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보다 대굴대굴

사마리아(2004)


글: 김승환
2004년 03월 07일


1. 바수밀다

불교 경전인 화엄경에는 선재(善財)라는 동자가 차례로 53명을 찾아가서 법을 구하는 이야기(구법행, 求法行)가 실려 있습니다. 문수보살에서 시작해서 보현보살로 끝나는 구법행이지만 그 53명에는 보살만 있는 게 아니더군요. 그 중 26번째로 선재동자가 찾아간 존재가 바로 바수밀다 여인이에요.

그녀가 선재동자에게 한 말 중 이런 말들이 있습니다. '하늘이 나를 볼 때에는 나는 천녀의 형상이 되고, 사람이나 사람 아닌 이가 볼 때에는 나도 사람과 사람 아닌 이의 여인이 되어 그들의 욕망대로 보게 하노라…….'


2. 사마리아

사마리아라는 명칭은 성경에 가끔씩 등장합니다. 가장 대표적인 건 강도를 만나 사경을 헤매고 있는 유대인을 구해주는 사마리아 인 얘기에요. 쓰러져 있는 유대인을 제사장도, 레위 인도 피해갔지만 유대인이 가장 천대하던 사마리아 인이 그를 구해 치료비까지 베풀었다는 내용입니다.

또 다른 것으론 문둥병에 관한 얘기도 있어요. 예수님이 10명의 문둥병자를 치료해줬는데 그 중 사마리아 인 한 명만이 예수께 찾아와 감사 인사를 했다는 내용이죠.


3. 영화

원조교제를 하는 재영(서민정)과 여진(곽지민), 그리고 여진의 아버지(이얼)가 이 영화의 주인공입니다. 부정적이고 퇴폐적인 의미로만 꽉 찬 '원조교제'에서 재영과 여진은 묘한 색채감을 갖습니다. 상대방에게 순간적이고 즉흥적인 관심이 아닌 제대로 된 관심을 보이려는 재영은 어쩌면 바수밀다로서의 씨앗을 내부에 간직한 인물인지도 모릅니다. 천진난만하고 순수해 보이기까지 하는 그녀로 인해 재영을 하나의 육체로만 보려 했던 남성들의 태도가 한없이 부끄러워질 정도니까요.

그 점에 있어선 여진도 마찬가지에요. 원조교제로 질타를 받는 사람은 성인 남성뿐인 거 같지만 상대방인 여성 역시 냉대를 받게 되는 데에는 차이가 없습니다. 단지 드러나지 않은 은근한 사회의 냉대일 뿐이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진은 자신의 온 몸을 다해 상대방을 배려합니다. 아니, 제대로 된 방식은 아니지만 어쩌면 여진은 자신의 친구에게 사죄하는 것일 수도 있겠군요. 유대인에게 천시를 받았지만 남을 도울 줄 아는, 남에게 감사할 줄 아는 사마리아 인처럼 말이에요.

여진의 행동이 어른들을 더욱 부끄럽게 만드는 이유는 그녀의 배려와 사죄가 그녀의 몫이 아닌 바로 어른들의 몫이기 때문입니다. 그릇된 길을 방치한 것도 모자라 그녀들에게 등을 돌려버린 건 바로 어른들, 그들이 지배하는 사회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분노합니다. 그리고 아버지로 대표되는 그 분노는 당연히 아이들을 지켜주지 못한 남성들에게 향하구요. 분노는 피를 부르고 아버지와 딸은 김밥을 싸 들고 아내의, 어머니의 산소를 찾아갑니다. 그렇게 영화는 끝을 향해 달립니다.


4. 영화 이후...

아무리 분별력이 부족한 청소년이라 할지라도 자신의 행동엔 책임이 따른다는 사실을 알아야 하겠죠. 청소년이라 해서 모든 걸 무조건 용서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말이에요. 그러나 그 전에 청소년들을 그대로 방치한 어른들의 행위는 꼭 짚고 넘어가야 하며 그들의 행위는 결코 용서의 대상이 될 바가 아닙니다.

또한 청소년들에게 길을 제대로 잡아 준다면, 스스로 헤쳐 나갈 사회가 만만하진 않겠지만 그들은 자신만의 바른 길을 찾아갈 겁니다. 그것은 원조교제 이후에도 똑같이 적용됩니다. 진흙탕에 한 번 발을 잘못 들여놨다고 해서 그들을 냉대한다면 그것은 어른들의 책임을 아이들에게 떠넘기는 행위밖에 될 수 없거든요. 청소년들로선 피하기 쉽지 않은 그 진흙탕을 누가 만들었느냔 말입니다.

마지막으로... 김기덕 감독의 영화는 이번이 처음이에요. 영화를 많이 보는 편이지만 묘하게 인연이 안 되는 감독들이 가끔씩 있습니다. 김기덕 감독도 그 중 한 명이었죠. 어쨌든 이 영화만으론 그의 영화가 왜 어떤 사람들에겐 불쾌감을 선사하는지 그 이유를 모르겠어요. 치부를 들쳐냈다고 해서, 자신의 은근한 속마음을 들킨 거 같아서 불쾌한건가요? 그렇다면 불쾌해하기 이전에 자신을 돌아보는 게 훨씬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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