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리포터와 불의 잔(Harry Potter and the Goblet of Fire, '05)

영화보다 대굴대굴

해리포터와 불의 잔(Harry Potter and the Goblet of Fire, '05) :::

전환의 계기로선 차고 넘치는, 하지만...

김승환 | 2005년 12월 0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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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지의 제왕>과 <해리 포터와 마법사의 돌>이 처음 격돌하던 그 해, 무엇을 먼저 봐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할 정도였습니다. 영화를 볼 준비까지 철저히 해둘 만큼 기대로 꽉 차 있던 때로 기억됩니다. 톨킨의 원작이야 이미 학창 시절부터 여러 번 읽은 상태였고, <마법사의 돌>을 위해선 롤링의 소설 1권을 미리 읽어보기까지 했죠. 하지만 <마법사의 돌>의 경우 사전에 떨었던 그 부산스러움이 오히려 독이 되고 말았습니다. 3시간여 동안 영화는 책을 그대로 읊어댔고, 덕택에 극장이 아닌 코엑스의 신기술 박람회에 온 게 아닐까 하는 착각에 빠지곤 할 정도였으니까요. 그 정도 수준이면 문자와 영상의 완벽한 연동이라는 점에서 두 손가락 번쩍 치켜들 만 했습니다. <마법사의 돌> 이후, 전 롤링의 소설을 머리 속에서 완전히 치워 버렸습니다.

책을 읽어볼까라는 생각이 다시 든 건 3편인 <해리포터와 아즈카반의 죄수>가 나오면서부터입니다. 원작자의 구속에서 어느 정도 자유로워졌다는 말이 들려온 까닭에요. 또한 앞으로 영화도 계속 보게 되리란 걸 깨달은 것도 <아즈카반의 죄수>를 통해서였습니다. 영화를 보면서 이 시리즈를 계속 극장에서 봐야 할 핑계거리를 찾고야 만 겁니다. 비슷비슷한 시각적 자극은 분명 한계가 있습니다. '해리 포터'의 판타지 세상이 매 편마다 새로워질 수는 없는 노릇이죠. 그래서 궁금했습니다. 과연 다음 편엔 무엇을 무기로 삼을 것인가?

예상대로 <해리 포터와 불의 잔>의 시각적 효과는 예전만큼 신선하게 와 닿지 못하더군요. 전작들에 비해 떨어지지도 않지만 특별히 나아진 점도 없었습니다. 대신 영화는 두 가지 내용에 초점을 맞춥니다. 14살이란 주인공들의 나이가 강조된 점에서 알 수 있듯이 그들 또래가 지닌 불안정하고 풋풋한 감정들이 그 첫 번째입니다. 해리와 론, 론과 헤르미온느 사이에 사랑과 질투에 의한 갈등의 양상들이 서서히 드러나기 시작합니다. 이전처럼 무조건적인 협조가 아닌 갈등과 사소한 충돌의 봉합 과정을 거친 후에야 가능한 협조이고, 으르렁대는 둘 사이에서 하나는 이도 저도 아닌 어정쩡한 위치에 자리 잡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들의 불안정한 심리는 어린 소년·소녀의 자리를 보여주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어른이 되어가는 전단계로서의 혼란기를 반영하는 데까지 나아갑니다. 종잡을 수 없는 해리의 행동이 대표적으로 그에 해당된다고 하겠네요. 가끔은 자신의 우월성을 과시하는 성숙되지 못한 모습을 보이기도 하지만 내부의 분노와 슬픔과는 별개로 현실을 대하는 해리의 모습은 아이와 어른의 중간 지점에 선, 어른으로 향하는 전환기를 맞이한 사람을 나타내는 셈이죠.

첫 번째 내용이 모든 성장기 소년·소녀들이 겪는 양상이라면, 이제 적어 내려갈 두 번째 내용은 '모든'이 아닌 '선택된' 자에게 요구되는 역량들입니다. 해리는 친구들과 어울리며 공부를 하는 평범한 학생이기도 하지만 볼드모트와의 관련성 때문에 평범함과는 거리가 먼, 선택된 자이기도 합니다. 영화는 그런 사람에게 필요한 덕목으로 용기, 판단, 결단, 인내, 포용 등을 들죠. 모든 이에게 필요한 덕목이긴 하나 선택된 자에게 저런 것들이 부족할 때 그는 돌이킬 수 없는 현실과 직면할 가능성이 다른 이에 비해 훨씬 더 높습니다. 해리를 비롯한 네 명의 챔피언들의 모습에서 그 가능성을 충분히 살펴볼 수 있을 듯하네요.

바로 전편인 <해리 포터와 아즈카반의 죄수>가 원작의 구속에서 풀렸다는 점에서 새로운 분기점을 맞이했다면, 이번 <불의 잔>은 볼드모트의 부활과 함께 캐릭터들이 본격적인 갈림길을 앞두게 됐다는 점에서 또 하나의 전환점을 마련합니다. 어른이 된다는 것이 수많은 좌절과 기회의 세상으로 들어간다는 의미인 것처럼 그런 세상에 들어설 캐릭터들과 마찬가지로 결국 영화 또한 같은 길을 앞두게 될 겁니다. 전환의 계기로서 <불의 잔>의 의미는 넘치고도 남습니다. 하지만 불안정하게 흔들리는 캐릭터들처럼 이야기의 구심점이 이리 저리 흔들린다면 다음 영화는 기회보단 좌절에 더 가까이 가 있을지도 모르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