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채널

연극 [싸이코스]


글: 성재원
2002년 04월 19일

누런 하늘 아래서 연신 황사를 눈물로 씻어내며 깜빡거려야 하는 요 며칠간, 맑은 하늘과 그 속에서 빛을 발하는 태양이 그렇게 보고만 싶어진다. 일반적인 사람들은 아마도 모두 같은 심정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삶에서 받은 깊은 상처로 고통하는 사람들에게는 황사판인 하늘, 비바람과 천둥이 몰아치는 광폭한 하늘이 오히려 포근하고 아늑하다. 악천후야 말로 현실의 객관적인 반영이다. 자신의 감당할 수 없는 감정의 혼란에도 불구하고 높은 하늘에서 따스함을 퍼뜨리는 태양은 그들에겐 오히려 극도의 잔인함이다. 이런 특별한 상태의 개인과 아름다운 태양과의 적대적 관계는 광인의 내면에도 존재한다. 그래서 광인은 태양을 없애려고 한다. 혼신을 다해 만든 날개를 달고 촛농의 뜨거움을 이겨내며 죽여버릴 태양을 향해 도약한다.

군사제도는 참 비인간적인 제도이다. 폭력을 기반으로 한다. 살인을 공공연히 요구하고 가장 효율적인 살인 기술을 훈련하는 이해되지 않는 제도이다. 분단 상황에서 군대라 함은 필요악이겠지만 인간의 존엄성, 생명에 대한 경외감을 갖는 사람들이 겪는 군대문화는 그래도 충격적일 수 밖에 없다. 폭력문화에 대한 반응은 대충 3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 강인한 인내력으로 순응하던가, 아니면 잔꾀를 부려 그 올가미로부터 도망하던가, 이도저도 못하는 여리고 순한 멍청이(?)들은 미치는 수 밖에 없다. 그런 의미에서 군대는 가장 생산성 높은 광인 양성소이다. 연극 [싸이코스]는 군대가 생산해 낸 그런 광인들의 모습을 담고 있다.

멍청이들은 어린아이다. 어린아이들끼리 놀듯이 어떤 녀석은 자신을 대통령으로 국무회의를 주관하고, 한 녀석은 어릴적 교회서 본 수녀님을 사모한다. 그들이 그리는 그림은 개발새발로 그린 그림이다. 생뚱맞은 말과 행동들이 일반적인 어른들의 상식을 벗어나기에 폭소가 터진다. 그러나 웃음을 연발하면서도 가슴 한구석이 찡해온다. 어린아이들이 군대안에서 크레파스로 그림 그리며 노는 상황이 마냥 우스울 수 있을까? 철창에 갇혀 노는 다 커버린 어린아이의 모습에서 아무생각없이 웃기만 하기는 쉽지 않다. 차갑고 냉정한 철창, 군복, 모포, 군화, 쌍스런 군대용어가 남발하는 병동에서 바둥거리는 모습들에서 간간히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어린 심성과 분별없는 이성으로의 퇴행은 부조리하고 폭력적인 군대, 사회를 극복하는 순수하고 정통적인 길이다. 원래 인간은 베버가 자랑하는 근대적인 합리성, 합리적 이성 없이도 자연과 조화를 이루며 행복한 삶을 살았었다. 감성, 본능만으로도 그는 충분히 행복했다. 미침으로써 그들은 요구받는 이성과 능력을 상실함과 동시에 군대와 현대사회도 아울러 뛰어넘은 것이다. 그들의 세계는 아주 오래전의 세계와 닮지 않았을까? 그들과는 다르게 잔꾀를 굴려서 병동에 들어온 병사들은 기회주의적인 모습을 하고 있다. 박쥐처럼 사는 것이라고 욕하지 말라. 박쥐도 엄연한 생명체다.

병동에서 광인들을 억압하고 착취하는 병동의 병사들은 자신들이 오랜 인내로 순응했던 군대문화의 한계점을 돌파하지 못한 비극의 주인공이다. 군대 문화에 순응함은 필연적으로 그 폭력의 내면화를 수반하며 그것을 결국 타인에 대한 침해와 자신의 심성을 극도록 황폐하게 한다. 바둑책에 집착하는 중고참의 모습, 자살하는 고참을 모습.. 하나같이 광인의 형상으로 이어진다. 셰익스피어의 희곡 [오델로]의 이아고를 연상케하는 간사한 병자는 고참을 자살하게 함으로써 완전히 미침의 수준에 도달한다. 모두가 다함께 광인이 되었을 때 드디어 태양 사형식을 위한 준비가 진행된다. 4월은 잔인한 계절이듯이 태양도 광인들에겐 잔인한 것이다.

박노자씨의 [당신들의 대한민국]에서의 군사문화에 대한 비판과는 좀 다른 매력을 연극 [싸이코스]의 공연에서 볼 수 있었다. 만약 에세이와 연극중에서 무엇을 볼거냐고 묻는다면 음.. 글쎄다.. 후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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