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는 보는 사람의 입장이 개입되기 마련입니다. 이런 특색은 감독의 순수한 창작이 아닌 실제 있었던 역사적 사실을 다룬 영화에 대해서는 더욱 두드러지죠. 영화 이전에 형성된 몇몇 가치 판단에 대한 공감대가 이미 성립된 상태이기 때문입니다. <모터싸이클 다이어리>라고 해서 예외일 수는 없어요. 그래서 혁명가로서 체 게바라를 원하던 사람들은 이 영화가 딱히 맘에 든다고 하지는 않을 듯 합니다.
우선 철저한 현실주의자(기회주의자와 혼동하지 않기를...)였던 그의 근본이 제대로 드러나지 않는데다가 그가 영화 속에서 고민하고 갈등하는 대상은 휴머니즘입니다. 휴머니즘은 많은 부분에서 현실주의보다는 이상주의와 맥이 통합니다. '총이 없는 혁명의 성공 불가능'을 확신했던 그의 근본이 과연 보편적인 휴머니즘이었을까요?
더구나 '총이 없는 혁명은 성공할 수 없다'는 자신의 말을 뒷받침해줄 든든한 근거가 이 영화에는 없습니다. 생각과 다른 현실을 직시하자마자 폭력과 혁명의 불가분성을 긍정한 모습에서 그가 뿌리부터 철저한 현실주의자임을 역설하는 것이라고 항변할 수도 있겠지만 그건 '꿈보다 해몽'이고 '변명'일 뿐입니다.
그런 면에서 볼 때 이 영화는 혁명가로서 체 게바라를 원하는 사람들을 위한 영화는 아니라고 감히 말하고 싶네요. 이 영화는 오히려 체 게바라를 옹호하는 현실주의자들보다 이상적 낭만을 꿈꾸는 사람들, 체 게바라를 전혀 모르는 사람들(저 역시 이 부류죠)에게 더 어울릴 법 합니다. 이상과 현실의 갈등은 이상주의자들의 최대 난관이자 극복 대상이며, 피비린내 속에서 낭만을, 낭만 속에서 투쟁을 발견해내는 것은 요즘 관객들에게 효과적으로 호소할 최대의 수단이기 때문입니다.
혁명 이전 백지 상태의 체 게바라, 낭만적·인간적 냄새가 물씬 풍기는 시기의 체 게바라, 여행 중인 체 게바라를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이 영화는 본질적인 한계를 지닌 채 출발선에 섰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관객들은 그런 한계 따위에는 신경조차 써 주지 않습니다(말 그대로 '따위'). 그렇기에 영화는 '인간 체 게바라를 담았다'는 의미만으로 많은 관객들을 만족시킬 수는 없어 보이는군요.
리처드 기어가 로맨티스트로서의 이미지가 확고한 것처럼 체 게바라는 혁명가로서의 명성이 확고합니다. 리처드 기어의 이미지가 영화의 분위기를 좌우하듯 체 게바라의 현실적인 명성은 영화의 느낌을 좌우하기에 부족함이 없겠죠.
~~~하루 경과~~~ 체 게바라에 대해 너무 모르고 있다는 걱정에 인터넷에서 이 자료, 저 자료를 읽어보았습니다. 허허... 이거 참. 이상과 현실의 절묘한 조화일까요. 아니,이상에서 현실로의 절묘한 바톤 터치인가요. 차별받지 않고 평등한 사람들을 위한 세상 건설, 현실에서 사람들을 착취하는 자본과 그 자본의 수뇌로서 미국의 존재에 대한 거부 그리고 실천. 하나가 된 라틴아메리카에 대한 그의 꿈과 그것을 위한 폭력의 불가피성 인식. 이상에 뿌리를 둔 철저한 현실 인식과 실행... 이게 실현 가능한 일이란 말이죠... 좀 더 자세히 알아볼 필요가 있겠습니다. 그가 이상주의자인지 현실주의자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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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터싸이클다이어리(Diarios de Motocicleta, 200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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