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레이드3(Blade: Trinity, 2004)

영화보다 대굴대굴

블레이드3(Blade: Trinity, 2004) :::

김승환 | 2004년 12월 23일
조회 3893

블레이드는 영화의 모든 캐릭터를 통틀어서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캐릭터 중 하나입니다. 브랜든 리가 연기했던 <크로우>의 '에릭'과 팀 버튼이 만들었던 <배트맨>의 '배트맨', 그리고 웨슬리 스나입스의 '블레이드'. 이 셋 중 무슨 일 있어도 하나만 골라야 한다면 전 아마 콱 죽어버릴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현존하는 유일한 캐릭터는 '블레이드' 뿐이에요. 브랜든 리가 사고로 이 세상과 결별하면서 <크로우> 후속편은 더 이상 보고 싶지 않았고, 팀 버튼이 창조의 손길을 멈춘 <배트맨> 후속편 역시 뭔가 나사 빠진 영화 같아 싫었습니다.

그렇게 제게 특별한 의미를 갖는 '블레이드'가 이제 세 번째 탄생을 했군요. 반인 반흡혈귀의, 어느 쪽에도 속하지 못하는 태생, 백인이 아닌 흑인, 자신의 한 쪽 뿌리를 가차 없이 사냥하는 증오심, 피를 향한 끊임없는 갈등... 이 모든 것을 볼 때 블레이드는 배트맨조차 울고 갈 전형적인 안티 히어로(반영웅)입니다. 이 마블 캐릭터를 이용해 스티븐 노링턴이 스크린에 훌륭하게 옮겨놓은 <블레이드>는 인간이 아닌 다른 종족을 그려내는데 유별난 재능을 가진 길레르모 델 토로에 의해 <블레이드2>로 거듭났고, 1, 2편의 시나리오 작가였던 데이빗 S. 고이어에 의해 <블레이드 트리니티>로 되살아났습니다.

그러나 2편까진 어떤 비난에도 불구하고 쌍수를 들고 환영했었지만 이번엔 차마 그럴 수가 없네요. 이 영화는 속편으로서도, 액션 영화로서도 모자라거든요. 3편을 만드는 게 쉽지 않았으리라는 건 충분히 이해하고도 남습니다. 캐릭터의 커다란 장점인 기본 설정은 이미 1편에서 다 우려먹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고, 액션의 확장과 분위기의 변형은 2편에서 사용했으니 뭔가 새로운 걸 찾아낸다는 게 결코 쉽지 않았을 겁니다(2편은 1편에 비해 과장된 액션을 통해 완벽하게 만화스러운 분위기를 보여줍니다). 그래서 이번에 등장한 게 새로운 보조 캐릭터들과 유명한 레슬링 스타, 그리고 더욱 강대해진 악의 원천입니다.

그런데 이 약발이 영 안 먹히는군요. 한니발(라이언 레이놀즈)과 아비게일(제시카 빌)로 대표되는 블레이드 측 캐릭터는 그다지 매력적이지가 못합니다. 한니발은 분위기가 너무 붕 떠 있고, 아비게일은 정말 뜬금없는 등장이에요. 2편에서 모두 소모된 보조 캐릭터들이 절실하게 그리워질 정도로 저들에게선 힘이 느껴지질 않습니다. 트리플 H 또한 실망스럽긴 마찬가지구요. 프로레슬러로서 그의 유명세를 고려했다면 맥없는 한니발보다 블레이드와 제대로 한 판 붙이는 게 훨씬 나을 뻔 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뱀파이어의 원조로 나오는 드레이크(도미니크 퍼셀)는 그나마 제일 낫습니다. 블레이드 자신을 제외하고 유일하게 블레이드의 정체성을 자극하는 캐릭터이자 강력한 힘을 발휘하는 캐릭터로서요. 문제라면 소박한 액션씬 덕택에 그의 카리스마가 살아날 기회가 전혀 없었다는 게 아주 큰 문제지만 말입니다.

영화가 욕을 먹어야 할 부분은 여기서 끝이 아닙니다. 스토리 라인마저 전반적으로 밋밋한데다 한 곳으로 압축되지 못한 채 산만한 느낌을 주며, 나름대로 새로운 방법을 쓴다고 썼지만 액션씬마저 눈길을 붙잡질 못합니다. 결론을 내리면, <블레이드3>의 유일한 장점은 오로지 웨슬리 스나입스가 여전히 '블레이드'로 존재한다는 것뿐입니다. 만약 4편이 나온다면, 그리고 웨슬리 스나입스가 계속해서 '블레이드'로 등장한다면 전 무슨 일이 있어도 그 영화를 보러 갈 겁니다. 그 이전에 제발 이번 3편 때문에 '블레이드'의 발목이 잡히지 않길 빌어야 하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