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채널

[루나자에서 춤을] 시골 한 가족의 비극적인 몰락


글: 이종열
2002년 09월 30일

[루나자에서 춤을(Dancing at Lughnasa)](상명대 소극장, 2002.9.20-10.13, 하일오 연출)은 시골 한 가정의 비극적인 몰락을 담담히 응시하고 있는 작품이다. 산사에 추엽 쌓이듯, 새벽강 이슬 내리듯 연극은 극적 드라마도, 관객에의 서비스도 없이 자신의 걸음을 걷는다. 생각해 둔 길이 있다며 바로 걷는 그 걸음이 마음에 들어 3시간에 이르는 공연에 기꺼이 함께 했다. 더러의 관객은 1막이 끝난 후 사라졌지만 끝까지 남아있던 이들은 슬픔 한 웅큼, 희망 한 웅큼 챙겼으리라.

연극보다는 영화를 더 많이 본 터라 [루나자에서 춤을]을 보며 가와세 나오미의 <수자쿠>를 떠올렸다. 한 가족의 몰락을 일상의 시선으로 담아낸 연극은 조용히 지워져 가는 한 가족을 다큐적으로 담아낸 영화 <수자쿠>와 혼결이 닮았던 것이다. 그 때문에 반가웠고 환기되는 슬픔의 화학작용으로 인해 마음이 아팠다.

[루나자에서 춤을]은 1936년 격동기 아일랜드의 한 읍내, 거기서도 그 외곽이 배경이다. 이곳에는 5명의 자매(케이트, 매기, 아그네스, 로즈, 크리스)가 미혼인 채로 오빠, 조카와 한 집에서 살고 있다. 떠들썩할 것 같은 집이지만 조용하고 아무 것도 일어날 것 같지 않은 집이지만 균열은 어디에나 있기 마련. 구성원들의 내부적 균열과 산업화라는 외부적 균열은 함께 있던 사람들을 흩어지게 만든다.

청년이 된 마이클의 회상구조로 진행되는 [루나자에서 춤을]은 가족이 함께 했던 때의 일상의 행복과 슬픔을 모두 응시하며 끝내는 미소를 그려 보인다. 만나고 헤어지고, 헤어져서 회고하는 우리 내 삶의 '달콤한 슬픔'이 그 미소에는 진솔하게 묻어나 있다.

이 좋은 연극을 마련한 이는 기주봉(극단 76단 대표)이다. 그는 <소름>이라는데 영화에서 작가 역으로 출연해 소름끼치는 연기를 보여준 바 있는데 이번 연극에서도 가족의 균열을 일으키는 원인 중의 하나가 되는 오빠 역으로 출연하고 있다. 교체출연이라 보고싶던 그와의 만남은 성사되지 않았지만 성홍일의 연기도 워낙 좋아서 아쉬움은 없다.

추석을 즈음해, 가족의 소중함을 되새겨 준 <루나자에서 춤을> 모든 관계자들에게 감사드린다. 더군다나 이 연극은 3시간 짜리, 사실주의계 연극이다. 배려보다는 '작품' 속으로 보다 들어간 극이기에 관객과의 조우가 쉽지 않았을 텐데 그렇게 해주어서 고맙다. 그 진심을 읽은 이 많을 것이니 앞으로도 수고를 부탁하고 싶다. [★★★★]

※ 덧붙임

1. 마이클 역을 맡은 백익남 님께 존경과 박수를 더 보낸다. 지난 시절을 회고하는 길고 많은 나레이션에 씁쓸함, 안타까움, 행복함 등의 다감정이 고스란히 담겨져 있었다. 그리고 뜨거운 조명 때문에 흐르는 땀으로 감정 잡기 힘들었을텐데도 진심이 담긴 눈물까지 흘려서 엄청 감동 받았다.

2. 바람둥이지만 침체되어 있는 가족에 활력을 불어넣는 게리 역을 맡은 홍성춘의 연기도 인상적이었다. "와우"라는 감탄사를 연발해 재미있었는데 그는 가만히 보면 신화의 김동완을 닮았다. 귀여웠다.



This article is from http://www.cinelin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