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영화는 어찌 보면 <매트릭스>와 비슷한 면모를 갖고 있습니다. <매트릭스>는 1편이 개봉한 후로 수많은 이야깃거리를 사람들에게 제공했고 영화를 통해 사회 현상이 분석되기까지 했어요.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 역시 마찬가지에요. 영화를 통해서 전통적 가족 구조의 해체, 세대간 갈등, 베트남 전쟁에 대한 은유 등 각종 현상들이 분석되고 비유됐죠.
동시에 다른 한편으론 아무 의미 없는 공포 영화에 불과하다는 평을 받기도 했습니다. <매트릭스>가 SF 액션 영화에 불과하다는 얘기처럼. 어찌 됐든 30년의 시간차를 두고 만들어진 두 영화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은 꽤나 비슷한 데가 있습니다.
2. 1978년 <시체들의 새벽>
조지 A. 로메로 감독은 10년이 지난 1978년에 좀비 3부작 중 두 번째 작품인 <시체들의 새벽>을 선보였습니다. 앞선 작품에선 외딴 집에 사람들을 몰아넣었던 감독은 이번 영화에선 백화점(또는 쇼핑센터) 안으로 사람들을 몰아넣습니다.
드라마적 요소가 강화되어 공포의 강도는 전작보다 떨어지지만 사람에 대한 감독의 평가가 이번엔 보다 직접적이에요. 고어적인 볼거리에서 인물 간의 갈등까지 영화는 다양한 장르를 섭렵하면서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과 함께 좀비물에 있어서 한 획을 그었다고 하겠네요.
3. 2004년 <새벽의 저주>
줄거리를 한번 쭉 훑어보면 금방 드러나듯이 이 영화는 78년 <시체들의 새벽>을 리메이크한 영화입니다. 그러다보니 비교를 안 하려야 안 할 수가 없어요. 우선 고어 부분을 보죠. 빈도는 비슷하지만 강도는 78년작이 우세합니다. <새벽의 저주>는 뭐랄까... 분장과 특수 효과의 발달로 인해 더 리얼해졌다고 표현하면 적당할 듯싶어요.
두 번째로는 스토리. 백화점 내에 모여 있는 사람 수가 <새벽의 저주>가 월등히 많습니다. 그래서 다양한 인간관계와 이야기가 전개될 수 있었던 반면에 깊이 있게 파고 들어가지는 못합니다. 그 결과 78년작에는 백인과 흑인 사이의 우정 같은 것을 바탕으로 이야기가 전개됐지만 이번 영화에 그런 것은 나타나지 않습니다. 또한 전작보다 압도적인 생존자의 머릿수를 믿고 주인공들은 우회적인 도망보다 정면 돌파를 선택합니다.
세 번째, 인간에 대한 관점입니다. 결과만 놓고 보면 78년작에 비해서 등장인물들이 많이 착해졌어요. 이기적이고 자기만 아는 인물들이 분명 있긴 하지만 그들은 자신의 생존 본능에 지극히 충실했던 자라고 볼 수도 있겠어요. 하지만 78년작에서 마지막 부분에 등장하는 폭도들은 좀비보다 더 무서운 게 사람이라는 인상을 아주 확실하게 심어줍니다. 그런 면에서 봤을 때 사람에 대한 평가는 이번 영화가 훨씬 긍정적이에요.
네 번째, 세상에 대한 평가가 있습니다. 78년작은 비록 1시간 정도 분량의 연료만 있는 헬기를 타고 탈출하지만 영화는 거기서 끝을 맺음으로써 세상에 대한 일말의 희망을 남겨놓습니다. 그러나 <새벽의 저주>는 희망이란 단어를 무색케 해요. 안나(사라 폴리)를 처음 공격한 좀비는 비비안이란 옆집 아이였고, 그 다음으로 공격한 좀비는 안나의 남편이었죠. 사람들의 미래이자 희망인 아이도, 사람들의 안식처인 가정도 소용없는 세상입니다. 안드레(메키 파이퍼)와 그의 임신한 아내의 최후를 봐도 그 점은 분명합니다. 더구나 이 영화는 78년작의 결말과 달리 엔딩 크래딧이 올라가는 도중에 확인 사살까지 확실하게 하네요. 사람에 대한 시선은 세월이 흐름에 따라 많이 부드러워진 반면, 거꾸로 사람이 살아가는 세상에 대해선 상당히 완고해진 셈입니다.
4. 영화 이후
영화 초반에 기자들이 한 인물에게 좀비에 대해 물어보는 장면이 나옵니다. 질문은 다양하지만 시종일관 답은 똑같아요. '모르겠다' 누군가 제게 원작과 리메이크작 중 어떤 게 더 괜찮냐는 질문을 한다면 저 역시 '모르겠다'라고 답할 겁니다. 그럼 리메이크작이 재미있느냐고 물어본다면 그래도 '모르겠다'라고 답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게 대답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분명 있어요. 원작이 주로 드라마와 좀비를 바탕으로 사람과 세상에 대한 감독의 생각을 잘 풀어놨다면 리메이크작은 액션과 좀비, 약간의 공포를 버무려서 원작을 답습하지 않고 자신만의 스토리를 나름대로 잘 풀어나갔습니다. 그러니 솔직히 어느 쪽이 괜찮은지 알 수가 없어요.
게다가 이런 유의 영화는 취향을 무척이나 타는 영화에요. 일반 대중들은 고어물에 대한 반감이 상당히 큽니다(사실 이 정도를 고어라고 한다면 피터 잭슨 감독이 코웃음을 칠지도 모를 일이죠). 또 원인과 결과가 분명한 걸 좋아하는 게 요즘 사람들의 특징입니다. 그래서 이 영화를 보고나서 어쩌면 사람들은 <28일 후>의 아류작 정도로 치부해 버릴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거 하나만큼은 확실합니다. <28일 후>는 자칭 논리적이고 이성적인 요즘 사람들 구미에 맞게 좀비물을 재해석한 영화에요. 꼭 그래야 할 필요성은 못 느끼지만 굳이 아류작을 따진다면 <28일 후>가 <새벽의 저주> 같은 좀비물의 아류작일 것입니다.
로메로 감독의 좀비물은 대중적인 인지도는 높지 않지만 은근히 마니아층을 많이 확보한 영화들입니다. 그런 영화의 리메이크작이 졸작의 모습이 아닌 어느 정도의 진용을 갖추고서 나왔다면 어느 정도의 대우는 해 주어야 하지 않을까요? 재미있고 없고는 개인 주관이니 상관없는 문제지만 최소한 '아류작'이란 단어를 아무 데나 들이대는 실수는 하지 말아야 할 듯 합니다.
<새벽의 저주>에는 78년 <시체들의 새벽>에 출연했던 3명의 배우들이 까메오로 등장합니다. 모두들 TV 화면 속에 등장하니 찾아보는 것도 하나의 재미가 될 수 있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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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의 저주(Dawn of the Dead, 200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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