들의 내공의 실체를 적나라하게 드러내게 되는 것이 아닐까? 영화나 연극에서도 강한 분노, 기쁨을 표현하는 외향적인 연기보다는 내밀한 감정연기에서 그 배우의 수준을 가늠할 수 있듯이 말이다. 위에서 언급한 의상 도우미도 섬세하게 배려되어야 할 테고.. 아니나 다를까 고전적인 무용을 선보이는 여배우의 섬세한 동선은 긴 드레스의 여유로운 나풀거림으로 한결 부드러우면서 넓은 무대공간을 충일하게 한다. 반면 오직 상대역의 움직임은 꾸밈없는 몸짓으로 대조적인 아름다움을 선보인다. 위 장면들과는 달리 전체 공연 중에서 유일하게 의상 도우미없이 몸으로만 연기하는 장면이 있다. 2부에서 주인공이 마약을 하고 방황을 하면서 모 여성과 사랑을 나누는 장면이다. 대각선 형태로 대칭을 이루며 서있는 4명의 배우가 그 넓은 무대를 꽉 채우고 만다. 주인공 상대역의 여성은 선이 그대로 드러나는 타이트한 옷을 입고 주인공과 에로틱한 무용을 해낸다. 아찔하다. 그들의 에로티즘은 관능적이라기보다 처연하다. 성적인 에너지가 슬픔으로 용해되고 서로간의 이해로 나아가 육체의 결합으로 완성된다.

젊은이들의 이야기를 다루는데 락음악보다 적당한 것이 또 있을까? 그런데 락씬에서 볼 수 있는 그런 자유분방한 에너지를 느끼기엔 미흡한 감이 있다. 락은 기본적으로 기성이라는 이름의 제반 모든 것에 대한 저항이라고 규정한다면 [락발레]라는 다분히 변증법적인 공연 타이틀은 상당한 위험을 내포한다. 발레에서 느껴지는 고전적인 완고한 형식미와 락의 저항성, 자유로움 사이에는 너무나 큰 간격이 존재한다. 그런 간격의 골을 조화시키는 무용을 보고자 하는 것이 자그마한 기대였는데 그것은 만약 충족된다면 다수의 배우들이 하는 집단적인 무용에서 볼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부조화의 느낌이 강하다. 강한 비트의 음악이 스피커와 객석을 사정없이 울리게 하지만 배우들의 무용은 락음악의 스타일과는 어울리지 않는 느낌이다. 고전무용보다는 다분히 강하고 역동적이며 비교적 자유로워 보이지만 쩌렁 쩌렁 울려대는 락음악의 주파수가 그 움직임들과 공명하고 있는지 의심스럽다. 고전무용, 발레를 거의 보지 못한 나의 일천한 문화수준에서 나의 이런 감상의 근거를 찾을 수도 있다. 그러나 적어도 내가 경험한 락씬에서의 폭발적인 경험에서 본다면 좀더 파격적인 형태의 안무가 기획되었어야 하지 않을까? 어떤 면에서는 이전에 보았던 [리허설]과 같은 뮤지컬을 보는 듯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