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미널> 거목 스필버그? 전설 스필버그?

영화보다 대굴대굴

<터미널> 거목 스필버그? 전설 스필버그? :::

김승환 | 2004년 08월 28일
조회 3844

부잣집에 손님들이 꼬이듯이, 음식물에 파리가 꼬이듯이 스필버그의 영화들엔 언제나 유명 배우들이 등장합니다. 톰 크루즈, 할리 조엘 오스먼트,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그리고 이번에는 톰 행크스군요. 스필버그의 이야기 꾸려 나가는 솜씨야 두말 하면 잔소리일 테니까 그의 영화에 나와서 제대로 연기만 해 낸다면 감독, 배우 모두에게 플러스 요인이 되는 셈입니다.

그런데 영화를 보고 나면 스필버그란 약발이 어쩐지 예전만 같지 않다는 생각이 듭니다. <터미널>은 스필버그의 유머, 스필버그의 이야기 구성, 스필버그의 캐릭터 등 전형적인 스필버그 영화입니다. 가족의 소중함, 사람들과의 유대감을 일깨우고 역경을 극복해내는 과정을 통해 웃음과 감동을 주는 영화란 얘기죠.

하지만 좋은 것도 한두 번이지 계속해서 경험하다 보면 질리게 마련이고, 그런 면에 있어서 관객들은 잔인할 정도로 냉혹합니다. TV드라마라면 채널을 돌리다 재미를 붙일 수도 있지만 돈 주고 선택해야 하는 영화의 경우는 다른 새로운 볼거리로 가차 없이 방향을 틀 가능성이 큽니다.

무엇보다 스필버그의 영화들은 깊은 사고를 요구하는 영화들이 아닙니다. 그의 영화는 감동과 재미가 최우선이기 때문에 언제나 대중성의 최극단에 서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와서 바로 그 민감한 대중성 때문에 발목이 잡힐 지도 모를 일이에요. 새로움과 참신함이 결여된 대중성은 파리 목숨이나 다름없고, 사고력을 요구하지 않는 감동과 재미는 스필버그의 영화에서 깊이감을 상실시켰으니까요. 부자 망해도 3년 간다고 과거 그의 명성이 기본적인 관객들을 불러 모으기는 하겠지만 그렇고 그런 대중성과 가벼움으로 무장한 스필버그의 영화는 그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고도 하겠습니다.

그가 안은 문제점은 이것으로 그치지 않습니다. 전작에서도 그랬고 이번에도 역시 그는 실화를 영화의 소재로 선택했습니다. 샘솟던 아이디어마저 말라가는 것이 아닌지 걱정스럽군요. <터미널>만 해도 번득이는 재치는 별로 느껴지지 않는데다가 '인생은 기다림'이란 포스터 문구만으로 모든 게 대변되는 영화로서 지금까지 적었던 문제점들을 고스란히 내포하고 있거든요.

그가 앞으로 어떤 영화를 내놓을지 벌써부터 기대 반 걱정 반으로 기다려지지만, 만약 감동과 재미라는 측면에 계속해서 집착한다면 세월의 흐름 속에 먹히고 말지도 모릅니다. 살아남기 위해 감동과 재미를 포기하란 의미가 아니에요. 그에게 생존이란 단어를 들이대기엔 그는 너무나 엄청난 거장이자 거목입니다. 생존이 아닌 전설로 남기 위해 스필버그는 새로운 시도를 할 필요가 있어 보여요. 과연 스필버그란 거목에 새싹이 돋아날지……. 마냥 궁금해지면서 지켜보기에 즐거운 일입니다(타인의 고통은 곧 나의 즐거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