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슈프리머시(the Bourne Supremacy, 2004)

영화보다 대굴대굴

본슈프리머시(the Bourne Supremacy, 2004) :::

김승환 | 2004년 08월 18일
조회 6406

기억을 잃은 첩보원, 과거의 잔재를 청산하려는 첩보조직, 뒤에 감추어진 음모. 영화로 만들기엔 참 매력적인 소재입니다. 그 매력적인 소재를 제대로 살릴 것인가, 아니면 사장시킬 것인가는 감독의 능력에 달렸지만 말이에요. 그런데 이 영화는 그 소재의 매력을 제대로 살려냈어요. 그저 살려낸 정도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상당히 고급스럽게도 서스펜스라는 요소까지 가미시키고 있습니다.

첩보원이 등장하는 액션 영화는 흔합니다. '007 시리즈'가 있고, <트리플엑스>, CIA 등의 첩보 요원들이 나오는 수많은 영화들까지 이루 헤아릴 수 없을 정도죠. 그러나 그들 대다수는 때려 부수고 죽이는, 소위 스케일로 승부하는 글자 그대로의 액션 영화들이 대부분입니다. 엄청난 속편수를 자랑하는 '007'조차도 그 굴레에서 쉽게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본슈프리머시>는 기특하게도 액션이라는 틀에만 갇혀있지 않고 손에 땀을 쥐게 하는 듯한 긴장감을 시종일관 선사해줍니다.

말이야 쉽지만 영화 전반에 걸쳐 서스펜스를 구축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자신의 이마 앞에 고무줄의 한 끝을 대고 다른 한 끝을 반대쪽으로 잡아당긴다고 생각해보세요. 그 순간이 너무 짧으면 고무줄을 놓았을 때 고무줄은 그냥 힘없이 축 쳐지고 말 겁니다. 반대로 그 순간이 너무 길어도 효과는 반감될 거에요. 10분, 20분 잡아당기고만 있다고 해도 고무줄은 더 이상 늘어나지 않습니다. 오히려 의도하지 않을 때에 끊어질 수도 있고, 그 긴장감이 일상이 되어 지루하거나 짜증날 수도 있거든요.

고무줄이 조금 억지스런 예였다면 놀이 공원에 있는 놀이기구는 어떨까요? 아무리 스릴 만점인 놀이기구라도 오래 타면 지겹고 짧게 타면 아쉬운 법입니다. 한 예로 월미도에 있는 바이킹은 유난히 오르락 내리락 하는 폭이 크더군요. 처음 탔을 때 웬만한 놀이공원의 그것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였어요. 헌데 이 바이킹의 문제점은 한번 타면 다른 곳보다 꽤 오래 탈 수 있다는 거에요. 한동안 잔뜩 긴장하며 소리도 지르던 저는 시간이 지나면서 이곳저곳 둘러보는 여유까지 부리기에 이르렀죠. 시간상 본전은 뽑았을진 모르지만 스릴이라는 면에서 오히려 손해본 듯한 느낌이었습니다.

이처럼 모든 것은 적당한 순간이 있는 법인데, 이 영화는 그 타이밍 조절을 잘 하고 있습니다. 본(맷 데이먼)을 중심으로 벌어지는 추격씬에서 조였다 놨다를 능숙하게 잘 처리하고 있거든요. 게다가 그 분위기를 한껏 돋구어주는데 편집과 음악, 촬영 역시 크게 한 몫 합니다. 편집은 히치콕의 예처럼 모든 상황을 전달해 줄 정도는 아니지만 영화의 속도감을 살리는 데는 나름대로 적절했다고 생각돼요. 물량을 내세우면서도 감독의 기교가 엿보이는, 간만에 보는 기특한 액션 영화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