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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그램(21 Grams, 2004) :::

김승환 | 2004년 10월 28일 조회 4065
삶은 불가사의합니다. 아무리 원해도 되지 않는 일이 있는가 하면 생각도 않은 일이 이루어지기도 하죠. 한때의 행운이 훗날의 불운을 몰고 오기도 하며 갈가리 찢어 갈길 것만 같던 고통이 미래를 위한 초석이 되기도 하구요. 이처럼 삶은 예측 불가능합니다.
게다가 불공평해 보이기까지 합니다. 길고 긴 절망 끝에 잠깐 찾아왔다 떠난 희망은 도대체 무엇을 위함일까요? 힘들게 얻은 믿음 뒤에 찾아든 배신감은 또 무슨 의미일까요? 갑작스레 날아든 상실과 고통, 그리고 거기서 비롯되는 회복의 씨앗... 무얼 하자는 건지... 이 의문에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영화에 등장하는 폴(숀 펜)도, 잭(베니치오 델 토로)도, 크리스티나(나오미 왓츠)도 그 대답은 모릅니다. 그들 역시 삶이라는 거대한 도박판 속에 존재하는 하나의 말에 불과하니까요. 그래서 삶은 모호하고 냉정합니다. 도박판이 어떻게 짜여질지는 겪어보지 않고는 모를 일이며, 승자의 행운은 패자에겐 불행이기 마련입니다. 승자는 언제나 승리할 수 없고, 패자도 언제나 패할 수만은 없어요. 그렇게 도박판은 계속됩니다. 앞일을 알지 못한 채 순간에 기뻐하고 순간에 슬퍼하며 지속되는 거죠. 그리고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로 계속됩니다.
영화에 따르면 사람이 죽는 순간 누구나 예외 없이 21g의 무게가 준다고 하네요. 정말 폴의 독백처럼 삶의 무게, 영혼의 무게가 21g일까요? 밥 한 끼 굶으면 가뿐하게 빠지고도 남을 거 같은 무게인 21g이 가져다주는 인연, 행운과 불운, 규칙과 불규칙... 그것이 삶이라... 하긴 그 큰 도박판을 좌우하는 것도 조그마한 주사위의 눈금이긴 하죠. 삶의 정의를 뭐라 내린들 그 누가 자신 있게 반대할 수 있겠습니까.
감독은 전작 <아모레스페로스>에 비해 분명 외형상 힘든 방법을 택했습니다. 3개의 에피소드를 분리해놓고 마지막 순간 그 셋을 절묘하게 엮어놓았던 게 <아모레스페로스>였다면 세 사람의 시간을 조각내어 풀어 헤쳐 놓은 게 <21그램>입니다. 몸무게의 극히 일부인 21g만이 인생의 무게라는 것을 강조하기라도 하듯이 주인공들이 살아가는 긴 시간을 단편적으로 잘라냈고, 21g이 가져다주는 예측 불가능을 암시하기라도 하듯이 시간의 논리성을 무시하면서 그 잘라낸 단편들을 배열했습니다. 관객을 시험함과 동시에 그들을 빠른 시간 내에 이해시켜야 한다는 점에서 감독 자신까지 스스로 시험한 셈이에요. <메멘토>에 한번 놀랐던 관객들이라 소스라칠 정도는 아니겠지만 그래도 감독은 자신이 하고 싶은 얘기를 독특한 형식과 자신만의 스타일을 버무려 관습에 익숙해진 관객들에게 제대로 선사한 듯합니다.
어찌됐든 지켜볼 가치가 있는 감독임은 틀림없습니다. 다음 영화에서도 3이라는 숫자와 그 사이의 관계를 탐구할지, 계속해서 '너'보다는 '나'에 초점이 맞춰진 사랑에 대해 얘기할지, 영화적 관습을 흔드는 다른 도전을 시도할지……. 그의 이름만큼이나 난감한 행보를 해 주었으면 하는 바람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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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승환 난 언제나 이중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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