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녹색의자(2004) :::

김승환 | 2005년 06월 03일 조회 7277
보상 심리 때문인지, 아니면 최후의 보루라는 절실함 때문인지 사람들은 종종 특정 대상을 성역화 시키는 경우가 있습니다. 아마 이런 저런 설명 필요 없이 한 번에 알아볼 수 있는 예라면, '문근영'이란 배우에 대한 사람들의 태도가 이에 해당될 듯하네요. 그러나 이건 최근의 예에 불과할 뿐이고, 사람들은 이미 오래 전부터 하나의 대상을 머리 속에서 아름답고 성스럽고 깨끗한 것으로 장식해왔습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사랑이에요. 말로는 '사랑에는 국경도 없다'라고 하면서 사랑에 숱한 제한을 걸어 놓곤 하죠. 속되지 말아야 하며, 문란하지 말아야 하며, 통념에 어긋나지 말아야 하며 등등. 그래서 육체적 쾌락은 숨겨야 할 더러운 것이 되었고, 제도가 불허하는 사랑이라면 마음이 허락한들 결코 자랑스럽게 드러내놓을 수 없는 불결한 것이 되었습니다. 사랑은 그렇게 온실 속 화초같이 예쁘게, 순결하게, 성스럽게 덧칠해져왔어요.
물론 덧칠된 사랑을 이 세상 모든 이가 실행에 옮기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강박관념처럼 지닌 채 어느 순간 외부에 대한 잣대로 그것은 활용됩니다. <녹색의자>는 바로 그 잣대로 재단당한 연인들의 얘기를 합니다. 32살 이혼녀 문희(서정)와 19살 미성년자 현(심지호). 둘은 서로에게 마음을 허락하고 몸까지 허락했지만 사람들의 잣대는 그것을 용납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계속해서 자신들의 사랑을 유지해요. 동거와 섹스, 위기, 극복, 그리고 흔들림. 그 과정을 통해 영화는 사랑과 그것을 둘러싼 다양한 양상을 살펴봅니다. 섹스는 식욕처럼 얼마든지 자연스러울 수 있으며, 진정한 관심은 어떠한 제약과도 상관없이 발현될 수 있다는군요. 온전한 한 인간임을 증명하기 위해 사회가 제시하는 기준은 때론 얼토당토않고, 관계를 일률적으로 통제하는 법은 그 필요성에도 불구하고 한계가 명백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과연 사랑에 정답이 있고, 기준이 있을까요?
이 영화는 야하고 엉뚱합니다. 사랑과 섹스의 자연스러운 관계가 화면을 야하게 하고, 미성년의 설익음과 사랑에 대한 사람들의 다양한 표현이 상황을 엉뚱하게 만들어요. 그래서 유쾌하고 색다른 영화일 수 있지만 동시에 지나치고 작위적일 수도 있습니다. 판단은 어차피 관객 몫입니다. 하지만 매일 비슷한 사랑 타령만 하는 영화에 지쳤다면 한번 쯤 <녹색의자>의 유별남에 시간을 맡겨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듯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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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승환 난 언제나 이중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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