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송환(2003) :::

김승환 | 2004년 03월 22일 조회 5581
1. 사람... 다 똑같은가?
제 초등학교 시절만 해도 미술 시간 포스터에 자주 등장하는 소재 중 하나가 '반공'이었습니다. 민족으로서가 아닌 철저하게 배척하고 무찔러야 할 존재가 북한이었기에 포스터에 그려진 북한 관련 인물들은 대개 피에 굶주린 인상(?)에 뿔이라는 기가 막힌 장식물을 머리에 얻어 달기까지 했었어요. 그만큼 그들은 우리와 다른 존재여야 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니 궁금해지네요. 제가 그때 과연 그들을 사람이라고 생각하고나 있었을까요?
<송환>이란 영화는 제 어린 시절, 사람이지만 사람 취급을 받지 못했던, 같은 민족이지만 그런 취급을 아예 받을 생각조차 못했던 사람들에 관한 얘기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들을 찾아 북으로 갈 필요도 없습니다. 지금이야 이곳에 없지만 이 영화가 만들어지기 시작할 때만 해도 바로 우리 근처에 있었던 사람들이니까요.
그들은 우리와 전혀 다를 바가 없습니다. 즐거우면 웃고, 슬프면 울고, 부당한 대우를 받으면 화를 냅니다. 사람을 그리워하고, 사람을 사랑할 줄도 알고, 먼저 간 사람을 위해 슬퍼할 줄도 압니다. 그들도 사람입니다.
그렇다면 사람은 다 똑같을까요? 질문 자체가 우습네요. 사람이면 됐지 더 이상 뭐가 필요하단 말인가요.
2. 사랑... 그들도 사람이다
맞는 말입니다. 사람이란 사실 하나만으로 그만이죠. 그렇기에 간첩이자 빨치산이었던 그들을 이 땅에서도 순순히 받아주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모두가 다 제대로 적응했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들은 동네 할아버지처럼 사람들과 어울렸습니다. 때로는 아이들을 돌봐주기도 하고, 때로는 같이 식사도 하고, 때로는 감사의 표시로 선물을 주기도 합니다. 마을 사람들과 정을 나누며 세상을 살아가는 할아버지의 모습 그대로에요. 그리고 어머니 앞에 섰을 때엔 죄송스런 아들의 모습 그대로구요. 사람들을 사랑하고, 어머니를 사랑하는, 우리와 똑같은 사람입니다.
3. 신념... 무섭다
다시 한번 같은 질문을 해봅니다. 사람은 다 똑같을까요? 불행히도 아닙니다. 사회를 이루고 집단을 형성하며 체제를 만들어내는 사람들 사이에서 모든 사람들이 절대 똑같을 수는 없습니다. 구분의 기준이야 수도 없이 많겠지만 가장 대표적인 것이 사람들의 신념이죠. 다른 신념을 가진 사람들의 대립이 발전적인 모습으로 나타날 수도 있지만 불행히도 우리는 그 반대의 경우를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바로 우리가 처한 남북 분단이란 상황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상황 속에서 허우적댈 수밖에 없었던 사람들이 바로 이 영화의 주인공들이에요.
자신의 신념을 바꾸지 않았단 이유로 '비전향 장기수'란 악명 높은 명성을 지녀야 했던 사람들, 신념이 달랐기에 같은 남쪽 땅에 있는 어머니의 임종도 지키지 못하고 무덤조차 찾아가지 못하는 사람들, 신분증도 없고 가족들로부터도 외면당해 외롭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바로 그들인 것입니다. 신념이 달라 우리와 다른 사람이 되었고 그 때문에 그들은 사람이 기본적으로 누려야 할 대부분의 것을 박탈당했습니다. 우리 사회가 그들을 그렇게 방치하게 놔 둔 것은 신념 때문이었죠. 그런데 그런 세상에서 그들을 버티게 한 원동력 역시 그들이 지닌 신념 때문이었습니다. 신념이란 사람들이 지닌 최강의... 무서운 무기인지도 모르겠네요.
3. 송환
사람, 사랑, 신념. 개인적으론 사람이 제일 중요하고, 그래서 사랑이 필요하며, 신념은 그 뒤에 따라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종종, 아니 대개는 신념이 사랑을 젖히고 그 기세를 몰아 사람까지 끄집어 내리기도 합니다. 그 결과 사람들은 미움과 반목, 원망에 사로잡히게 됩니다.
2000년 9월 2일, 비전향 장기수들이 북으로 송환되었습니다. 인도주의적 차원에서만 본다면 그들의 송환은 전혀 문제될 바 없지만, 과거에 신념이 사람들에게 안긴 상처는, 그리고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는 그 상처는 그들의 송환을 고깝게 보는 시선을 존재하게 합니다.
하지만 어떻게 그 시선을 탓할 수 있을까요? 연좌제에 걸려 많은 것을 박탈당한 사람들이 있고, 납북되어 돌아오지 못하는 자를 기다리는 가족들이 있으며, 전쟁으로 수많은 것을 잃은 사람들이 엄연히 존재하는데 말입니다. 더구나 이제는 과거 신념에 휘둘렸던 사람들을 탓할 수도 없게 됐습니다. 지금 우리 사회가 대통령 탄핵을 정점으로 또 다시 둘로 쫙 갈라져 화합 없는 반목으로 치닫는 것처럼 보이거든요.
그러나 어찌됐든 비전향 장기수의 송환만큼은 사람의 가치를 가장 앞세워서 판단했으면 합니다. 퍼줄건 다 퍼주고 우리가 얻는 건 뭐냐구요? 얻는 게 없을 지도 모릅니다. 달랑 받기만 하고 나 모르쇠로 변해 버리는 북이 얄미운 건 사실입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우리 사회가 비전향 장기수들을 이곳에 묶어놓는다고 해서 얻는 이익은 무엇인가요? 복수심의 상대적인 충족? 초·중·고생들 사이에 벌어져 사회 문제화 된 왕따 현상을 우리 사회 전체가 담합해서 해 보자구요? 어른들이 모범을 보이지 못하는 건 정치 하나로 족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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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승환 난 언제나 이중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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