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Ray, 2004)

영화보다 대굴대굴

레이(Ray, 2004) :::

김승환 | 2005년 03월 0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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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에 대한 개인적 애정은 영화에 대한 관심의 반의 반도 채 되지 못합니다. 귀로 들어가는 음악을 그저 들으면서 그 순간의 감정에 충실할 뿐이죠. 조금만 더 관심을 가진다면 그 음악을 선사하는 개개인에 대해서도 파악해 나가겠지만 어쨌든 거기까지는 미치지 않습니다. 아마 이 영화를 보면서 '이 노래가 레이 찰스 거였구나'라며 수시로 놀란 것도 분명 부족했던 제 관심 때문이었음에 틀림없습니다. 'I Can't Stop Loving You'가 흘러나올 때도, 'Hit the Road Jack'이 거침없이 쏟아져 나올 때도, 'Unchained My Heart'가 불려질 때도 속으로 '이게 원래 레이 찰스의 곡이었단 말인가'를 중얼거려야만 했어요. 그러고 보니 레이 찰스에 대해 아는 거라곤, 그가 앞을 보지 못한다는 것과 피아노를 친다는 것, 그리고 블루스 음악을 했다는 것 정도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레이>를 스크린으로 보기 위해 굳이 애를 쓴 이유는 두 가지에요. 첫 번째론 음악에 대한 애정은 부족하지만 음악을 듣는 건 즐기는 묘한 습성 때문입니다. 그런 면에서 이 영화는 개인적인 만족감을 충분히 채워주고도 남습니다. 앞서 적었듯이 레이 찰스가 자신들의 주인이었음을 선포하며 익숙한 멜로디들이 시종일관 흘러나오는데다 어느 노래 하나 쳐짐 없이 관객들의 청각을 즐겁게 혹사시켜주거든요.

두 번째 이유는 작년 여름에 봤던 <피아노 블루스>란 영화에 있습니다. 마틴 스콜세지 감독이 기획한 'the Blues' 연작 중 한 작품으로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감독을 맡았던 다큐멘터리였습니다. 이 영화에 레이 찰스가 등장해서 이스트우드와 이야기를 나누죠. 확실치는 않지만 영화의 마지막도 레이 찰스의 공연 장면으로 끝이 났었던 것 같습니다. 어쨌든 그의 이야기와 노래, 연주를 들으면서 그가 겪었던 삶의 굴곡과 흥겨움을 어렴풋이나마 접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마침 <레이>에는 마음속에 남겨둔 그의 상처, 어둠에 대한 두려움뿐만 아니라 음악에 대한 열정, 가족들의 이야기 등이 담겨있습니다. 물론 고스란히 다 담아냈다고는 말하지 않겠습니다. 감독이 이해할 수 있었던 만큼만 영화에 담겼을 테고, 제가 이해할 수 있었던 만큼만 그 영화에서 취했을 테니까요.

<레이>는 거장으로 남은 한 음악인의 인생을 담은 영화입니다. 그래서 영화에는 그가 연주하고 불렀던 음악이 있고, 그가 살았던 인생이 있습니다. 음악이 취향에 안 맞는다면 영화는 졸음이라는 부작용을 선사하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이 영화를 통해서 그의 영혼의 아주 미세한 일부나마 경험해볼 수 있지 않을까 싶네요. 그 경험을 가능하게 하는 중심에 제이미 폭스가 있음은 굳이 말할 필요가 없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