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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루(the Guru, 2002) :::
김승환 | 2004년 01월 30일
조회 3576
1. 인도와 볼리우드
1년간 제작되는 영화 편수만으로 유일하게 헐리웃과 맞짱 뜰만한 곳이 어딜까요? 프랑스, 일본, 우리나라... 아닙니다. 답은 인도에요. 오죽 했으면 인도의 대도시 '봄베이(Bombay)'와 '헐리웃(Hollywood)'의 합성어인 '볼리우드(Bollywood)'란 말이 나왔을까요. 더구나 인도 내에선 헐리웃 영화들이 별다른 힘을 쓰지 못한다는군요. 스크린 쿼터 같은 별도의 장치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헐리웃 영화의 점유율은 5% 정도에 머문다고 하니 대략 상황을 짐작할 만 합니다.
인도 영화에 대해 자세히 언급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라 내용까지 짚어볼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쉽게 눈에 띄는 몇 가지 외형적 특징들은 말할 수 있습니다. 유명 스타, 로맨스, 코미디, 과장, 6가지의 춤과 노래, 해피 엔딩... 바로 저것들이죠. 그리고 덤으로 입술이 닿을락 말락 하며 애간장 태우는 장면들(요즘은 많이 달라졌지만 얼마 전만 해도 절대 입술이 닿지 않았답니다). 이 정도가 인도의 볼리우드 영화, 또는 맛살라 영화의 간략한 소개라고 할 수 있습니다.
2. 아메리칸 드림과 포르노
'기회와 성공의 나라, 미국.' 그 말을 믿고서 우리 할아버지, 아버지 세대들은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며 미국으로 건너갔습니다. 성공이란 희망과 꿈을 안고서요. 하지만 정말 그 기회라는 것이 누구에게나 균등하고 평등했을까요? 그 성공이라는 것이 순탄하고 깨끗한 길을 달리는 것만으로 가능했을까요?
당연한 말이겠지만 차별과 고통에 좌절한 이들에겐 아메리칸 드림은 꿈이 아니라 허상일 뿐입니다. 성공이란 사탕발림으로 한껏 부풀어있고 과장되어 있는 외양 속에는 잔인한 현실과 치열한 생존 법칙만이 존재하고 있겠죠. 그런 게 아메리칸 드림일 겁니다. 사람들을 현혹하고 부추기고 끌어당기지만 실상은 외양과 달리 아주 잔인한 현실.
그럼 포르노는요? 포르노 역시 한껏 과장되어 있긴 마찬가지죠. 눈에 보이고 귀에 들리는 모든 것들이 부풀려 표현되어 있습니다. 다시 말해 포르노도 허상일 뿐입니다. 영화적 기법이 도입되어 실상과는 전혀 다른 거짓이란 얘기에요. 결국 극단적으로 비교하면 아메리칸 드림과 포르노는 서로 통하는 부분이 있는 모양입니다.
3. 영화 <구루>
우선 이 영화는 영국과 미국의 합작 로맨틱 코미디입니다. 볼리우드 영화의 특징을 접목시켰지만 고스란히 따른 것은 아니죠. 영화 중간에 갑자기 끼어드는 춤과 음악이 전부 다니까 말이에요. 더구나 사람 진저리 치게 만드는 볼리우드 영화의 러닝타임을 이 영화는 따라하지 않고서 짧게 끝내고 있습니다. 간략하게 요약하면 인도 배우를 써서 볼리우드 영화의 필요한 부분만 끌어다 쓴 서양의 로맨틱 코미디가 <구루>라고 하겠습니다.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는 인도 청년 라무(지미 미스트리), 평범한 결혼과 정상인처럼 보이길 원하는 포르노 여배우 샤로나(헤더 그레이엄), 영적 깨달음과 다른 사람을 도우며 살고 싶어 하는 뉴욕 상류층 렉시(마리사 토메이). 이들 3명이 영화의 주인공들이군요.
한 물 간 아메리칸 드림이라는 소재를 느닷없이 들고 나온 라무라는 청년은 자신이 끌고 나온 소재의 허상을 직·간접적으로 충실하게 비틉니다. 사람들이 열광하는 섹스 치료사(또는 전도사)라는 화려한 허울은 아메리칸 드림이란 허상과 전혀 다를 바가 없거든요.
허상에 빠져 허우적대는 건 샤로나와 렉시도 마찬가지에요. 샤로나가 진정으로 원했던 결혼이었지만 그 뒤에 숨겨진 진실은 외양과 전혀 딴 판입니다. 렉시가 구루(스승)라고 믿었던 라무의 경우 역시 말할 필요조차 없겠죠. 라무가 사람들을 열광시켰던 말들의 대부분은 포르노 영화를 제대로 찍기 위한 일종의 기술론이었으니까 말이에요.
그러나 이미 로맨틱 코미디란 장르가 말해주듯이 영화는 해피엔딩이며 아주 유쾌합니다. 3명의 주인공들은 허상과 거짓 속에 숨겨진 진실을 깨닫고 자신들이 원하던 것을 얻게 됩니다. 그리고 볼리우드 식 뮤지컬로 엔딩을 장식합니다.
영화를 보면 알겠지만 <구루>는 심각할 필요가 없는 영화에요. 엉뚱한 상황에 웃고, 속아 넘어가는 사람들의 어수룩함에 웃고, 그들의 가식에 웃고, 샤로나의 결혼식에 숨겨진 반전에 웃고……. 그렇게 웃다보면 영화는 부담 없이 가볍게 러닝타임을 채우고 지나갑니다.
4. 2004년 우리나라
영화 포스터를 보고서 볼리우드 영화로 착각하고 극장에 들어섰다간 큰 낭패를 볼 수 있는 영화가 <구루>입니다. 하지만 과연 정말 볼리우드 영화를 기대하고 들어가는 관객이 얼마나 될지 궁금하네요. 그만큼 우리는 문화적으로 심각한 편식을 하고 있는 중이라서요. 영화를 많이 보겠다고 이를 악무는 저만 해도 볼리우드 영화는 한 편도 보지 않았군요. 그나마 인도 출신 감독 두어 명은 알고 있으니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요. M.나이트 샤말란, 거린더 차다... 그런데 저들은 전통적인 인도 영화를 만드는 감독들이 아니라는 게 문제라면 문제죠--; 어쨌든 조금은 독특한 로맨틱 코미디를 원했던 관객이라면 <구루>는 그 기대를 충족시켜줄 가능성이 엿보이는 영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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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승환
난 언제나 이중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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