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로크백 마운틴(Brokeback Mountain, '05)

영화보다 대굴대굴

브로크백 마운틴(Brokeback Mountain, '05) :::

나와 너, 모두를 찌르는 가시

김승환 | 2006년 03월 3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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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을 표현하는 데 서툰 사람이 있습니다. 속에서 움트는 감정들과 생각들, 그 많은 것들을 반도 얘기하지 못할 뿐더러 아예 엉뚱하게 내뱉는 자들이 이 세상 어느 곳에나 존재합니다. 그런 사람들은 존재 자체만으로 자신에게, 그리고 그들을 사랑하고 가까이 하려는 누군가에게 상처가 됩니다. 그래서 그들은 사람들 속에서 혼자가 되고 외로움을 탐닉하죠. 하지만 외로움이란 녀석은 애초에 따뜻한 체온도, 고동치는 심장 소리도 나눌 줄 모르는 녀석입니다. 결국 외로움을 탐하던 그들은 따뜻한 생동감을 찾아 다시 사람에게 다가가 보지만 열에 여덟은 아물지도 않은 상처를 더욱 덧나게 하고 말아요. 그들의 불운은 여기서 그치지 않습니다. 되풀이 되는 상처의 고통 속에서 자기 방어는 필요 이상으로 발휘되고, 또 다른 상처를 받지 않기 위해 더욱 주변을 의식하게 됩니다. 타인의 시선, 사회의 인식, 지켜야 할 도리. 의식하면 의식할수록 세상엔 눈치 보아야 할 게 많은 법입니다. 의식하고, 눈치를 보고, 그러다보면 다시 원점으로 돌아갈 뿐입니다. 자신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는 상태로 말이에요.

영화 속 에니스는 자신을 표현해내지 못했습니다. 좋아하고, 사랑하고, 그리워하고. 그 애틋한 감정들, 가슴 속에 담아만 두기엔 너무나 벅찬 그 감정들은 세상의 굴레에 갇혀 언제나 그를 괴롭혔을 겁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는 괴로우면 괴로울수록 주변을 의식하고 자신을 의식합니다. 모두가 자신의 은밀한 비밀을 알고 있는 것만 같고, 거리낄 것 없는 사랑의 감정 속에서도 상대방에 대한 자신의 가치를 힐끔거립니다. 어린 시절 목격했던 한 사건이 그에게 트라우마로 작용해 그 모든 것을 이끌어내기도 했겠지만 한편으론 그의 과도한 자기 방어와 두려움이 타인의 열린 마음속으로 들어가는 것을 방해했겠죠. 하지만 그걸 어찌 에니스의 탓으로만 돌릴 수 있겠어요. 그의 두려움도 따지고 보면 다양성을 용납하지 않는 사회의 시선으로부터 비롯된 것인데요. 사회와 그 사회의 구성원들의 시선은 표준으로부터 벗어난 한 개인을 움츠려들게 하기엔 충분하고도 남거든요.

<브로크백 마운틴>은 동성애를 소재로 합니다. 그러면서도 하나의 사건에 초점을 맞추기보단 긴 시간의 흐름 속에서 부대끼는 인물들에 중점을 두고서 이야기를 서술해갑니다. 표준이 득세하는 세상에서 소수자의 삶이 하나의 사건이 아닌 모두와 똑같은 일상, 모두와 똑같은 인생으로 받아들여지기를 바라는 감독의 희망이라고 한다면 지나친 과장일까요? 어쩌면 그것은 제 희망일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 희망이 소수를 위한 순수한 것이라고 오해하지는 말아줬으면 싶군요. 제 희망의 뿌리는 위선과 마주치고 싶지 않은, 지극히 이기적인 토양에 바탕을 두고 있습니다. 소수자의 삶과 제 삶의 영역이 맞닿았을 때 어떤 행동을 취할지 전혀 예상할 수 없는 자신이 두려운 거죠. 그런 면에서 봤을 때 <브로크백 마운틴>은 가식이 없고 위선적이지 않은 영화임은 틀림없습니다. 영화는 표준들의 시선을 당연한 것으로 전제하고 그들의 은혜나 포용을 얘기하지 않습니다. 대신 소수자의 용기와 적극성의 발현을 요구합니다. 그래야만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할 수 있고, 고통과 기쁨을 같이 나눌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적어도 그래야만 사랑하는 사람들에게까지 상처를 주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런 영화들을 보고 글을 쓸 때마다 느끼는 점이지만 아무리 글을 잘 쓰려 한들 그 결과물은 영화의 발뒤꿈치에도 미치지 못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글을 쓰는 건 아무리 휘발성이 강력한 고민이라도 그 사소한 고민으로 인해 개인적인 위선과 가식이 조금이라도 덜어졌으면 하는 바람 때문입니다. 과거의 글들이 미래의 나를 정의하고 보다 바람직한 길로 이끌어주었으면 합니다. 나약한 자신을 위한 소망이지만 그마저도 하지 않는다면 전 이기적인 본성에 푹 빠져들어 갈지도 모를 일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