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채널

뮤지컬 [아가씨와 건달들]


글: 성재원
2002년 05월 01일

가야금, 단소, 트럼펫, 피아노, 오카리나 등등.. 전 세계 수많은 악기들은 저마다 독특한 소리를 자랑하지만, 인간의 목소리에 견줄 수 있을까? 악보나 연주자에 따라 그 소리의 느낌이 다양하게 세분화될 수 있겠지만, 똑같은 악보를 두고 소리를 낸다면 사람이 낼 수 있는 그 변화의 폭을 악기는 따라갈 수가 없을 테다. 한 사람이 하나의 악보를 두고서도 슬프게, 기쁘게, 처량하게, 구슬프게, 힘차게 얼마든지 즉석에서 기분에 따라 다양하게 변주를 해낼 수 있으니 말이다.

전체적인 평점을 한다면 최하의 점수를 줄 수 밖에 없는 뮤지컬 [아가씨와 건달들]이지만 아들레이드를 연기한 나현희씨를 보면서 인간의 목소리가 주는 놀라움을 느꼈다. 나현희씨를 TV에서 본지가 한 십여 년은 된 것 같은데, 그 목소리의 분위기는 잊지 않았다. 조금은 성숙하면서도 하이톤의 느낌이 났었는데 설마 애교 넘치는 아들레이드를 연기한 사람이 나현희씨라고는 생각하지도 못했다. 문제의 아들레이드는 내내 약간 비음이 가미된 살가운 목소리로 말하고 노래를 했다. 다른 배우들의 연기가 무료하여 눈꺼풀이 내려가다가도 아들레이드가 나오면 순식간에 그 끼와 윤기 있는 목소리에 매료되고 만 것이다.

뮤지컬 [아가씨와 건달들]의 여배우 2명은 명암이 극명하게 엇갈리고 있다. 사람의 목소리는 때로는 의외의 즐거움을 주기도 하지만, 실망을 주기도 한다. 뮤지컬 배우들은 오페라 배우들과는 다른 발성법으로 노래를 하는 것으로 안다. 그런데 극에서 사라역을 맏은 정애리씨는 유독 성악을 하는 듯이 노래를 하는 것이다. 물론 그녀의 배역이 성스러운 구세군이었기에 그런 배려를 했을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음이 무척 불안정하여 듣기가 불편했으며 다른 배우들과 합창을 할 때도 조화를 이루지 못하고 있었다.

뮤지컬을 왜 보는 것일까? 이 물음에 대한 답은 뮤지컬 [아가씨와 건달들]의 실패에 대한 원인을 말해준다. 특별히 복잡한 내러티브를 구사하기에 부적합한 예술이기에 비교적 단순한 이야기를 풍성한 노래와 춤으로 볼거리로 보충한다. 합창과 중창, 듀엣 송등 다양한 노래 부르기는 이야기의 흐름과 맞물려서 그 감상을 상당히 폭넓게 조율할 수 있으며 배우들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에네르기는 말로는 형용할 수 없는 감동을 전달해주기도 한다. 특히나 군무가 주는 스케일이 그렇다.

하지만 뮤지컬 [아가씨와 건달들]은 이야기의 빈약함을 커버해주는 춤과 노래가 미약했다. 그나마 나현희씨가 분한 아들레이드만이 홀로 고군분투했는데, 2시간이 넘는 공연에서 한 사람이 감당하기엔 무리가 있을 수 밖에.. 게다가 코믹한 설정은 웃음을 억지 유발하는 감이 있었고, 설상가상으로 음향시설은 배우들의 대사와 노래를 무심하게 공중분해시켜버렸다. 젊은 나였기에 50%정도라도 들었지 나이 드신 분들은 귀를 기울이느라 고생 좀 했을 것이다. 기대를 많이 한 작품이었는데, 너무나 실망했다.



This article is from http://www.cinelin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