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사 Duelist(2005)
글: 김승환
2005년 09월 0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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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기억들을 안고서 아주 오랜만에 이명세 감독의 신작을 극장에서 보게 됐습니다. 그런데 영화를 보고 나서 전혀 뜻하지 않았던 의구심과 맞닥뜨리고 말았어요. '영화를 만들 때 줄거리를 구성하는 게 반드시 먼저일까, 아니면 표현 방식에 따라 줄거리를 구성할 수도 있는 걸까'라는 의구심. 다소 과장된 표현이었지만 그만큼 <형사 Duelist>는 영상 표현, 즉 영상미가 압도적입니다. 단순히 압도적인 게 아니라 모든 것의 중심에 서 있죠. 그래서 영화의 내러티브는 압축되고 생략되고, 심지어는 더 이상은 의미가 없다는 듯 뚝 잘라져나가기까지 합니다. 이야기의 개연성과 그 전달의 친절함은 영상미를 얻어내기 위해 희생된 셈입니다.
그렇게 얻어진 스타일은 눈을 휘둥그렇게 만들기에 부족함이 없습니다. 수많은 색감과 과장되고 넘실대는 동작이 구석구석마다 포진됩니다. 더 나아가 감독의 표현력은 영화의 주요 축인 사랑 얘기까지 영상으로 직접 보여주는 경지에 달함으로써 영화에서 이미지가 할 수 있는 역할이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를 증명하기까지 합니다. 불현듯 나타나 격정에 휩쓸리게 만들고 홀연히 떠나가는 사랑, 그리고 여자의 슬픔. 영화의 핵심이 되는 줄거리죠. 어둠 속에서 칼을 휘두르고 달빛 속에서 절정을 이룬 후 다시 어둠 속으로 사라지는 남자, 그리고 그 남자와 여자의 춤사위 같은 칼부림과 여자의 울부짖음. 영화 중간에 나오는 액션씬입니다. 둘은 서로 완벽하게 대응됩니다. 이쯤 되면 스크린에 구현해낸 스타일과 감독의 솜씨에 대해선 왈가왈부할 필요가 없겠어요.
결과론이고 해몽일 뿐이지만 이처럼 영상미를 앞세운다는 <형사 Duelist>의 특징은 이미 제목에서부터 그 낌새를 감지하는 게 가능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조선 시대 어느 시절을 얘기하면서 종사관이나 포교가 아닌 엉뚱하게 '형사'거든요. 이는 영화가 전통적인 내러티브 중심을 뒷전으로 하고, 대신 현대적이고 감각적인 스타일을 앞세우겠다는 어떤 의지의 표현처럼 느껴진다면 지나친 억측일까요?
<인정사정 볼 것 없다> 이후 6년. 공백에도 불구하고 영상을 창조해내는데 있어서 감독의 자신감은 전혀 영향을 받지 않은 모양입니다. 오히려 더 커진 듯해요. <인정사정 볼 것 없다>에서의 영상미 추구가 영화의 내러티브와 어깨를 나란히 했다면, <형사 Duelist>에서는 내러티브를 휘둘러 도구화시킵니다. 마치 아름답고 화려한 무언가를 표현하기 위해 이야기를 구성한 것처럼 보일 정도에요. 그런 의미에서 이 영화는 저잣거리의 이야기꾼들의 이야기, 또는 할머니가 해 주시던 옛날이야기와 통합니다. 그 이야기에는 최소한의 줄거리만 요구되죠. 기름기 쪽 뺀 뼈대들은 중심이 되는 사건 앞뒤로 간략하게 배치되고, 대신에 이야기의 핵심은 잔뜩 과장되고 부풀려집니다. 또한 그 이야기는 허구일 수도, 진실일 수도, 허구와 진실이 적당히 뒤섞였을 수도 있습니다. <형사 Duelist>는 그런 식의 이야기입니다. 이명세란 이야기꾼이 무엇보다 자신의 장기인 영상미를 핵심 사건으로 선택해서 꾸려나가는 이야기. 이야기꾼의 장기는 놀랄 만큼 뛰어납니다. 단, 그 장기만으로 모든 청중을 만족시킬 수 없을 것이라는 문제가 여전히 남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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